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중 사이 ‘무게추’ 역할로 세력균형 좌우 2012년 8월호
특집 | 특러시아의 부활과 한반도
<대외> 미·중 사이 ‘무게추’ 역할로 세력균형 좌우

지난 6월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의를 갖고 ‘전면적이고 대등한 신뢰 파트너십과 전략적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3기 러시아의 대외정책 환경 요인들 가운데 과거 푸틴 1기·2기와 메드베데프 시기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먼저 러시아의 국내 정치지형에서 12년 동안 지속되어 온 푸틴의 리더십과 ‘푸틴주의(Putinism)’가 쇠퇴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며, 다음으로 중국이 명실공히 G2 체제의 한 축으로 부상함으로써 국제세력관계의 구성과 배열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요인은 러시아의 대외정책 전반 그리고 대미, 대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푸틴 3기 러시아의 대미관계 전개의 주요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는 푸틴의 권위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이며, 둘째는 나토가 진행하고 있는 유럽미사일방어체제의 진로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대미정책은 러시아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미국과 서유럽의 대러정책, 즉 제3기를 맞은 푸틴의 러시아에 대한 정책이 어떨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먼저 러시아의 인권문제에 대한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개입 사례는 상하원의 ‘마그니츠키 법안’ 통과다. 이 법안은 11개월 동안의 구치소 구금 중 사망한 러시아 변호사 마그니츠키의 죽음과 연관된 러시아 관리들의 미국 입국비자를 불허하고 그들의 자산을 동결한다는 것이 요지다.
러시아 정부는 외교부 부장관 세르게이 랴브코프의 강력한 경고에 이어, 법안 최종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할 정도로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푸틴의 리더십이 내리막길을 가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는 미국의 러시아 인권상황 비판과 대응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문제와 유럽MD, 대미관계 주요변수
즉 푸틴 대통령이 처한 국내에서의 수세적 입장이 미국 등 대외세력의 국내정치 개입에 대해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양국관계는 보복성 ‘주고 받기’를 거친 뒤 냉각기를 갖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과 나토가 주도하는 유럽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해 모스크바는 오랫동안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푸틴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해외방문이 될 뻔 했던 G8 정상회담(5월 18~19일, 캠프 데이비드 개최)에 대한 불참 원인도 사실상 초점은 연이어 시카고에서 열렸던 나토 정상회담(5월 20~21일)에 있었다.
회의에서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유럽MD가 보유한 ‘과도기 능력’은 2022년까지 나토의 유럽 주민, 영토, 군사력을 유럽-대서양 외곽지역으로부터 오는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목표에서 첫 번째 단계라고 규정함으로써, 유럽MD의 향후 발전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푸틴 대통령은 도저히 이 자리에 앉아 경청하거나 들러리를 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발전 위해 중국 부상에 최대한 편승
한편 러시아의 대중정책의 화두는 급속히 모멘텀을 갖기 시작한 글로벌 세력구성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것인가로 모일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과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아직 중국은 공세적으로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고 영향력 증대를 할 만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힘을 갖춘다고 하더라고 공세적이며 개입주의적인 방향으로 대외정책 노선을 변경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푸틴 3기의 러시아는 최초로 눈앞에서 현실화된 2위의 강대국, 중국을 대하고 있다.
세계정치의 ‘권력이동’ 시기에 러시아가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향후 추세적으로 중국의 힘이 더욱 커져 미국의 힘에 근접하면 할수록, 러시아는 두 강대국 간 세력균형의 향배를 좌우하는 결정적 ‘무게추 국가(the tipping-point state)’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 두 강대국의 힘이 비등하게 될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국력이지만 러시아가 어느 편과 제휴하느냐에 따라 양 세력 간의 힘의 우위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푸틴의 중국에 대한 시각을 표현하자면 “이웃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웃의 성장과 발전을 억지로 막을 수도 없고 또한 막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전략은 중국의 성장을 러시아의 발전에 위협이나 장애물이 아니라 기회요인이 되도록 이에 최대한 편승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물론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지역 등에서 정치·군사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익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 간에 경쟁과 갈등 요인이 있으며 이를 상호 윈-윈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모스크바는 전략적동반자관계와 협력의 큰 틀 속에서 부분적으로 대중 견제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경계와 견제의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거시적인 수준에서 보면 큰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군사·안보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대미 견제를 위한 제휴와 연대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중국의 총체적 국력은 미국에 크게 떨어지며, 미국의 국력에 대등하게 근접하는 데는 순조로운 성장과 발전을 가정한다고 해도 15~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는 중국과 긴밀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안에 따라 국익 기준을 판단하며 미국과 중국 어느 한편과 제휴함으로써 다른 한편을 견제하는 유연한 다면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강봉구 /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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