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0월 1일

인간·전쟁·평화 | 전쟁과 경제교류, 적과의 동침? 2012년 10월호

인간·전쟁·평화

전쟁과 경제교류,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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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으로 5·24 대북교역 제재조치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가운데 대북 경협업체들의 피해액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9월 6일 한적한 모습의 속초항 ⓒ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의 지난 5월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에 의한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교역 제재조치(5·24조치)로 인해 2년 동안 남북경협기업의 업체당 피해액이 약 2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5·24조치로 인해 북한의 경화수입이 감소함으로써 대북 경제압박의 효과가 있다고 보지만, 전문연구자들은 제재효과는 적고 북·중경협만 늘려주었다고 주장하여 5·24조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남북경색 국면 속에서도 그나마 남북관계의 끈을 이어 오는 것은 개성공단으로, 지난 8년간 누적 생산액이 1조8천억원에 이르는 등 꾸준히 성장해 오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전쟁 혹은 군사적 긴장상태의 악화에 직면하여 국가들은 상대국과의 경제교류를 전면중단해 왔는가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적 대립이 심화되거나 전쟁이 발발하면 당사국 간의 무역을 비롯한 경제교류는 전면 중단된다고 알려져 왔다.

자유주의자들은 전쟁이 상호교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경제부문의 교류가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현실주의자들은 적대국과의 경제교류는 적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그 이득을 군사력 증강에 활용함으로써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군사적 위기 혹은 전쟁 시 당사국 간 경제교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과 달리 역사 속에는 경쟁국 혹은 전쟁의 당사국 사이에 군사력의 증강에 활용될 수 있는 전략적 물자를 포함한 경제교류가 지속되는 사례도 많다. 16~17세기의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80년 전쟁 동안 네덜란드 상인들은 스페인 함대의 물자 수송을 담당하였다. 이를 통하여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의 국경을 수호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였으며,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공격으로부터 스페인 상선 보호를 위한 함대 유지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 발발 후 적대국 간 교역량 증가하기도
영국과 네덜란드는 17~18세기 중상주의 시기에 상업적 이익의 충돌로 인하여 네 차례에 걸쳐 전쟁을 하였다. 네덜란드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자 크롬웰 등과 같은 영국의 지도자들이 이를 시기하여 전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국내적으로 국왕에 대한 충성을 놓고 정치세력 간 이견이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영국의 보험회사는 네덜란드와 함께 영국함대를 공격하던 프랑스 전함 및 상선을 보험에 가입시켰다. 해군력이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던 시기에 영국 보험회사는 적국의 해군함대에 대한 보험을 통하여 자국에도 해군력 유지비용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현대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긴장상황 혹은 전쟁은 양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교역의 감소 혹은 중단을 초래하기도 하고 경제교육의 증가를 가져오기도 한다.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은 양국 간 경제교역량의 대폭 축소로 이어졌고, 이후 경제관계의 회복까지 시간이 걸렸다. 반면 전쟁의 발발 후 교역량이 증가하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하였지만 양국 간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영국과 이집트 간의 1956년 시나이 전쟁, 1987년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 1900년 의화단 사건에 따른 청나라와 미국의 전쟁 때도 양국 간 경제교역이 전면 중단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한편, 적대국 간의 교역은 전쟁의 발발 직전에 오히려 감소하기도 한다. 전쟁에 돌입하기 전에 각 국가들은 최대한 전략적 경제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교역을 증대할 것으로 기대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의화단 사건 이후 청나라와 미국, 청나라와 영국의 경제교역량은 갑자기 감소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와 터키도 양국이 전쟁으로 치닫기 전에 경제교역을 축소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각 국가의 정부가 교역을 제한하고 경제관계를 단절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향후 전쟁에 의해서 경제교역이 중단될 것을 염려하여 미리 모든 물류선적을 완료하기 위하여 사적 교역이 급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정부의 일방적 경제제재 조치가 사적 경제주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전면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적대국가 간의 경제교역이 지속되는 현상에 대하여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 정치지도자들이 양국 경제교역의 감소가 제3국에 의한 교역 당사국 교체로 이어지는 우려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 적대국과의 경제교역을 자국의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상대적 이익 증대의 기회로 파악할 수도 있다.

또한 정치지도자들은 적대국과의 전면적 교류중단이 가져 올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비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적대국과 교류를 지속하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전쟁 중 사적 영역의 경제행위자들은 정부가 전면적으로 경제교류를 중단하는 것을 억제하고자 로비를 하기도 하고, 사적 영역의 경제교류가 전쟁 수행비용을 충당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대국과의 교역을 허락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민 50%, 北 사과 없으면 대화교류 중단해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2년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의 약 50%는 천암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어떠한 대화나 교류도 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서는 62.5%가 필요하다고 보고, 남북한 경제협력이 남북한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국민들도 65.3%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70%가 넘는 국민들은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북·중 협력관계의 강화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은 국민들이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이념적 성향이나 가치규범적 기준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기 정치·경제적 비용에 대한 현실적 이해기준도 함께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치가나 정책입안자들의 상황판단과 이해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역사적 사례들이나 국민들의 생각을 종합해보면 대북관계에 있어서 일방적 제재조치만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정책적 수단을 동시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송영훈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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