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태양’이 된 부자(父子), 권위 벗고 친근함 입다 2012년 12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태양’이 된 부자(父子), 권위 벗고 친근함 입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새로 제작한 이른바 ‘태양상’으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그린 작품들은 다양하지만, 공식 초상화는 사람들의 몸에 부착하고 다니고,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액자를 걸어놓아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이미지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최고지도자가 표상하는 이미지를 변경시키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공식 초상은 김일성 주석 58세 때 제작한 초상화가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1994년 사망 직후 73세 때였던 1985년도의 모습으로 변경되었고 이 초상이 ‘태양상’으로 명명되었다. 태양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지,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을 ‘태양상’으로 명명함으로써 죽은 자를 극대화시켜냄과 동시에, 지상의 현실적 최고지도자의 자리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내주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일성 ‘태양상’ 그린 김성민, 출세가도 달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후 그의 초상을 ‘태양상’으로 명명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훈통치로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신격화시킴으로써 동시에 현실 정치의 최고지도자 자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위해 내어주는 효과를 내고 동시에 우상화를 극대화하여 3대 세습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했던 이미지도 항상 동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세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밀착되어 있을 때는 ‘심판자’의 이미지가 주로 제작되었다. 10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보낼 무서운 권위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어떠한 고민을 이야기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변해가며 ‘심판자’가 아닌 ‘구원자’의 이미지로 예수 그리스도 표현 방식이 변화한 것을 떠올려 보면, 북한의 이러한 변화가 쉽게 이해될 듯도 하다.
“나를 결사옹위하라.”고 말할 때의 주체는 강력한 지도자의 권위를 표상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선군’을 부르짖을 때, 그 리더의 표정이 해맑게 웃는 것보다는 결의에 차 있는, 권위자의 표정인 것이 선전선동에 더 부합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 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 복장이 군복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더불어 이들은 더 이상 결사옹위의 주체가 아니라, 영생하는 자로서 이미지를 표상해내야 했다. 유훈통치를 통해 현실의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이미지는 무서운 권위의 모습보다는 친근한 모습으로의 변모가 필요하게 된 것이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권위적인 표정에서 따뜻한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던 자세는 한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서 사선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감상자와 만날 수 있는 친근한 구도로 변경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처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최고지도자의 벽화나 초상화는 누가 그리는 것일까? 김일성 주석의 ‘태양상’은 북한의 최고의 작가들이 모여 있다고 알려진 만수대창작사의 김성민이 담당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양상은, 북한의 인민군창작사의 벽화 및 보석화단 화가인 리성일이 창작하였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창작사는 인민군 소속 화가들이 주축이 된 미술창작사다. 따라서 만수대창작사가 아닌 인민군창작사에 초상화 제작을 맡겼다는 점은 특이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선군시대를 이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을 인민군창작사에 맡겼다는 점은 일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도 판단된다. 매우 효과적인 매칭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인 만큼 김일성 주석의 1994년 ‘태양상’을 제작한 김성민은 제작 직후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 받았고 1995년에는 김정일 표상을 받았으며, 이어 만수대창작사 부사장을 거쳐 2003년에는 만수대창작사 사장을 역임하게 되고 조선미술가동맹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으니 출세가도가 펼쳐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태양상’을 제작한 리성일에게는 올해 2월에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겐 어떠한 출세의 길이 열릴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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