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흡연 도야지 2012년 9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흡연 도야지
함경북도 김책에서 있던 일이다. 새 며느리를 맞은 김 씨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벌써 며느리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김 씨는 흐뭇하게 웃었다. 생김새부터 마음에 꼭 드는데다 부지런함까지 겸했다고 보면 이건 정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셈이다.
더구나 새아기는 큰 기업소 당 비서의 외동딸이다. 고생을 모르고 유복하게 자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게으름이나 피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김 씨는 얼른 옷을 입고 부엌문을 열었다. 새아기는 없는데 벌써 윤기 흐르게 닦아 놓은 솥에서 김 서리는 소리가 시익 났다. 아궁이에선 맞춤하게 얽혀 넣은 장작이 불길을 세운다. ‘드르렁’, 윗방에선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는 아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 복도 많지.’ 김 씨는 마당 귀퉁이에 지어 놓은 변소에 가려고 부엌문을 열었다.
“몇 살 때부터 피웠느냐?”
“어머님,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며느리가 들어오며 반색한다. 너무 고와 한 번 등을 두드려 주고 난 김 씨는 성큼성큼 걸어 변소로 갔다. 불안한 며느리의 눈길이 자기 등 뒤를 지켜보고 있는 줄은 미처 모르고 말이다.
변소 문을 열고 들어 선 순간 김 씨는 갑작스레 훅 끼치는 냄새에 머리칼이 곤두섰다. 담배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아니, 그럼 며느리가?’ 김 씨는 집 앞 길까지 나와 인적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대문 안에 있는 변소에 이른 아침부터 남이 들어와 일을 볼 리 없다. 지금껏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분명 며느리의 짓이다. 그렇게 단정 짓고 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방금 전 그렇게 돋보였던 며느리의 상이 오물을 뒤집어 쓴 흉한 몰골로 되돌아온다.
휘청휘청 집에 들어 온 김 씨는 아무 내색이 없었지만 더 이상 며느리의 그 고운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영감이 자는 방으로 힘없이 들어섰다.
마침 일어나 앉아 통에 담아 놓은 써레기 담배를 말던 영감이 의아스럽게 김 씨를 쳐다본다. “영감이 방금 변소 갔다 왔소?” “아니, 나 지금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기에 소태 씹은 우거지상이요?” “우거지가 아닌 노랭이를 씹었수다.” “뭐라? 이 노친이 자다가 얹혔나?”
김 씨는 부엌에서 며느리가 들을까 영감의 귀에 대고 한 참 속삭였다. 김 씨가 말을 마쳤을 때 부엌에 들어 선 아들의 살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에 시부는 아들의 퇴근 전에 조용히 며느리를 불러 앉혔다. 시부의 엄한 눈길 앞에서 며느리는 더 속이지 않고 새벽 변소에 들어 가 담배를 피운 사실을 이실직고 했다.
“몇 살 때부터 피웠느냐?” “예?” “뒤를 보며 담배 피우는 습관은 오랜 경력이 아니고서는 몸에 배일 수 없는 것이니라.” “예, 스물세 살 때부터…” “뭐라? 계집애가 그 나이에 담배를 배웠다고? 어허, 이런. 내 당 비서 그 어른을 그리도 공경했건만, 이제 보니 외동딸 행실하나 바로 잡지 못한 바보였단 말이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버님. 사실은 남다른 사연이 있어서…”
며느리는 사실 어릴 적부터 비만에 시달렸다. 밥도 잘 안 먹고 고기도 줄였지만 맹물에도 살만 찌는 체형 같다. ‘뚱녀’라는 별명을 그때부터 등에 지고 살았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어느 날 한약방 의사가 찾아와 ‘뚱녀’를 면하려면 독초(독한 담배)를 피워 보라고 했다. 그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로 황당한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큰 결심을 내리고 어머니의 비호 아래 몰래 독초를 피웠던 모양이다. 현대 의학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든 석 달 만에 여러 다른 이유로 살이 빠지긴 했다.
“끊도록 해라 … 도야지가 된다 해도”
하지만 이제 중독된 담배를 끊어버리기는 힘들었다. 다시 뚱녀가 되기 싫다. 살찐 돼지처럼 돼버린 체형 때문에 혼기도 놓칠 뻔했다. 거리에 나서면 꼬마들이 줄줄 따라다니며 “도야지, 도야지” 하며 놀려주었다. 아마 담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렇지만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시부는 엄한 명령을 내렸다. “동기는 이해되나 담배 피우는 버릇은 절대 안 되니 이제부턴 끊도록 해라. 난 네가 도야지가 된다 해도 담배 피우는 새 며느릴 맞은 시부가 되고 싶진 않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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