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남쿠릴4도 고유영토론 vs 합법귀속론 … 진전없는 ‘정치적 선언’ 60년 2012년 10월호
<편집자주>
동아시아가 영토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멀리 보면 태평양 북서부 쿠릴 열도와 남중국해 군도의 영유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 중국과 ASEAN 국가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고, 지척에선 동중국해의 조어도 및 독도와 이어도를 두고 일본과 중국,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 동아시아 영토갈등은 민족적 자존심과 역사를 바탕으로 주권을 다투는 현재적 문제이자 해양자원과 전략수송로 등 미래의 성장기반을 둘러싼 대립이다. 이에 영토갈등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 각국의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향후 전개방향을 전망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집 | 영토갈등, 동아시아 덮치다
남쿠릴4도 고유영토론 vs 합법귀속론 … 진전없는 ‘정치적 선언’ 6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왼쪽)가 지난 7월 3일(현지시간) 쿠릴열도 4개섬 가운데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 섬을 방문해 한 슈퍼마켓을 둘러보고 있다. 메드베데프 총리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이 섬을 방문하자 일본 외무성은 최근 형성된 양국 간의 긍정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연합뉴스
쿠릴열도는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반도 사이, 오호츠크해와 태평양의 56개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된 지역이다. 이 중에서 러·일 영토분쟁인 남쿠릴4도(일본명은 북방영토이며, 에토로후, 구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로 구성)는 홋카이도에서 불과 56km 떨어져 있고, 현재 러시아가 이른바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며, 일본이 줄곧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15세기부터 아이누족으로 불리는 원주민이 거주했다. 그런데 1855년 러·일은 ‘시모다’ 조약을 통해, 사할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대신 일본은 남쿠릴4도를 자국 영토로 귀속시켰다. 1875년 양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조약을 통해 사할린은 러시아의 영토로, 쿠릴열도 지역은 일본의 영토로 확정했다. 그러나 러·일전쟁(1904~1905년)을 통해 일본은 사할린과 쿠릴열도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중·영·소 연합국은 1943년 12월 1일 카이로 선언을 통해 패전국 일본의 영토 골격을 밝히고, 1945년 2월 11일 얄타협정에서 소련의 쿠릴열도 확보를 명기했다. 소련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며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임으로써 쿠릴열도는 소련 영토로 병합되었고, 러시아는 이를 승계했다.
일, “일괄반환” 강경대응
소련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지만, 일본은 쿠릴열도를 내주는 대신 자국에 가장 가까운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는 홋카이도의 일부이며 쿠릴열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1956년 양국의 평화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의 일본 반환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1980년 중반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양국 간 영토협상과 경제협력 모색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탈냉전기 양국은 수차례 방문과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적 영토분쟁 해결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진전 없이 ‘정치적 선언’으로 끝났다. 2001년 푸틴 대통령의 집권 초기 역시 2도 반환 조건으로 일본의 경제적 투자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강경노선으로 선회했고, 그는 “4개 섬에 대한 일본 귀속을 명문화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푸틴의 후계자였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분쟁지역을 방문한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지난 2010년 11월 그는 일본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나시리섬을 전격 방문했고, 주민들에게 경제지원과 개발을 약속했다. 러시아는 쿠릴열도 주변에 미사일 방어시스템 연대 배치와 구나시리와 에토로후에 군 주둔지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또 2007년부터 낙후된 이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쿠릴열도 사회경제 발전계획’을 시행 중이다. 2015년까지 도로와 공항, 항구 건설 및 정비에 310억루블(약 1조1천억원)이 투자될 전망이다.
러, 1조1천억 투자 실효지배 박차
최근 9월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일본은 아·태지역에서 우리의 핵심 파트너”라며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문제를 종결짓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대러 투자와 합작기업 설립 문제 등을 논의했고, 블라디보스트크의 일본의 ‘마즈다’와 러시아 자동차 업체 ‘솔레르스’ 합작 자동차 조립 공장 설립을 언급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심화되고, 중·일 영유권 분쟁 양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푸틴은 일본에 대한 유연한 입장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은 방위백서를 통해 쿠릴열도가 자국의 ‘고유영토’라는 강경한 주장을 했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태평양함대 전함 2척을 쿠릴열도에 파견했다. 이 전함들은 8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쿠릴열도 주변을 돌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숨진 소련군 희생장병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처럼 남쿠릴 4도를 둘러싼 영토갈등은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고유영토론에 근거해 일괄반환을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는 합법적으로 귀속된 자국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오는 12월 러시아에서 양국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 60여 년간 평행선을 이어온 영토분쟁 해결의 급진전은 불확실해 보인다. 경제·군사안보적 요충지이자 최근 거세지고 있는 ‘영토 민족주의’ 등의 걸림돌을 푸틴은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윤영미 /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