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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창작동화 | 할머니의 메밀밭과 두루미 1(일반부 최우수상) 2012년 8월호

통일창작동화

 할머니의 메밀밭과 두루미 1(일반부 최우수상)

우리 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북도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어린 소녀였을 때 전쟁이 일어났고 삼촌의 손을 잡고 잠깐 친척집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그 후 육십년이 넘도록 백리도 안 떨어진 고향마을에 못 돌아가셨다며 늘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고향에서 멀지 않은 임진강 주변 연천에서 평생을 사시며 옛 집에 돌아가 두고 온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기를 소원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12살 소녀이던 할머니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셨을 때까지도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다시 혼자가 된 할머니는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메밀밭을 가꾸시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고향집 주변엔 넓은 메밀밭이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메밀국수를 즐겨 드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메밀밭을 바라보시며 어릴 시절의 추억을 다시 회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늘 메밀밭에서 늦은 시간까지 메밀을 가꾸셨습니다.
그리고 늦여름 8월의 밤이 되면 할머니의 메밀밭에는 눈처럼 희고 소박한 메밀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할머니는 달빛아래 비친 흰 메밀밭을 바라보시며 고향마을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 번도 메밀을 수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메밀을 심고 자라는 것만 보시고는 메밀밭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할머니!  왜 할머니는 저 메밀들을 걷어 들이지 않아요?”
“그건 제 메밀들은 내가 먹으려고 심은 게 아니기 때문 이란다.”
“그럼 저 메밀들은 누가 먹어요?”
“먼 데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심은 거란다.”
나는 할머니가 말하는 손님들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아마도 할머니는 통일이 되고 난 후 가족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메밀을 키우는 것으로 짐작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시던 중 너무나 놀라시며 저를 불렀습니다.
“세미야 저기가 내 고향이야. 그런데 왜 저렇게 황폐하구 민둥산이 됐을까? 도대체 저 방송 내용이 무슨 뜻이니?”

방송에서는 남쪽에서 띄워 보낸 풍선들이 황해북도에 도착한다는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남쪽에서 풍선을 띄워 보내면 바람을 타고 50분이면 저기에 도착한다고 하네요.”
“그래? 무슨 풍선을 어떻게 띄우면 저기를 간다는 거니?”
저는 할머니에게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풍선의 원리와 띄우는 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그 후로도 풍선과 바람에 대해 자주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겐 새로운 비밀이 생기신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늦가을이 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메밀이 탐스럽게 여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메밀밭에서 제일 좋은 종자들만 손으로 골라 내셨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메밀이삭들을 그냥 밭에  그냥 두셨습니다.
“할머니 아깝게 왜 메밀들을 그냥 둬요? 수확해서 음식이라도 만들어 드시지 않고?”
“세미야 저 메밀들은 손님을 위한 잔칫상이야. 멀리서 돌아온 할머니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할머니의 작은 선물이란다.”
그제서야 나는 할머니의 손님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손님들은 한 무리의 두루미 가족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메밀을 키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두루미들이 할머니의 메밀밭에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처음에 커다란 두루미의 덩치에 놀라셨지만 두루미들이 메밀을 먹고 안전하게 지내게 하기 위하여 수확을 포기하신 것 입니다.
그 후로 두루미 가족들은 매년 할머니의 메밀밭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북쪽에서 날아온 두루미 가족들을 고향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일년내내 준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메밀밭에는 두루미 가족과 많은 물새들이 모여들었고, 할머니는 혹시나 누가 방해라도 할까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메밀밭을 가꿔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성을 알았는지 할머니만은 메밀밭에 가까이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할머니는 사료와 미꾸라지 같은 먹이를 선물하고 겨울 내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주었습니다.

두루미는 할머니에겐 두고 온 고향의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쯤이면 두루미들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할머니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두루미들을 떠나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수확한 메밀 종자들의 반을 풍선에 담아 함께 띄워 보내셨습니다. 할머니의 메밀종자를 담은 하얀 풍선들이 두루미 가족과 함께 하늘멀리 사라질 동안 눈물을 흘리시며 북쪽 하늘을 바라 보셨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마음은 그 풍선들이 할머니 고향 마을에 도착해서 할머니의 메밀밭처럼 소담하게 자라나주기를 그리고 그 메밀꽃들을 남아있는지도 모를 가족들이 바라봐 주기를 소원하셨나 봅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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