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0월 1일

시론 | 귀한 것 넉넉히 베풀어 북한 주민 마음 얻어야 2012년 10월호

시론

귀한 것 넉넉히 베풀어 북한 주민 마음 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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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통일대교에서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대북수해지원 밀가루 500t을 실은 트럭이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수해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북한의 신문·방송에서는 여름철이 가까워지면 모든 주민들에게 수해 방지를 위한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사항을 일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여름이 되면 속수무책으로 물 피해를 당하게 된다. 금년은 예년에 비해 피해 횟수도 많고 규모도 더 크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수해로 인해 전국적으로 300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 또는 실종되었으며 8만7,280여 채의 주택이 파괴되거나 침수되고 29만8,05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은 농업부문에서도 수해를 크게 입었다. 집중호우로 인한 농경지의 유실, 매몰, 침수 피해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으며 태풍에 의한 바람 피해도 입었다. 수확을 앞둔 옥수수나 벼가 쓰러져 그 피해가 적지 않다.

금년 수해의 시작은 제7호 태풍 카눈이 발생한 7월 18~19일 부터이다. 황해도 및 동해안 지역에 수해 및 강풍 피해가 발생하였다. 7월 22~24일에는 평안도 지역에 200mm 내외의 호우가 내렸으며 7월 29~30일 같은 지역에 또 다시 400mm 내외의 호우가 발생하였다.

8월 14~15일에는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지방에 150mm 내외의 큰 비가 내렸으며 8월 17~19일에는 전국적으로 100~500mm의 집중강우가 발생하였다. 8월 28~29일에는 제15호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황해도, 평안도, 함경남도 일부 지역에서 100~300mm의 집중호우와 함께 강풍 피해까지 발생하였다.

볼라벤 발생 이전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농경지 피해 면적은 6만5,940ha로 추정되며 이 중 농경지가 유실되거나 매몰되는 심각한 피해만 1만ha에 이른다. 제7호 태풍 카눈과 제15호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인한 강풍 피해 면적은 5만여 ha로 추정된다. 황해도에서만 2만6천ha의 농경지에서 벼가 쓰러지고 옥수수대가 꺽이는 등 바람 피해가 발생하였다. 태풍에 의한 벼의 백수현상도 발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뭄·홍수로 추곡생산 60만t 감소 예상
금년 봄에 발생한 가뭄 때문에 농작물의 생육이 부진한데다 수해까지 입게 되어 가을 작황은 매우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수해보다도 가뭄 피해가 훨씬 심각한 상황이지만 두 가지 피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농작물 피해의 강도는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금년에 홍수로 인한 가을 작물 피해규모는 모두 9만 여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태풍에 의해 벼와 옥수수의 도복, 벼의 백수현상 피해는 4만 여t으로 추정되어 수해 및 태풍 피해는 모두 13만 여t으로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줄잡아 45만~5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상기상으로 인한 가을 작물의 피해 규모는 총 60만t까지 예상할 수 있다. 그나마 다소 긍정적인 것은 비료의 공급량이 평년에 비해 많고 비교적 적기에 비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요인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부정적 요인을 얼마만큼 상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가을 작황이 지난해에 비해 60여 만t이나 줄어든다면 내년도 북한의 식량부족량은 150여 만t에 이를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이 없다면 내년은 2000년 이후 식량사정이 가장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지난 9월 3일 우리 정부는 북한에 수해지원을 제의했으나 북한은 9월 12일 통지문을 통해 이를 거절했다. 정부가 제공하려던 수해지원 물자는 밀가루 1만t, 라면 300만개, 의약품 및 기타 물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북한은 수해지원 물자로 쌀, 시멘트, 중장비 등을 원했을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물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공하려는 물자의 규모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내년은 2000년 이후 가장 어려운 해 될 수도
지원 물자의 종류와 지원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북한이 우리의 인도적 지원 의사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묵살한 것은 국제관례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현재의 남북관계를 생각한다면 좀 더 통 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다. 다만 지원의 원칙과 절차가 확립되어야만 비로소 유연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해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가 먼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국제사회는 이러한 요청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사이에는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어 왔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지원 제의를 하면 수혜자인 북한이 수락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절차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인도지원이라고 해도 지원되는 물품이 원래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 남북한 사이에는 이러한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남남갈등을 줄일 수 있고 지원의 효과도 커진다. 남북한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생각할 때 원칙과 절차만 잘 지켜진다면 좀 더 통 큰 지원을 해도 나쁠 것이 없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먹을 것을 줄 때는 귀한 것을 넉넉하게 베푸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미덕이었다. 남북한 사이에도 우리의 전통을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북한주민들이 우리의 베푸는 마음을 헤아릴 때 통일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 현재의 국제질서 하에서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통일의 길은 북한주민들이 먼저 통일을 원해서 한반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권태진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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