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9월 1일

영화리뷰 | “하나가 되는 것부터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2012년 9월호

영화리뷰

<코리아> “하나가 되는 것부터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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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세계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북한 역시 금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20위에 올랐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워 열대야로 고생을 했는데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위로가 됐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남과 북은 국력에 비해 국제 스포츠 순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가끔은 통일한국의 미래를 그려보며 단합된 힘의 청사진을 흐뭇하게 그려보곤 한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하나된 남북선수들

지금부터 꼭 21년 전이다. 1991년 5월 6일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이곳에서 최초 남북단일팀이 중국과 결승에서 맞붙었다. 누가 봐도 당시 탁구계를 주름잡던 중국의 우승이 확실했다. 그러나 한반도 깃발 아래 뭉친 남북단일팀은 그야말로 ‘영화같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었다. 3대 2의 짜릿한 승리였다.

영화 〈코리아〉는 당시의 영화 같은 실화를 담고 있다. 46일간의 ‘통일’ 이야기다. 남북기본합의서 등 본격적인 남북접촉이 진행되던 정치적 흐름에 맞춰 스포츠 이벤트로 기획된 것이 남북단일 탁구팀이었다. 1980년대에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경험한 세대라면 당시의 국내 탁구열기를 알 것이다. 동네마다 탁구장이 들어섰을 정도로 탁구는 인기 스포츠였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탁구의 묘미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북한에서 활동했었던 그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탁구를 즐겨 쳤다고 말했다. 공이 네트를 오가면서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친밀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과거 미·중 간 핑퐁외교도 있었던 만큼 탁구는 정치적 제스처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영화는 남북 합의에 따른 남북단일팀 결성 소식이 대표단 숙소로 전달되면서 시작된다. 물론 당시 전 대회 2위였던 남한선수들의 반발은 거셌다. 당시 북한은 전년도 성적이 5위였다. 하지만 윗분들이 합의한 내용을 거부할 수는 없는 법. 대표선수들은 대회장인 일본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북한선수들과 합류하면서 영화의 내용이 전개된다.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역사적 사실과 동일하다. 영화 속에서는 북한의 유순복 선수가 실력발휘를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우승을 이끌어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부동의 세계 1위인 ‘핑퐁마녀’ 덩야핑과 가오쥔을 차례로 꺾는 파란을 일으킨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유순복 선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북측 주인공은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리분희 선수로 낙점됐다.

영화는 큰 틀에서 남쪽 현정화와 북쪽 리분희 간 갈등과 협력의 과정이다. 하지만 현정화와 리분희의 인연은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시작되었고 영화와는 다르게 금세 친해졌다고 한다. 영화 속 갈등상황은 영화를 위한 연출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 배우들은 대역 없이 대부분의 경기장면을 소화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그 이면에는 실제 주인공인 현정화 감독의 도움이 컸다.

‘제2의 현정화 – 리분희’로 완벽 변신!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실감나는 연출을 위해 7개월 동안 배우들을 담금질했다. 그 과정에 오른손잡이인 배두나는 왼손잡이 리분희를 연기하기 위해 왼손으로 탁구를 쳤고 북측 선수들도 각자 지방에 맞게 평양 사투리, 함경도 사투리를 골고루 쓰도록 했다.

이 영화는 탁구공의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감정의 호흡이 빠르게 전개된다. 배우들의 열연이나 실화에 바탕했다는 문구가 주는 신뢰감 등이 결합된 비교적 잘 만들어진 영화다.

다만 단순히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스포츠 신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중국 등 상대팀의 비열함을 강조한 부분이나 현실성 없는 남북 선수 간 러브 라인, 보위원들에 의해 경기 참여가 중지되었다가 남측 선수들의 호소로 다시 경기에 나온다는 스토리는 다분히 ‘영화’스럽다.

하여간 이 영화의 배경인 1991년은 ‘남북대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당시 남북대표팀은 서울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가진 뒤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넘어갈 예정이었지만 국내 정치사건으로 인해 일정이 취소되었다. 그만큼 남북관계는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다. 영화 〈코리아〉도 그러한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1991년 이후 남북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최초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지만 단일팀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에 있어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산된 상태다. 1991년의 열기를 영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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