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성장 20년 2012년 8월호
기획 | 한·중수교 20년 평가와 전망
<정치·외교분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성장 20년
북방외교의 결정판이었던 한·중수교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북방외교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헝가리, 폴란드, 구소련을 거쳐 중국과 수교를 단행하였다. 한·중수교는 과거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전향적이고 공세적인 한국 외교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당시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하려던 이유는 분단 상황의 평화적·안정적 관리,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탈냉전의 역사적 조류에 편승하여 국익을 극대화하려던 의도로 북방외교를 통해 당시까지 꽉 막혀 있었던 대북 채널의 확보, 그리고 직접적인 경제교류를 위한 창구 확보의 필요성 등이었다.
한·중관계, 선경후정 … 선이후난 보여
반면 중국은 개혁·개방의 성과 10년을 넘어 중진국 도약을 위한 한반도 안정의 필요성, 중국의 외연적 성장 지속을 위한 중간 수준의 한국 기술과 자본의 필요성, 탈냉전 이후 이념 중심에서 실리 중심으로 전환한 중국 외교정책의 변화,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우적(友敵)관계의 변화, 즉 중·소대립의 종결, 한·소수교, 북·일관계 변화, 미·일관계 변화 등 국제적 변화의 조류에 편승하려는 상황적 요인 등으로 한국과 외교관계를 단행했다. 결국 수요가 공급을 만들고 필요가 결과를 낳은 것으로 두 나라 모두에게 필요하고 중요했기 때문에 한·중수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1992년 8월 24일 단순 수교관계를 맺고 출발한 한·중관계는 2008년 5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 한·중 양국이 상호의 관심사만을 가장 낮은 수준에서 처리해 오다가 이제는 양국의 현안을 넘어 지역적이고 전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고위 수준에서 다루게 되었다.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양국관계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것이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경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정치는 나중에 개선시키며(先經後政), 쉬운 문제는 먼저 해결하고, 어려운 문제는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해결하자는(先易後難) 입장을 보여 왔다.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구동존이(求同存異, 일치하는 것은 취하고 의견이 서로 다른 점은 보류한다)의 실천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경제문제를 포함한 양국 간 교류협력은 활성화하면서도 북한 (핵)문제, 고구려사를 포함한 동북공정과 역사왜곡 문제, 탈북자 문제, 한·미, 한·일간 외교·군사협력 문제 등에 대해서는 항상 원론적인 수준에서 대처해 오고 있을 뿐이다.이와 같은 한·중관계는 “안정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穩定壓倒一切)”는 등소평의 의지를 철저히 따르는 중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근거한다.
중국은 오는 10월말에 열리는 18차 당대회에서 향후 10년을 이끌어 갈 지도부를 교체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리커창 부총리가 7~9명으로 구성될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확정된 상태고, 나머지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후원하고 있는 태자당과 후진타오 주석이 지원하는 공청단 세력이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7월 3일 베이징시 당대회를 끝으로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31개 성, 시, (자치)구의 당 지도부 개편이 완료됨으로써 제5세대 지도부의 윤곽과 더불어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5세대의 특징은 젊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로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 중국 지도부들이 중시했던 이념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최근에 보시라이 충칭 서기가 태자당 출신이라는 배경을 업고 홍색 깃발을 지나치게 높이 세우다 실각한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진핑, “국제통치시스템 개혁에 적극 참여”
차세대의 대외정책 근간은 국가주석과 공산당 총서기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시진핑의 언급에서 유추할 수 있다. 지난 7월 7일 시진핑은 칭화대학에서 열린 세계평화포럼에서 “중국이 선진국이 된다 해도 헤게모니(패권)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국가에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낡은 마음가짐과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법을 버리고 글로벌 평화를 위해 노력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경제 질서 구축을 위해 국제통치시스템 개혁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언급은 중국이 향후 G2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다자외교를 구축하는 동시에 다자간협력체 속에서 적극적인 외교를 펼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부는 닫힌 사고, 폐쇄적이고 독자적인 성장을 넘어 열린 사고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세계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지난 20년간의 한·중관계는 한·중 양국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 (핵)문제, 역사문제, 한류 확산에 따른 문화적 갈등과 같은 문제는 양국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것은 양국 지도부가 그런 문제들이 제로섬(zero sum)적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 의존과 협력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21세기에 한·중 양국이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에 기초하여 문제해결에 나선다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강소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의 장점을 중국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양국 협력을 강화하고, G2로서 중국이 갖는 다양한 측면의 중요성을 한국이 인정하고 이에 따른 정책을 추진한다면 양국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관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20년을 위해 한·중 양국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외교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진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본질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승채 / 고려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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