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한국은행 같은 법인이 되고 싶어요” 김범석 열매나눔재단 사무총장 2012년 9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한국은행 같은 법인이 되고 싶어요” 김범석 열매나눔재단 사무총장
북한이탈주민 지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열매나눔재단은 2차적 사회복지 운동으로 자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재단입니다. 크게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과 사회적기업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2007년 재단이 설립되고 처음 사회적기업을 시작함에 있어 누구와 함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나갈까 고민을 하던 중 그 전부터 여명학교와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지원을 하면서 알게 된 북한이탈주민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어려움을 새롭게 보게 되었죠.
평범하게 제3자로 돕고 있을 당시에는 잘 몰랐던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의 현실을 자료와 심층 면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특히 가장 많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일자리에 대한 호소였는데요. 당시 9천명의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소외된 이웃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기에 우리는 이들을 돕는 전문적인 재단이 되고자 마음먹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이탈주민 지원과 관련, 열매나눔재단의 활동은?
사업 초기 9천명의 북한이탈주민 중에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또 그들 대부분이 북한에 있을 당시 기술이 없는 단순 노동자 출신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간단하게 생각해보죠. 30~40대 전문기술을 갖지 못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가 않죠.
대다수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원하는 직업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결국 단순 제조업뿐이더라고요. 제조업체에 취업을 시키려 하다 보니 교육이 필요했고, 그 교육은 취업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교육을 하고 취업을 돕다보니 당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감동을 받아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사회적기업지원센터를 운영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요. 그렇게 정부와 함께 북한이탈주민 사회적기업지원센터를 설립하여 교육과 취업 그리고 사회적기업 설립을 진행하였죠.
다행히 저희는 자활과 자립을 위한 훈련과 인프라 자본 등이 다 갖추어진 재단이었기에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사회적기업지원센터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1년 동안 수백명의 취업을 돕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어요.
열매나눔재단의 희망기업 설립, 효과는?
처음 ‘희망기업을 설립해보자’며 북한이탈주민 분들과 1호 공장인 ‘메자닌 아이팩’을 만들 당시 모든 사람들이 공장 설립에 반대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우리가 북한이탈주민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다고, 그분들과 공장을 하면 다 망한다고 ‘예언(?)’을 해주셨어요.
그때 우리 대표이사이신 김동호 이사장님이 참 멋있는 표어를 만들어 주셨어요. 프로젝트명을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정해주시며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냐’를 따지면 이것은 ‘할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인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가’를 따지면 ‘해야 하는 일’이 정답이다. 해야 할 일을 하다가 망하는 것이 하지 않고 망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우린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것이죠. 그래서 박스 공장을 시작하게 된 것이에요. 처음엔 참여한 북한이탈주민 분들도 힘들어 하였고 우리도 힘들었지만 6개월 동안 같이 울고 웃으면서 서로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처음으로 공장에 흑자를 내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죠. 1호 희망기업이 성공하더니 무척 박대하던 정부가 3억을 들고 투자를 해 주겠다며 같이 2호 기업을 만들자고 제안해 왔고요.
SK에너지도 나서서 투자를 해주었죠. 2호 공장은 처음부터 열매나눔재단이 만들고 싶었던 그 유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민(열매나눔재단)’, ‘관(보건복지부)’, ‘기업(SK에너지)’ 의 ‘1:1:1 매칭 합작회사’로 북한이탈주민 사회적기업이 탄생한 겁니다. 그 뒤 3호 기업 ‘고마운손’ 도 마찬가지로 1:1:1 매칭으로 만들어 졌고 수많은 북한이탈주민 분들이 찾아와 상담하고 취업하는 일들이 이루어졌죠.
연이어 탈북청년을 위한 카페 ‘블리스&블레스’까지 설립되어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희망 기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믿어 주고 기다려 주면 북한이탈주민도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보여주는 모델을 바로 우리 재단의 공장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제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 분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장도 일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 우리 희망 공장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활동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적은?
