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우치선, 고려청자 다시 현실로! 2012년 9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우치선, 고려청자 다시 현실로!

<쌍학장식청자꽃병>, 우치선 作.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북한 대외전람총국이 지난 2006년 7월 4일~8월 1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공동주최한 ‘2006 남북공예교류전’에 출품되었다.
벌써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김포공항에서 평양공항으로 직접 이동하는 특별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짧은 여행 중 만수대창작사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전시장에 들렀다.
만수대창작사에는 3천여 명이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는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최고의 미술가들도 100명 가까이 포함되어 있다. 실질적인 북한 최고의 창작 집단인 것이다. 조선시대 김홍도나 신윤복이 근무했다고 하는 ‘도화서’처럼 국가가 최고의 미술가들을 뽑아 월급을 주면서 필요한 일들을 창작하게 하는 제도다.
이들이 창작한 작품을 파는 곳이라고 해서 호기심을 가득 품고 둘러보던 중 발걸음을 붙잡은 작품이 있었는데 도예가 우치선을 등신대의 크기로 제작한 조소작품이었다. 처음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놓여 있는 위치상 나의 뇌가 이 작품을 조건반사적으로 작품으로 인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이끌려 작품을 코앞에 놓고 일일이 둘러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털을 하나하나 심어 사실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킨 머리카락, 자연스러운 포즈와 손동작뿐만 아니라 직접 사용했던 손때가 확연히 드러나는 방석과 슬리퍼의 모습에 한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북한의 조소작품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가끔 TV 뉴스에서 보게 되는 김일성 동상일 것이다. 남북 미술교류가 활발하였던 때에도 주로 소개된 북한 작품들은 회화작품이었고, 그 외에는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공예 작품이 소개되는 정도였으니 조소작품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바뀔 계기는 없었다. 매번 TV에 비치는 엄청난 크기의 동일한 동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북한 조소작품에 대한 기대는 없다.
경직된 사회일수록 절대자를 형상화할 때는 매우 구체적인 지침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우치선의 상처럼 절대 권력자가 아닌 조소상에서는 북한 미술계가 지니고 있는 사실주의의 힘이 잘 드러난다.
환갑 넘어 만수대창작사 들어와
우치선은 북한 미술계에서 고려청자를 재현했다고 극찬을 받았던 공예가로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김일성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1919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여 식민지시대 송림도자기공장, 개성고려자기공장 등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도자기를 배웠고,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운영하다가 버리고 떠난 공장을 복구하여 공장장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용자기를 구워내기 시작하였다. 이후 고려청자의 재현에 힘을 쏟았다.
우리와는 달리 전통을 그대로 보전하고 전수하는 것보다는 전통을 현대화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북한의 문화정책 속에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지만 당시에 고려청자를 복원하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환갑이 지난 나이에 만수대창작사에 입사한 우치선은 이후 북한의 현대도자를 이끌었다. 북한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는 2003년 사망한 이 작가의 형상이 만수대창작사에 전시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웅변되고 있었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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