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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그 남자 마라초냐? 차렷담배냐?” 2011년 5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3

“그 남자 마라초냐? 차렷담배냐?”

 

‘겉보기가 안보기’라는 말처럼 우선은 외형을 보고 많은 평가가 내려지는 것이 사람이다. 생김새라든가, 말투, 행동, 쓰는 물건에 따라서도 나름대로 그 사람의 가치를 점치기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때로 무슨 담배를 피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수준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갑자기 담배라 하니 조금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북한 주민들만큼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간혹 안 피우는 사람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피우니까 되레 안 피우는 사람이 이상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다. 피워도 아예 골초다. 신문지를 찢어 두툼하게 말아서 때와 장소에 구애 없이 모여 앉으면 ‘후후’ 하며 세상살이에 대해 한담하는데, 바깥이 아니고 집안이면 그 연기가 불난 집처럼 꽉 찬다.

그러나 그걸 탓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70~198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담배공장들이 돌아 ‘가치담배(갑에 넣지 않고 낱개로 파는 담배)’를 즐길 수 있었지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순 ‘마라초(잎담배)’를 구입해 피웠다.

북한에서는 담배도 식량만큼 귀중하다. 밥을 굶으면 굶었지, 담배를 굶으면 배겨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농장마을에 가면 대체로 노인들이 30평가량 담배밭을 조성해 경작하는데 거름도 듬뿍 주고 벌레가 들세라 가뭄이 들세라 애지중지 키워 솥뚜껑만큼 큼직하게 키운다.

순 햇빛을 이용해 건조시키는데 손맛이 다르듯 누구에 의해 키워졌고 건조됐는가에 따라 그 맛도 달라진다. 이렇게 생산되는 담배는 모두 독초다. 현재 하루 세 갑 정도 피우는 한국의 애연가라 해도 그 독초를 피우라면 아마 연기를 빨기 무섭게 재채기를 할 것이다.

담배도 식량만큼 귀중해

일부 돈깨나 주무르는 사람을 제외한 북한 주민 70~80%가 이 독초에 중독되어 있다. 이따금 누가 중국산 필터담배를 권하면 이들은 ‘슴슴(맛이 독하지 않고 심심함)하다’며 외면한다. 그러면서 또 궁싯거리며 쌈지를 꺼낸다.

담뱃종이는 대체로 신문지다. 하도 종이가 귀해 담뱃종이로 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종이에 따라 담배맛이 확연히 달라지는 만큼 그래도 노동신문은 당보여서 비교적 희고 정갈해 그걸 모두 담뱃종이로 선호하게 되었다. 노동신문도 흔한 것이 아니어서 신문 보는 사람에게 담배를 한 줌씩 주고 구입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다르다. 일상적으로는 독초를 피우지만 필터담배를 더 선호한다. 돈 주고 사거나, 어쩌다 생기면 피우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과만 서로 권하며 한 대씩 피운다.

출장이나 사람을 만날 때면 보관했던 ‘궐련갑(얇은 종이로 가늘고 길게 말아 놓은 담배를 모아 넣은 종이 상자)’을 가지고 나간다. 어떤 녀석은 젊은 여자들이 모인 장소이면 별로 피우고 싶지 않아도 한 대 뽑아 깊숙이 빨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런데 실지 그런 행동이 효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공공장소에서까지 젊은 놈이 수준 없이 마라초를 꺼내 말아 피우면 창피하기 마련이다. 그건 능력 없는 녀석일 뿐더러 별 볼일 없는 흔해빠진 남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마라초 인생 살 건데”

남에게 돋보이려는 것은 어느 사회 사람이던 보통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넘어서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특별하다기보다는 뭔가 좀 있어 보이려는 심리적 표현이 이렇게 담배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사실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는 궐련을 피우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능력일 수밖에 없다.

한때 북한 처녀들 속에서 반려자를 소개 받거나 청혼이 들어오면 “그 남자 마라초냐? 차렷담배냐?” 하고 저들끼리 깔깔거렸다. 가난과 부유의 별칭으로는 좀 별스럽다 할 수 있지만 북한 현실에서는 너무 신통한 표현이다.

일상에서도 남자 친구가 쌈지를 꺼내 마라초를 궁상맞게 말아 피우면 “나 이제부터 쌈지오빠라 부를 거야”, 아니면 “언제까지 마라초 인생 살 건데” 하며 놀리곤 했다.

4월 중순경 벚꽃 축제현장에서 필자는 7년 만에 갓 입국한 고향친구를 만났는데, 곁의 많은 사람들이 꽃향기에 취해 있건만 이 친구는 그 싱그러운 꽃길을 거닐면서도 그냥 줄담배만 피워댔다.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도 아랑곳없이 말이다. 보다 못해 좀 그만 피우라고 눈을 부라렸더니 이 친구가 히물히물 웃으며 한다는 소리가 아주 가관이었다.

“이거 영국 담배야”
‘그런데 뭐? 나 참 여기가 뭐 북한인가? 북한에서 중국산이나 일본산 궐련이 어쩌다 한 대 생겨 꼬나문 그 기분을 즐기는 꼴인가?’ 그래서 “여기는 그러면 욕먹는다.”며 입에 침 튀도록 연설하면서 이젠 그 담배 좀 끊으라고 했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나 아직은 너무 아쉽고 억울해서 담배 못 끊어, 끊어도 한 오년쯤 피우고 끊을 거야.”

그 순간 격한 감정이 욱 치밀어 올라 그만 친구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간 북한에서 즐겨보지 못했던 일종의 향수, 돈이 없어 피울 수 없었던 가지가지 멋진 필터담배를 눈앞에 가득 두고 그 맛도 보기 전에 얼른 포기하기에는 친구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오년쯤은 마음껏 미국산이든 영국산이든 골고루 다 맛보고 끊겠단다. 그것은 지나온 슬픈 현실이 그에게 남겨준 삶의 아쉬움이었다. 아쉬움은 누려야만 스스로 없어지는 이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원을 푼다는 말도 있다. 필자 역시 갓 입국해 담배를 얼른 끊지 못한 원인이 거기에 있었음을 잠시 잊었을 뿐이었다.

새로 입국한 사람에게 안겨드는 이 나라의 부유함과 새로운 모습들 자체가 북한주민에게는 꿈에 그려보던 이상의 세계다. 언제면 그들도 삶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즐기며 건강을 해치는 해로운 담배 같은 것에 집착된 애착을 훌훌 털어버릴 날이 있을 런지, 그날은 다름 아닌 한민족이 모두 함께 부둥켜안고 환호를 터칠 통일의 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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