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9월 1일

특집| 對北 북한 핵과 미사일, ‘보통국가화’ 빌미 삼아 2012년 9월호

특집 | 동북아 안보를 보는 일본의 눈

對北 북한 핵과 미사일, ‘보통국가화’ 빌미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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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일본 도쿄의 한 시민이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관련 신문기사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내우외환이 계속되고 있다. 내정은 총선거를 둘러싸고 정계개편의 거센 소용돌이에 말려들었고, 독도와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이미 국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한 때 무르익었던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이제 정계나 민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런 와중에 8월 9~10일에 베이징에서 일본인 유골반환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열린 북·일 적십자회담은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교도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북·일 양국은 적십자회담을 통해 북한 내에 있는 일본인 3만여 명의 유골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고 향후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적십자회담이 북·일 간의 공식회담의 재개로 이어지는 추동력을 얻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돌이켜보면 북·일관계에서의 가장 큰 사건은 2002년과 2004년의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이었다. 냉전 종식 후 10여 차례 계속된 국교정상화 회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한 양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으로 수교를 향한 길로 한 걸음 내딛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발생했던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간 비밀교섭의 결과 성사된 정상회담이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백외교’라고도 불리는 ‘통 큰’ 결단을 통해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정상회담의 결과 중의 하나로 2000년에 중단된 수교회담이 2002년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재개되었지만 납치문제를 둘러 싼 일본 내의 역풍으로 북·일교섭은 한 걸음을 내딛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 5인의 납치 피해자 가족의 일본 귀환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고이즈미 총리는 2004년 5월 제2차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대북관계 개선,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린지 오래

하지만 2004년 11월 납치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인 것으로 발표되자 일본 내의 대북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2006년 6월에는 대북 경제제재를 촉구하는 『북한인권법』이 가결되었고, 북한이 7월에 대포동 2호 등 모두 7발의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하자 일본은 북한의 화물여객선 만경봉 92호의 입항 금지, 북·일 간 인적교류 제한 및 전세기 취항금지를 포함한 대북제재를 발표하였다.

그 후 간헐적인 북·일회담이 포괄병행 협의라는 이름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표면적으로는 납치문제가 양자회담의 진전에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실제로 양자회담 진전을 가로막는 문제는 상호 간의 신뢰를 둘러싼 전략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북·일 양국은 10여 년간 수교회담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도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동상이몽의 상황을 연출해 왔다. 즉 양자가 추구하는 목표와 접근방식이 다른 것이다. 일본에게 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남아있는 2가지 큰 외교적 과제는 북한과의 수교와 러시아와의 평화협정이다. 일본은 강대국은 아니지만 강대국에 버금가는 경제강국으로서 국제적 역할을 제고하고, 국내적으로는 납치와 같은 인간안보 문제의 해결에 노력해 왔다.

반면 북한은 약소국으로서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최강국인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우선순위를 두는 한편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로 이용할 정도로 관심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납치에 대해 사과까지 하면서 북·일관계 정상화에 관심을 쏟아 부은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수교회담의 방법론에서도 북한은 과거 식민지 통치에 대한 청산과 경제원조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일본은 납치문제와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안보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즉 북한은 먼저 수교가 이루어져야 납치문제와 안보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 반면, 일본은 납치문제와 안보문제의 선해결을 희망했다.

그럼 변화하는 일본의 동북아 전략 속에서 북한은 어떤 존재일까? ‘신(新)방위계획대강’에서도 드러나듯 일본의 국가방위 초점은 자위대의 홋카이도 전진 배치를 통한 구소련의 남하저지로부터, 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오키나와 등 취약도서 지역으로 자위대를 재편하는 것으로 맞춰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일본이 방공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위비를 집중투자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즉 중국은 중장기적인 위협이지만 북한은 일본에 긴박하고 구체적인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비한 미사일방공망 확충 차원에서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PAC-3)을 추가 배치하고, 이지스함에 탑재된 요격미사일도 강화할 계획이다.

일본, ‘北은 긴박하고 구체적인 군사위협 대상’

종국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일본이 ‘평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변신할 수 있는 적절한 구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앞으로도 일본은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빌미로 제한된 방위비 내에서 방공망의 확충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새로 들어선 김정은 정권이 좀 더 유연한 대일 행보에 나선다면 북·일 간의 공식회담이 재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일 간의 안정된 대화의 틀을 마련하고 유지하기에는 대내외적 걸림돌이 너무 많다. 일본 정부의 재정악화와 국민여론의 반대로 인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쉽지 않으며, 그 전에 해결되어야 할 납치문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이 북·일 간의 대화 분위기를 계속 저해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종된 북·일관계는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상당기간 표류할 것이며, 일본은 자국 국방력의 강화를 위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기존의 패턴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손기영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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