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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북한판 걸리버 여행기 2012년 11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북한판 걸리버 여행기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허 씨에게 최근 들어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양강도 혜산 쪽에 장사를 갔다가 행방불명된 것 때문이었다. 1990년생인 젊은 나이라 혹 국경에서 인신매매에 걸려 중국에 팔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다면 조금 다행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양부모 모두 일찍 돌아가고 오빠인 허 씨가 돌보고 있었는데 일이 여의치 않아 늘 배고픔에 시달려 온 여동생이다. 팔려 가더라도 밥이나 실컷 먹고 산다면 좋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앞집 사는 친구 놈이 찾아와 자기가 여동생을 봤다고 한다. 어디서 봤냐고 하니까 대답 대신 키득거리며 웃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꾹 참고 어서 말하기를 기다렸다. 실실 웃던 친구 놈은 연하리 농장 3작업반에 한 번 찾아가 보라고 한다.

양강도 김형직군의 숨은 비밀은?
연하리는 양강도 북서부의 김형직군에 속해 있는 작은 농장마을이다. 김형직군은 원래 이름이 후창군이었는데 1988년 8월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이름을 따서 김형직군으로 부르게 만든 고장이다. 압록강 건너는 중국인데, 장백현 12도구라는 마을과 인접해 있다. 압록강 뒤로 깊은 골을 따라 올라가면 고읍노동자구가 있고 이곳에 작은 개울이 있는데 개울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큰 임산작업소와 금광이 있는 상창노동자구가 있다.

바로 이 상창금광에 이르기 전 깊은 골에 연하리라는 농장마을이 있는데 이 농장이 들어선 지대를 일명 ‘난쟁이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쟁이골’은 바로 북한 정부에서 성인이 되어도 키가 1m20cm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사는 키 작은 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수용구역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20대 초반의 누이동생이 들어갔다? 녀석이 실실 웃는 것으로 봐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듯싶어 다소 마음이 놓였지만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허 씨는 다음 날 연하리를 찾아 떠났다.

연 닷새에 걸쳐 연하리에 도착한 허 씨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난 끝에 드디어 누이동생과 만날 수 있었다. 근 두 달만이다. 근데 참 뾰족한 ‘V라인’이던 동생의 얼굴이 ‘U라인’으로 변했다. 둥실하게 살이 올랐고 까맣던 피부도 한 꺼풀 벗겨졌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늘 의기소침하고 어둡던 누이의 얼굴이 아주 밝게 변했다는 것이다. 누이가 사는 집에 들어서자 허 씨는 그만 깜짝 놀랐다. 남편이랍시고 소개하는 남자의 키가 허 씨의 가슴까지 겨우 오는 남자였던 것이다. 허 씨도 남과 대비할 때 키가 큰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대로 인사를 하고 구실을 만들어 동생을 데리고 나온 허 씨가 따졌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네가 어찌 부모격인 이 오라버니에게 승인도 없이 ‘난쟁이’에게 시집을 갈 수 있냐.”고 따졌다. 그런데 여동생이 대답이 가관이다. “키가 밥 먹여 주냐.”고 한다. “오빠가 언제 날 배불리 먹여 준적이 있냐.”고 오히려 따진다. “이런, 이런, 이런…” 화가 난 나머지 허 씨는 “그럼 강냉이 밥이나 실컷 처먹으며 ‘난쟁이’ 자식을 한 삼태기 낳으면서 잘살아라.” 고 쏴 주고는 홱 돌아섰다.

“세상에, 내가 이젠 ‘난쟁이’ 처남이 됐나? 이제 ‘난쟁이’ 애들이 태어나면 날 보고 삼촌, 삼촌? 하고 부르겠지. 아이고 이거, 얼마나 오라버니 구실 못했으면 달 같이 환한 누이를 ‘난쟁이’에게 시집보냈을까?” 하며 뒷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결국 동생이 급히 달려와 오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울먹울먹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동생의 말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난쟁이골’ 남자들은 후대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한다. 키 작은 이의 종자를 말린다고 북한 당국이 약물을 쓰는 방법으로 거세를 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부생활에 큰 불편은 없지만, 임신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키 작은 이들의 인구가 점점 줄어 지금은 이 협동농장에 속한 한 개 작업반에만 모여 산다고 했다.

“여기 오래 살진 않을 테니 걱정 마”
 그런데 이 키 작은 이들이 참으로 부지런하여 농사, 사냥도 잘하고 중국 장사도 여느 사람들과 달리 영리하게 진행해 많은 이윤을 뽑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세월이지만 먹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에서 나뭇짐을 진 한 남자가 내려오는데 사람은 없고 큰 짐만 움직이는 듯 했다. 키 작은 이들은 힘도 무척 센 모양이다. 동생은 계속 말했다. 키 작은 이와 함께 사는 건 자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굶어 꽃제비 노릇 하다가 이곳에 흘러들어 온 많은 여자들이 그들과 동거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오래 살진 않을 테니 걱정 마. 몸이 회복되고 밑천을 쥐면 나갈 테니까.” 동생의 손을 잡아 쥐어주고 내려오는 허 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랑도 도덕도 의리도 다 팽개치고 오로지 목숨을 건지는 데 양심을 맞춰야 살아남는 현실이 기막혀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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