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0월 1일

통일독일 현장을 다녀와서 | 장벽은 무너졌으나 장벽의 그늘은 아직 남아 있어 2012년 10월호

통일독일 현장을 다녀와서

장벽은 무너졌으나 장벽의 그늘은 아직 남아 있어

OR_201210_26

최초의 주민집단 시위로 독일통일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라이프찌히의 니콜라이교회

독일 여정은 두 번째이지만 옛 동독지역을 밟아 보기는 처음이다. 통일독일 현장연수 첫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촘촘한 스케줄로 채워져 금세 피로감과 후회감(?)이 스며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독일통일의 교훈을 배우러 왔으니 일정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싶어 나름대로 열심히 쫓아다니고자 했다.

우선, 동·서독 간의 지역개발 격차 해소 노력을 눈여겨봤다. 독일연방 재무부와 독일연방의회, 이포(ifo)경제연구소 드레스덴 분원, 뮌헨 정치대학 등을 방문하면서 통일비용으로 약 1조5천억유로(한화 약 2천조원)를 지출했다는 일치된 설명을 들었다. 당초 통일 전 예상했던 비용보다 훨씬 늘었고, 통일직후 예측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써야했다.

이처럼 많은 통일비용이 지출된 이유는 동독의 산업시설, 각종 인프라가 예상보다 낙후되었고 주택·의료·교육·각종 사회보장 분야의 동서 격차가 의외로 큰 데 있었다. 특히 환경 관련사업 투자, 고속도로 등 도로 건설, 철도 확충, 교육환경 격차 해소, 주택분야 현대화, 의료시설 개선 등 소위 ‘동독 재건 및 동서독 발전격차 해소’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은 것이다.

그런 결과 소비성 지출이 투자성 지출보다 많다고는 하지만, 동독지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저히 개선되고 달라지는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럼에도 동독지역은 행정지원체제의 미비, 급속한 임금인상 요구, 동독인 경영자들과 전문 인력의 부족 등으로 아직 동·서독 간의 지역개발 격차가 적지 않다고 한다.

동·서독 간 지역개발 격차 해소 노력 눈여겨 봐

다음으로 동독지역의 도시발전과정과 그 결과에 주목해 본다. 통일 후 구동독 도시 대부분은 인구감소 문제를 겪게 된다. 자유와 일자리를 찾아 170여 만명이 동독지역을 떠나고,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입어야하는 계층들이 넘치다보니 많은 노동력 부족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활력과 미래가 없는 도시로 전락한다. 그래도 비교적 성장과 발전의 모습을 보인 지역은 드레스덴, 라이프찌히, 포츠담, 예나 등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스케줄을 따라 내려오면서 몇몇 도시들을 만나보니 얘기로 듣던 것보다 훨씬 실감이 난다. 슈프레강(베를린) , 엘베강(드레스덴), 도나우강을 건너 이자르강(뮌헨) 등의 유역을 한줄기의 흐름으로 답사해 보았다.

베를린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지역의 구분이 거의 없어 보인다.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겨서 통일독일의 시작을 베를린에서 했다는 상징성이 돋보인다. 그래도 아직 동베를린 지역에는 동독시절에 지은 아파트와 다른 시설의 디자인이나 색채감이 남아있어 동·서 베를린을 굳이 구분해 주고 있다.

동쪽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모습이나 분위기도 좀 어두워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엔쉔하우젠 슈타지’ 감옥과 그 주변풍경이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아직 장벽의 그늘이 남아있고, 진정한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여정에서 만나본 독일측 인사들의 일관된 얘기처럼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최초의 주민집단 시위로 독일통일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라이프찌히의 역사적인 교회를 일정상 방문하지 못하고 책자의 설명만 듣고 머릿속 그림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지만 드레스덴은 과거의 명성대로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였다. 작센왕국 수도로서의 역사유적과 유물들을 비교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피폭되어 많이 파괴되었으나, 동독시절과 통일과정을 거치면서 역사도시, 문화예술도시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고 있다. 통일비용이 문화유적 복원사업, 교통망개선사업 등 드레스덴에도 많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다. 드레스덴 성, 오페라하우스, 성모교회, 츠빙어궁전, 브뤼울테라스 등이 ‘엘베강변의 베네치아’ 라는 명성을 빛내고도 남는다. 드레스덴시청과 시의회에서의 설명과 견학은 드레스덴이 새로운 첨단산업도시, 과학기술도시로서의 도약을 활기차게 준비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이 국경지역 관리 문제이다. 동·서독 국경은 외형적으로는 동·서진영간의 군사적 대치의 상징물이었으나 실제적으로는 동독이 체제수호를 위해 세운 장벽의 성격이 강하다. 동독이 주민들의 서독탈출을 저지하기 위해 철조망과 지뢰를 일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독일 중앙기록소의 통계에 따르면 동·서독 국경에서 발생한 탈주관련 희생자수는 872명이고 폭발물 희생자는 270명이다.

군사분계선에 박물관과 기념관이 들어서
통일이후 국경을 가르던 철조망 등 군사분계선은 사라지고 이제 27개의 박물관과 전시관, 기념비 등을 통하여 역사적인 분단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국경지역을 대부분 ‘그뤼네스 반트(Gruness Band Green Belt)로 지정해서 자연보호지역으로 종합 관리해 오고 있다.

드레스덴을 떠나 뉘른베르크로 가는 도중에 뫼들라로이트 농촌지역에서 아직도 남겨진 장벽과 탈주 방지시설을 보고 생생한 분단역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뤼네스 반트가 ‘죽음의 선에서 생명의 띠’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장을 확인하고, 바이에른 주정부 환경부에 가서 국경지역을 생태 공원화함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와 관광자원화 하고자하는 강한 의지와 시책들을 직접 새겨볼 수 있었다. 독일인의 부지런함과 선진적인 시책강구 노력이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수는 짧았지만 매우 유익하고 유용한 시간이었으며,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다시 깨우쳐 준 알찬 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전공자로서 독일음악의 통일 전후를 비교해 보거나, 바그너의 고장 라이프찌히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히 독일 통일과정 전반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면서, 그 선례가 우리 한반도 통일에 어떤 교훈과 시사점을 주는지 새롭게 깨우치고 싶다

OR_201210_28

그뤼네스 반트가 ‘죽음의 선에서 생명의 띠’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장을 확인하고, 바이에른 주정부 환경부에서 국경지역을 생태공원화함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와 관광자원화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시책들을 직접 새겨볼 수 있다.

노영란 /대전 성덕중학교 교사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