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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독도식민지배 극복한 대한민국 독립 상징 … 일본 국제홍보전략 경계해야 2012년 10월호

특집 | 영토갈등, 동아시아 덮치다

식민지배 극복한 대한민국 독립 상징 … 일본 국제홍보전략 경계해야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및 식민지배의 역사와 이를 극복한 대한민국 독립의 상징이다. 한·일 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시기적으로 보면 조선인 어부 안용복이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다녀온 17세기에 시작된다.

이로 인해 양국 정부는 울릉도 문제로 2년여 동안 외교교섭을 벌이게 되었고 그 결과 일본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울릉도를 일본이 차지할 경우 강릉과 삼척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는 그로부터 약 200여 년간 우리 영토로 평화롭게 관리되어 왔다.

19세기 들어 양국 간의 관계는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했다. 일본은 이른바 ‘메이지 유신’(1868)을 단행한 후 과거 막부 중심의 에도 정부가 무너지고 일왕 중심의 신정부가 조선과 새로 국교를 맺고자 했다. 이때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가 된 경위를 조사했는데 당시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시마네 현에 통보했다.

그러나 러·일전쟁(1904)의 전운이 감돌던 20세기 초 일본은 독도를 무단으로 편입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시마네 현의 어민이 독도에서 강치(바다사자) 잡이를 독점하기 위해 독도 이용 독점권을 청원한 것을 기회로, 독도를 주인이 없는 땅으로 간주하여 일본의 영토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러·일전쟁에 대비하여 독도에 망루를 세우고 무선 또는 해저전선을 설치하는 등 적함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독도경비대의 한 대원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독도경비대의 한 대원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일전쟁 대비 독도 무단 편입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전후 일본의 영토는 연합국에 의해 결정될 운명이었다. 연합국은 카이로 선언(1943)에서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한 기타 일체의 지역에서 축출되어야 한다.”고 했고 뒤이어 포츠담 선언(1945)으로 “일본의 영토는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및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고 했다. 따라서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일본 정부에게 패전 직전까지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나 점령지에서 일본 정부의 관할권 행사를 중지시켰다.

이때 명백히 독도는 울릉도, 제주도와 함께 일본의 영토로부터 사실상 분리되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도 이러한 입장은 바뀌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방 후 주한 미 군정청의 관할 하에 있던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지금까지 우리의 관할 하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우리 영토임이 대내외적으로 재확인되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이후 그해 10월 20일부터 문화재 반환, 어업,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 따른 대일 청구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교섭을 했었다.

이와 동시에 한국전쟁을 수행하는 어려움 속에도 우리 정부는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을 통해 독도가 우리 관할 하에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한반도 주변에는 ‘맥아더 라인’이라는 해양경계선이 있었는데 이는 한반도 인근해역에서 일본의 어업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이 발효되면 이러한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게 되어 동력선 위주의 일본의 어선들이 한반도 인근 어장을 황폐화 할 것이 우려되었다. 따라서 당시 이승만 정부는 독도 근해의 어족자원을 보호하고 영해와 대륙붕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이러한 해양경계선인 평화선을 선포했던 것이다.

이때 일본은 독도가 평화선 내에 있음을 알고 항의를 해왔으며 평화선을 ‘이승만 라인’이라 지칭하며 국제법 위반이라 비난했다. 그러나 평화선은 당시 연안국이 인접해양에 대해 어디까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국제적 기준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후 일본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1965년 6월 한·일 간의 기본조약 체결 전까지 평화선은 유지되었다. 일본은 국교재개를 위한 협상 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자 수교 조건으로 독도의 주권문제를 의제로 삼고자 했으나 우리 정부의 단호한 의지로 이러한 시도는 무산되었다. 따라서 한·일 간의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실제 목적은 국제적 홍보

결론적으로 일본의 독도 분쟁화 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일방적으로 제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외신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유엔총회와 같은 국제회의에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등 국제홍보전에 나서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양국의 합의가 없으면 제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보를 하는 것은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홍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마찰을 볼 때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자충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국제법 질서 상 모든 국제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분쟁을 국제재판에 회부할 일반 국제법상 의무는 없다. 일본이 독도와 관련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하면서 센카쿠열도에는 분쟁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은 일본의 국제재판 제안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용환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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