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6월 1일

세계분쟁 25시 |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 … 터키 게지공원 시위 2016년 6월호

세계분쟁 25시 26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 … 터키 게지공원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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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31일 터키 이스타불에서 ‘게지 사태’ 2주년을 맞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2013년 이스탄불 도심의 게지공원 재개발 계획에 반대한 환경운동가들을 경찰이 강경 지압해 전국적 반정부 시위로 번졌으며,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시위 참가자가 숨지거나 실명하는 사건이 잇달았다. ⓒ연합

2013년 5월 말 조그만 공원의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터키의 반정부 시위는 그동안 지속되던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전면적 충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스만제국을 계승한 터키는 이슬람의 전통을 유지했다. 그러나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에 의해 시작된 공화정으로 인해 이슬람을 국교로 하지만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세속주의에 입각한 정치 사회제도를 확립했다. 그동안 세속주의를 고집하던 터키는 몇 차례 개혁정책을 통해 이슬람주의로 복귀하려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군부의 정치 개입으로 세속주의로 돌아갔다. 지난 2003년 터키 총리로 취임한 에르도안은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이용해서 이슬람주의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시위사태는 그 과정에서의 필연적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돌 대신 꽃으로 진행된 비폭력 시위 SNS로 확산

터키 시위사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이 교차한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간의 오랜 갈등문제와 에르도안 정부의 권위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에르도안은 이런 식의 도전에 익숙하지 않다. 그는 터키 정치의 최고 지위에 오른 이래 주로 보수파 지지기반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총리에 취임한 뒤 에르도안은 유럽연합 가입을 목표로 여성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소수민족의 권익을 보호하는 민법 제정 등 정치·경제 개혁을 시행했다. 이와 같은 에르도안의 행보는 군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2013년 5월 26일 터키 정부의 이스탄불 게지공원 재개발에 대한 반발로 50여 명의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묘목심기, 콘서트 등을 이용해서 소규모 평화시위를 시작했다. 터키 경찰은 5월 28일 물대포, 최루탄 등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이와 같은 경찰의 강경진압 소식은 SNS를 통해 급격하게 확산되어 처음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수도인 앙카라를 포함해 터키 전역으로 퍼졌다. 시위 초반인 6월 4일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아린크 터키 부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렇지만 터키 정부의 시위 진압에 대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에르도안 총리는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6월 19일까지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4명, 부상자는 5천여 명으로 추산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아린크 부총리는 시위대에 대한 군대동원 가능성을 언급하며 추가 인명 피해가 우려되기도 했다.

6월 22일과 23일 양일간 탁심광장에 모인 시위대들은 시위 도중 사망한 이들을 애도하는 추모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자신들의 비폭력 시위를 보여주기 위해 돌 대신 준비한 카네이션을 던졌다. 그러나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이들의 추모모임을 진압했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경찰의 폭력성을 SNS로 확산시키며 비폭력 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며칠간 잠잠하던 시위는 6월 29일 탁심광장과 앙카라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시위대는 시위 도중 발생한 사망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일부는 인접 도시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은 폭동진압용 플라스틱 탄환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고 일부 극렬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러한 시위는 6월 30일 이스탄불에서도 2건의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시위는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게지공원 일대는 시위자들이 설치한 천막으로 인해 캠프장을 연상시켰다. 터키의 시위는 처음 게지공원과 탁심광장, 앙카라,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 벌어졌으나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터키 전역 약 81~90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져 약 160만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유럽과 중동, 미국, 심지어 일본과 중국 등 외국에 거주하는 터키인들도 동조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집계 결과 6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상자가 60여 명이나 된다. 8,100여 명의 부상자는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10여 명의 소재가 여전히 파악되지 않아 실종자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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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놓인 터키 정부, 선택은?

많은 중동문제 분석가들은 ‘아랍의 봄’이라 불렸던 중동시민혁명 물결이 터키는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타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시민혁명 형태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집회형태나 SNS를 이용한 시위가 터키에서 발생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시위로 인해 터키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오던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에르도안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한 모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그가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켜 정국을 한층 분열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터키 언론인으로 이스탄불에서 에르도안 지지 시위를 취재했던 세렌 체나르는 “그는 지지세력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수만 명의 지지자 중 다수는 정의개발당이 비용을 댄 버스로 동원되었다. 그들이 당신을 망치려 하지만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슬로건을 지지자들은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터키는 아주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또 다시 군부의 정치개입에 빌미를 주게 되어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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