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오빠, 알 가져왔어?” 2012년 8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오빠, 알 가져왔어?”
북한에서 알이란 말은 여러 가지 비유로 사용된다. ‘씨알머리 없는 사람’, 속빈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장딴지에 힘이 불끈거리는 사람은 ‘장딴지에 알이 배긴 사람’이라 부른다.
돈 좀 있냐는 말도 ‘알 있냐?’ 하고 말한다. 닭알, 오리알, 메추리알 등 아무튼 알은 동그랗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해 부르는 것 같다. 뭔가를 챙기려는 것도 알속이라 부른다. 너무 욕심 부리면 ‘제 알속밖에 모르는 놈이야’ 하고 욕한다. 그렇게 알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요즘 한 가지 더 첨부됐다. 국내가 아닌 외국 영상물이 담긴 CD나 USB를 알이라 부르며 선호한다. 특히 대한민국 드라마나 가요가 담긴 CD라면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오금을 못 쓴다. CD는 ‘씨알’ 아니면 ‘디알’, USB는 ‘유알’이라 부르는데 남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는 그냥 ‘알’이라 부르며 소통한다.
“돈이 아니었어?”
최근 필자의 고향인 청진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경인 회령에 갔다 온 남자친구를 만난 동녀(필자의 조카)는 대뜸 “오빠, 알 가져왔어?” 하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아무렴 갖고 오고말고, 가자.”며 동녀를 시장으로 끌었다. 주머니가 불룩했는지 돼지고기 요리까지 청해 놓고 한 잔 곁들였는데 동녀는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뭐가 궁금한지 안절부절 한다.
그러다가 남자친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알 내용이 뭐야?” 하고 물었다. 동녀의 말뜻을 제 나름대로 해석한 남자친구는 “응, 장사 좀 했지 뭐. 이번엔 단속도 안 걸리고 일 참 잘됐어. 많이 먹어. 실컷, 배 터져도 수술비 내가 댈 수 있으니까.”
그러자 갑자기 동녀의 숟가락이 멈췄다. “그러니까 뭐야, 오빠가 말하는 알은 돈이야?” “응.” “내가 원하는 알은 그게 아닌데.” “뭐? 그럼 뭔데?” “정말 모르겠어?” “돈이 아니었어?” 동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단둘만 있는 장소가 아니어서 자세히 말할 수도 없었다. 뭔가 생각하던 동녀는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향해 두 손을 들어 핸들을 돌리는 흉내를 냈다.
그래도 남자는 눈만 껌벅껌벅, 동녀의 입에서 또 한숨이 나온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이번엔 두 손가락을 쪽 펴서 귀 옆에 갖다 대며 ‘아잉’ 하고 활짝 웃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 마치 낯선 사람 보듯 한다. 전에 없던 애교를 피우는 여자친구가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아유 참, 그럼 이건 어때?” 동녀는 남자의 뺨을 가볍게 한 대 때렸다. 눈만 껌벅대던 남자가 그때서야 알만하다는 듯 히죽 웃었다. “오~ 너 이제 보니 못된 것만 배웠구나, 씨.” “알만하지?” “응.” 남자는 동녀의 귀에 바짝 입을 갖다 대고 말했다.
“남조선 드라마 담긴 CD 말하는 거지?” 동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내가 최근 유행어 깜박했어. 국경 갔다 오며 그걸 놓쳐서야 되나, 동녀가 돈보다도 좋아하는 게 바로 그건데, 히히.” 음식을 다 먹고 인적 없는 골목길에 나서서야 남자가 불만을 토했다.
“못된 것만 배워 갖고 말이야, 너 나와 결혼해서도 남조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조그만 잘못 갖고 내 귀뺨 칠 것 아니야?” “배신만 안 하면 안 치지, 드라마에서도 나오잖아, 그게 조그만 잘못이야? 그러고 보면 남조선은 참 여자들 천국 같애, 그치?” “참 이젠 말도 그쪽을 완전 닮아가네, 조심해, 너.” “내가 왜? 남조선 말이 얼마나 고와, 부드럽고 아잉?!” 동녀는 또 두 손가락을 볼에 갖다 대고 윙크한다. “요즘은 이 ‘아잉’이 유행됐어, 알기나 해?”
“남조선은 여자들 천국 같애, 그치?”
그러고는 동녀는 자동차 운전하는 흉내를 낸다. “여자들도 승용차를 몰고 가고픈 데 가는 세상, 와 그게 우리가 목표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고 뭐야, 난 남조선 드라마 보면서 여자들의 천국이 있다면 바로 저기구나 하고 생각했어. 빨리 가자. 갖고 온 드라마 제목이 뭐야?”
이 이야기는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북녘마을 현실이다. 드라마를 통해 비친 한국의 현실은 북녘마을 주민들의 꿈에서나 그려보는 이상촌의 그림인 것이다. 필자 역시 고향의 가족과 통화하며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차이가 없는 현실 그대로라고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이 터뜨리던 탄성이 늘 귀에 맴돈다. “언제면 우리도…, 삼촌은 참 좋겠어. 그런데 여기서 누리던 남자 권위주의 못 부려 어떡해요? 여자한테 잘하지 못하면 밥도 못 얻어먹잖아요? 단박 찬밥 신세, 삼촌 버릇 뚝 떨어졌겠다. 흐흐.”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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