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8월 1일

북한인권을 말한다 | ‘토마토’만을 위한 나라? 2012년 8월호

<연간기획> 북한인권을 말한다

‘토마토’만을 위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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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6일 황해남도 청단군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자연재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7일 미국 북한인권위원회는 “낙인찍힌 삶 : 북한의 성분제(Marked for life : Songbun, North Korean Classification System)” 라는 매우 의미 있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탈북자 면접조사를 기초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2,400만 북한 인구의 1/4 정도인 최상위 핵심군중(충성계층)은 주로 평양에 거주하면서 교육과 취업 등 모든 분야의 특권을 독점하고 있다.

둘째, 최하층인 적대계층은 가장 가난한 지역인 양강도와 함경북도의 탄광이나 농장에서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식량이 부족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셋째, 북한당국은 17살 이상인 모든 북한주민들의 성분을 기록한 자료를 2년마다 갱신하고 있다. 권력기반이 약화될 위험성 때문에 북한의 새로운 지도세력은 이러한 성분조사제도를 바꿀 의사가 없다.

성분제도, 사회적 자산배분의 기초

북한주민들 사이에 충성층은 사회주의 사상에 철저하게 물들어 안과 밖이 모두 빨간 ‘토마토’, 부동층은 겉만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 적대층은 절대로 물들 수 없는 ‘포도’라는 은어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장마당이 북한 전역에 활성화되고, 뇌물과 사회일탈 행위가 확산되고 있지만 북한의 성분제도는 여전히 확고하며, 식량을 포함한 사회적 자산배분의 기초가 된다.

북한사회에서 인민의 모든 권리는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수령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수령은 전체 사회유기체의 ‘뇌수’로서 모든 인민의 정치적 삶을 지배한다. 심지어 한민족의 기원도 수령의 핏줄과 함께 하며 ‘김일성 가문’은 국가와 동일시된다. 인민의 모든 사회적 삶은 수령과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것이 북한 신분제의 특징이다.

수령의 명령을 수행하는 당과 군, 행정부서 일꾼들은 지배계층이며, 출신성분이 나쁘거나 당을 배신한 사람들은 최하위 피지배계층이 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법적인 처우, 배급, 직업 등에서 철저한 차별이 행사된다. 이들 계층사이에는 심지어 통혼이 불가능하다.

최하층계급이 상층으로 신분상승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로지 당과 국가에 공을 세우고 그것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북한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고등교육을 충성계층이 특권으로 전유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마저도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북한의 신분제는 주기적인 성분조사와 분류에 의해서 보충, 강화된다.

사회적 감시 속 철저한 분류 및 차별대우

북한의 신분제는 두 가지 기제로 운용된다. 첫째는 철저한 분류와 차별대우다. 주거, 교육, 직업선택, 배급, 결혼을 포함한 모든 인생의 가치는 당과 수령의 선택에 의해서 주어질 뿐이다. 자유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당의 선택에 들어가는 길뿐이다.

둘째는 사회적 감시와 공포다. 보위부와 정치범수용소는 이러한 신분제 사회를 유지시키는 국가폭력을 극단적인 형태로 존속시키고 있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신분을 누리고 있더라도 당과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반당분자’, ‘조국배신자’ 들은 연좌제와 더불어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신분에 안주할 수 없다. 끊임없는 감시와 공포는 신분제 사회를 유지시키는 또 다른 비밀열쇠다.

많은 탈북자들이 북한의 차별적인 신분제 모순을 탈북동기로 지적하고 있다. 최초의 탈북자 부부 박사로 언론에 보도된 김영희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은 남편이 북한의 정준택경제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재원이었지만, 남편 부모의 연고가 중국이라는 이유로 “남편의 앞길이 막힌 것을 알고”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전근대적인 신분제, 즉 성분에 의한 사회적 차별은 변명될 수 없는 중대한 인권침해다.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며,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있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세력은 무엇보다 인류보편적 가치와 탈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는 부족한 식량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필요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충성심을 내세우며, 자라나는 아동들의 미래와 꿈을 짓밟는 야만적인 사회적 폭력이다.

이원웅 / 관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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