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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전쟁·평화 | 한·중·일 영유권 분쟁과 포퓰리즘 2012년 9월호

인간·전쟁·평화

한·중·일 영유권 분쟁과 포퓰리즘

이유야 어떻든 2012년 여름 동아시아 지역은 통합과 조정의 장밋빛 희망보다는 대결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였고, 일본은 이에 대해 독도가 분쟁지역임을 국제여론화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 올림픽축구팀의 박종우 선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한·일전 승리의 세리모니를 했다는 이유로 동메달 시상대에 서지 못하기도 하였다. 오랜 역사의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해방이후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대결과 갈등의 역사 반복하는 동아시아

동아시아에서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홍콩민간단체 시위대 소속 7명이 상륙하여 중국 오성홍기를 섬에 꽂으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일본 우익단체는 8월 19일 기초단체의원 2명을 포함한 9명을 섬에 상륙시켰다.

일본정부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 갈등사태 등을 고려하여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상륙한 홍콩시위대를 강제추방함으로써 조용히 처리하고자 하였으나, 중국 내에서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 간의 영유권 분쟁이 없는 것도 아니다. 1951년 한국산악회와 해군은 이어도를 조사하고 이름을 새긴 동판을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혔으며, 1987년에는 제주해양수산청이 ‘이어도 등부표’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한국해양연구소의 첨단 관측장비와 헬리콥터 착륙장을 갖춘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이어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2006년 중국은 이어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두 차례씩 항공순찰을 실시하였다.

삼국 간의 영토분쟁에 대한 입장은 분명하다.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국가는 해당지역이 분쟁지역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영유권에 대해 도전하는 국가는 실효적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분쟁지역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최근의 한·중·일 세 나라의 영유권 분쟁에는 각국의 국내정치적 상황,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우선, 최근 세 나라의 정부들은 우익세력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국내적 정치여론의 악화 등에 따라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면서 상대국에 대해 도발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일, 중·일, 한·중의 외교 당사자들은 타협과 협의보다는 외교적 관행에서 벗어나 포퓰리즘적인 언론플레이를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 삼국 간 외교의 상실은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분쟁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해당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일 어업협정을 통하여 한국과 일본은 울릉도와 달리 독도의 35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합의하지 않았다. 한국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정하지 못하였을 뿐, 한국의 영해이기 때문에 어업협정에 이를 명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일본은 어업협정에 따라 독도를 둘러 싼 바다를 중간수역으로 간주하고 영유권을 주장한다. 일본에게 독도는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해양자원의 획득을 통한 해양경제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한편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댜오이다오를 둘러 싼 영유권 분쟁도 100억t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석유매장량과 천연가스 채취 및 탐사권과 같은 막대한 경제적 가치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어도를 둘러 싼 영유권 분쟁도 중국에게는 서해의 대륙붕을 개발하는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동아시아의 영유권 분쟁은 국내정치와 경제적 요인들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국제역학 관계의 변화도 분쟁의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해군력 증강에 역점을 두어왔다.

그 결과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체제의 국제질서는 서서히 미·중을 중심으로 한 양극/다극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분명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어도 및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해양과학기지 외에 군사탐지시설이 설치된다면 자국해군함대 특히 잠수함의 이동 경로가 다른 국가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중국으로서는 영유권 분쟁을 촉발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활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산업국 간의 전쟁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핵전쟁의 위험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쟁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한 주장에 맞게 국제사회의 분쟁은 인종, 자원, 종교 등의 이유로 발생한 내전이 주를 이루었다. 전통적 전쟁의 원인이었던 영토문제는 모두 해결되었거나 폭력과 전쟁을 수반하지 않고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하였다.

전쟁으로 비화된 영토분쟁 역사 잊지 말아야

하지만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순환구조도 지니고 있다. 해묵은 이슈 같은 영토분쟁이 사라지지 않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를 띠고 발생하는 것도 역사의 순환구조와 진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지나해에서 발생하고 있는 영토분쟁 중에 베트남은 중국의 영해를 향해 실탄사격 연습을 하기도 했으며, 베트남 지식인들은 필리핀과 중국의 분쟁과 관련하여 노골적으로 필리핀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중국의 팽창과 일본과 미국의 개입 등 복잡한 국제관계도 동아시아 지역을 분쟁지역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위기관리를 하면서 국가주권과 경제적 이익을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외교적 대응은 무엇인지 국민적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결정 과정이 영토분쟁을 전쟁으로 비화시키곤 했던 역사의 교훈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영훈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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