‘블리스&블레스’ 카페에 참 좋은 청년이 들어왔어요. 열심히 일했고 성실했던 친구였죠. 그런데 어느날 한 달간 휴가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왜냐고 물어 보니 이 친구의 탈북을 도와준 NGO 단체가 이 친구를 데리고 유럽을 돌면서 간증을 시키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직장에는 원칙이 있고 휴가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한 명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면 모두에게 그 기준을 적용해 주어야 하고 그게 기준이 되어버린다.”고 말하며 허락하지 않았죠. 그리고 그 친구를 부른 NGO 팀원들을 만나서 설득하였어요.
“이 친구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당신들 단체를 위해 간증 거리를 만들어 해외로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 좋은가?” 슬프게도 그 NGO 팀원들은 “우리가 이 친구를 데리고 오기 위해 투자를 했으니 그 돈을 갚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정말 욕 나올 뻔했어요. 도대체 왜 존재하는 NGO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단체가 과연 사역자의 자격이 있는 단체일까요?
우리 사회의 많은 단체들이 이처럼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사업을 한다며 실제로는 이들의 정착을 막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요. 결국 그 친구는 우리와 그 단체 중간에서 힘들어 하다가 그만두었죠. 그 단체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았어요. 이제부터라도 그러지 않길 이야기하고 싶어요.
반대로 가장 행복을 느낄 때?
처음 북한이탈주민 사역을 할 때 ‘북한이탈주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북한이탈주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 사역을 하는 분들의 자문을 받기보다는 북한이탈주민분이 우리 식구처럼 같이 일하길 희망했죠.
그래서 만난 분이 탈북여성연대 강수진 대표에요. 365일 같이 일하면서 전 이분을 통해 북한이탈주민 분들을 알게 되었고 이분은 저를 통해 남한의 문화와 사업과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법을 알게 되었죠. 다 이야기 할 순 없지만 지금도 가끔 탈북여성연대 강수진 대표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제는 스스로 미국 국무부에서 지원도 받고 백악관도 가고 또 사회적 기업도 만들어 대표도 되셨고, 또 사랑하는 딸도 북한에서 데려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요. 이처럼 지금도 우리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리고 왔다거나, 이곳에서 결혼하고 집도 구하고 하며 산다는 얘길 자랑할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통일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민간영역과 정부기관이 따로 각기 자신들이 가진 인프라를 통한 사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먹구구식의 북한이탈주민 정책이 아닌 민과 관이 협력하여 북한이탈주민 자립과 자활을 돕는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죠.
북한이탈주민이 교육을 받으면 돈을 주는, 이런 정책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자격증을 따면 무조건 돈을 주는, 이런 자격증 제도도 안 돼요. 근본적으로 정책적인 수정이 필요합니다. 상식적으로 9천명의 자립을 위한 시스템과 2만4천명의 자립시스템이 같을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더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생겨날 것인데 이들을 우리 사회가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지에 대해 전 현재는 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일 이후를 생각한 근본적이고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그 정책적 접근이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이탈주민을 자립시키지 못한다면, 꿈에 그리던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보다 현명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앞으로의 비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민간 NGO, 그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그겁니다. 실력있는 좋은 NGO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새로운 NGO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1년전 열매나눔재단은 ‘Merry Year Social Company(MYSC)’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어요.
실력있는 NGO를 발굴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법인이죠. 자금과 컨설팅 둘 다 지원하여 좋은 법인을 설립하게 돕고, 이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이탈주민 분들을 위한 좋은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역을 함께 진행해 나갈 예정이에요.
우리는 이를 가리켜 ‘한국은행 같은 법인’이 되자고 하였어요. 한국은행이 다른 수많은 은행들의 강한 경쟁력과 투명한 경영을 지도하여 결국 국민들의 건강한 경제활동을 보장하도록 힘쓰는 것처럼 우리 재단 역시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해 힘써나갈 겁니다.
이동훈 / 본지기자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