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전쟁·평화 | 시리아 사태와 국제사회의 인도적 군사개입 2012년 8월호
인간·전쟁·평화
시리아 사태와 국제사회의 인도적 군사개입
지난 16여 개월 동안 시리아의 폭력사태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과 보호의 의무를 둘러싼 논의를 확산시켜 왔다. 많은 전문가들은 2011년 리비아 사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리아에 대한 인도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인도적 개입의 성공요건으로 광범위한 지역적·국제적 지원, 국제사회의 비용분담, 현지세력의 전쟁수행 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기 1993년 소말리아부터 2011년 리비아까지의 인도적 개입을 통하여 국제사회가 얻은 교훈은 인도적 개입에 대한 지나친 도덕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가 폭력사태의 해결과 더 많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적 군사개입, 사태 초기에 효과적
인도적 개입은 폭력사태의 초기 단계에서 이뤄지는 경우에 효과적이었다.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의 인종청소와 대량학살 사태에 대하여 유엔 승인에 의해 다국적군의 개입이 신속하게 이뤄졌으며, 개입 후 수개월이 지나 다국적군은 해당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제권을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인계하였다. 동티모르, 채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이러한 형태의 인도적 개입이 이뤄졌으며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 논리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지만 인도적 개입을 위한 국제적 지지를 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신속하게 대응했던 것과는 달리 시리아 사태에는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3월 이후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들이 12~15만명이 넘으며, 미국 국무부는 국내 피난민도 약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등 인도적 사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정부군이 반군과 시민들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서고 있지만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개입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정당한 인도적 개입은 국제적·지역적 수준에서 광범위한 협력체제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다층적 개입은 인도적 활동과 비용분담의 적절성에 대한 합의를 공고히 해주며 개입 후 체제전환을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과 헌신을 강화시켜 줄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광범위한 협력체제는 국내 정치 및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개입국 정부는 대상국에서 자국군인의 사상이 발생한다면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철군요청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사태 이후 심각한 인도적 사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해 온 것이다. 보편적 인도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국내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졌던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자국기업과 국민의 보호를 위해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수도 있음을 수차례 밝혔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주도의 개입에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현재 시리아 폭력사태의 원인은 정부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군 측에도 있기 때문에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 퇴임 이후 어떻게 체제전환을 이룰 것인가 및 누가 새로운 체제를 이끌 것인가 등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주장처럼 인도적 개입 이후 체제전환의 중요성은 카다피 정권의 몰락 이후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리비아의 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시민에 대한 폭력은 대부분 뿌리 깊은 정치 질서의 위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개입국가들은 보스니아에서처럼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속적으로 머무를 것인지 혹은 소말리아에서처럼 대상국을 혼란으로 몰아넣더라도 철수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도적 개입 이후의 전환정책은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데이튼 협정은 비교적 성공적인 출구 사례로 보스니아에서 민족주의자들과 다양한 인종의 의견을 반영하였지만 코소보의 최종적 지위는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사회의 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지역 반군세력의 전쟁수행 능력 향상을 통해서 인도적 개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도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시리아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분파들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사태가 리비아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들 인종 및 종교분파 간의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미국과 서방세계에 의해 시리아 반군에게 제공되는 중무장 화기들을 사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군세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과연 반군세력이 친민주적 또는 친개혁적 성향인가? 국제사회의 다양한 정보들에 의하면 현재 시리아 반군세력은 페르시아만의 석유부자들에 의해 재정지원과 무기지원을 받고 있으며, 많은 반군들이 리비아에서 반군활동을 했던 이들임이 밝혀지고 있다.
시리아의 체제전환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 없이 단순히 독재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반군세력을 지원하는 것은 시리아의 잠재적 갈등요인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의 군사적 개입은 만약에 이뤄진다고 해도 신중하게 이뤄져야할 것이다.
체제전환에 대한 국제사회 합의 있어야
본질적으로 인도적 군사개입은 폭력사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적 군사개입의 문제점들을 피할 수 없으며 다양한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인종청소, 대량학살 등으로부터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현실이다. 인도적 군사개입은 국제적 합의 속에서 신속하게 이뤄지고 체제전환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동반될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지만 시리아와 같이 사태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그 해결책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다만 장기적으로 인도적 군사개입만이 인도적 문제의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음을 국제사회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강대국들이 군사적 개입보다 인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외교정책으로 전환하는 경우 더욱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항공모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한 기는 수천 명을 보호할 수 있는 경제적 상대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군사적 개입만이 국제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가 아니라는 점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송영훈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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