집중분석 |일본, 군사대국 빗장 열다? 2012년 8월호
집중분석
일본, 군사대국 빗장 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문제는 이제 우려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정부가 1957년부터 채택한 국방의 기본방침을 보면 “일본은 군사대국이 되지 않는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국방비는 최근 10여 년간 5조엔(약 70조원) 안팎에서 계속 정체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일본의 경제난에 의한 예산절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국방비 규모가 절대 작다고 볼 수는 없다. 이정도의 국방비 규모는 전세계에서 4~5위를 점하는 수준이다. 특히 최근 일본은 군사적 보통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이웃 국가들은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는 의혹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으며, 일본 내의 많은 지식인들도 일본정부의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비 세계 4~5위…최근 법·제도 공격적 개정
군사대국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평화헌법 9조’를 둘러싼 개헌논의라 할 수 있다. 평화헌법이란 헌법 제9조의 별칭이다. 평화헌법은 일본이 전쟁포기를 약속하고, 이를 위해 전력보유의 금지를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자국의 자위(自衛)를 위해서만 군사력을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다. 그것도 일본이 상대로부터 무력행사를 받았을 때 이를 일본영토 내에서 방위하는 것만 허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동맹국을 돕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일본이 해외파병 시 매번 특별법을 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일본 자위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거리 폭격기, 공중급유기, 공격형 항공모함 같은 것 등을 보유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앞서 언급한 전수방위(傳守防衛)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불필요한 공격형 군사무기의 개발이나 구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한지 오래 되었다. 이제는 제도적 정비를 위한 평화헌법 개헌 논의를 아예 대놓고 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97년에 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을 들 수 있다. 이 신가이드라인은 기존 가이드라인과 달리 일본열도뿐만 아니라 일본의 주변지역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였을 경우 미·일 양군이 공동으로 군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신가이드라인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주변지역의 범주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결국 이는 일본의 군사적 활동 범위를 더욱 광역화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신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일본정부는 제도적 정비로서 1999년 ‘주변사태법안’을 제정하였다.
“北위협·中견제” … 미·일동맹, 일본 재무장 가속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미·일동맹은 한층 더 공고해 지면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신가이드라인을 최종의 목표가 아닌 최초의 출발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일본에게 주문하는 동시에 미·일동맹을 미·영동맹의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본정부도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일본은 미국의 원활한 전쟁수행을 돕기 위해 2001년에는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을, 그리고 2004년에는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을 채택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일본이 미국지원이라는 명분 하에 전투지역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과감한 파병을 단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평화헌법에 대한 공식해석의 꾸준한 확장과 완화를 수반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미·일동맹은 일본의 대외 군사적 역할 증대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일본 재무장 움직임의 가속화 물꼬를 터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가로막던 제도적 빗장은 2011년부터 빠르게 풀리고 있다. 일본정부는 2011년도에 무기의 해외수출을 금지하는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그동안 형식상으로나마 유지해오던 무기생산의 통제선을 허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미국과의 무기 공동개발 등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첨단 무기기술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편, 2012년에 들어서는 재무장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 국회는 ‘우주항공 연구개발 기구설치법’을 개정 처리하면서 “우주개발을 평화목적으로만 한정한다.”라는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 이는 우주활동의 군사적 이용을 가능케 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군사적 목적을 위한 위성개발이 가능해졌으며, ICBM 개발의 길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 국회는 ‘원자력기본법’을 개정 처리하면서 관련법 목적에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라는 문구를 몰래 삽입시켰다.
특히 원자력 기본법의 수정은 일본사회에서 꽤 무거운 사안 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회는 여론수렴이나 사전논의를 거치지 않고 강행 처리하였다. 이러한 문구의 추가는 향후 핵무장을 위한 사전 포석일 수도 있다. 여기에다 총리직속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문하고 나서 전수방위 원칙까지 무너뜨릴 기세다.
중요한 점은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강화를 통하여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정부 역시 미·일동맹 강화의 불가피성을 북한위협의 사전대처와 중국부상의 견제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점은 일본사회가 급격한 우경화 흐름 속에 젖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 보통국가를 실현시키기 위해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견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군사력 확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실험과 핵개발, 그리고 중국의 군비증강과 군사현대화는 오히려 일본정부 내 일부 강경인사들이 속으로 반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본 내에서 이를 제어할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 정치권의 총보수화 현상 때문이다. 현재 집권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민당의 이념적 색깔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냉전해체와 새로운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사민당이나 공산당 같은 진보정당들의 의석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들 정당들은 이제 힘없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평화헌법의 개정은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일본 내 정치적 우경화 … “평화헌법개정 멀지 않아”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에 대해 우리는 규탄만을 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우리의 안보능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차원의 노력을 계속 경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호전성과 자체붕괴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사적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심사숙고해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한·일 군사협정은 동북아 평화질서 창출을 위한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우리 스스로가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인정하는 동시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근거를 마련해 주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일 군사협정은 군사적 보통국가화의 프로젝트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형성을 위한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전개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다자안보체제는 공동안보와 협력안보에 입각한 안보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동북아 안보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적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재욱 /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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