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 EU 민주시민교육, 민족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2016년 1월호
통일교육,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10
EU 민주시민교육, 민족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분단된 북아일랜드 사회에서 내가 어느 쪽에 소속된 시민인가 하는 문제는 생존적 차원의 ‘우리성’ 이념이었다. 집집마다 국기를 내걸고, 서로 다른 취미생활과 색깔을 드러내고, 축제일을 달리하며, 이름과 근원을 자기의 민족문화에서 찾아왔다. 이렇게 대립하며 갈등하는 70여 년 동안 인구의 10%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폭력과 상흔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상호배타적인 공동체 간의 갈등을 종식하고자 절실하게 평화를 향한 운동이 병행되었고, 그러한 평화운동의 교육적 결실이 북아일랜드 분리주의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한 상호이해교육(EMU)이었다. 북아일랜드 교육부도 인정한 EMU의 성과는 분단극복을 위한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의 전형적인 성과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GFA)’에 따라 이제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자신이 북아일랜드 시민이든, 아일랜드 시민이든, 영국 시민이든 혹은 중층적 시민이든 자유롭게 선택하며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분단극복을 위한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은 EMU에서 시민교육으로 재구성되었다. 이것은 평화교육이 분단체제 하에서는 평화체제 구현을 위한 변혁의 도구이나 분단 이후 체제 하에서는 사회적 통합의 기제로 변화되는 복합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지난해 9월 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내에서 한 가족이 최근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인종주의를 넘어 전향적으로 해결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벽화를 보며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다문화사회로 변화 … 민족정체성에 갇힌 교육은 유효한가
당시 EU에 가입한 영국에서는 EU가 주도하고 있던 ‘새로운 유럽인’의 기치 아래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교육이 통합된 단일교과로서 시민교육이 필수교과로 지정됐다. 그 내용이 국가교육 과정의 기본틀로서 진척되었지만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주도의 사회통합적인 시민교육에 대한 반발과 기존 EMU와의 차별성에 대한 논란, 그리고 ‘어떤 시민이냐’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 차이 등으로 인해 시민교육 용어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비쳐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수준에서 GFA에 제시된 대로 개인의 희망에 따라 영국의 시민으로, 아일랜드의 시민으로 혹은 북아일랜드의 시민으로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다함께 살아간다는 ‘혼종적 시민성’ 개념에 기반하여 시민교육은 북아일랜드 교육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EU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북아일랜드의 시민교육은 다양성, 포용, 평등, 사회정의, 민주적 참여와 인권 등의 가치로 재개념화 된 ‘공유된 시민성’으로 북아일랜드 갈등해결 교육의 방향이 모아지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동구권의 붕괴에 따른 유럽 사회의 지형변화는 북아일랜드의 인구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구교냐 신교냐’라는 두 정체성만이 대립하던 역사에서 이주민이 대거 유입되는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 단계에 이르러 북아일랜드 EMU는 두 민족적 정체성만을 기반으로 한 상호이해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노정되었다. 그 결과 가톨릭 아이리시도 아니고 신교도 잉글리시도 아닌 이주민의 인구가 15%를 넘어서는 다문화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시민성 함양을 위한 노력으로 EU의 일원이 된 북아일랜드에서는 지역적 요소와 세계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 둘이 모순되지 않도록 탈민족주의화하는 것이 EU 민주시민교육(EDC)의 방향이었고 이것이 북아일랜드 시민교육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즉 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학교체제를 유럽적 맥락에서 어떻게 교육과정화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면서 개인소속감에 대한 포스트 민족주의적 개념화가 유럽화와 글로벌화의 출현으로 요청되었고 이것은 북아일랜드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으로 귀착되었다.
인종주의에 맞서며 세계적 시민정신 구현해 낼 방법은?
유럽에서는 1989년 이후 젊은이들로 하여금 유럽 시민정신을 수용하고 인종주의에 맞설 수 있게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정의에 헌신할 수 있도록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가 주요한 시민교육의 화두였다. 이에 국가시민 혹은 유럽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민주적 거버넌스 역량, 민족성과 민족적 정체성의 재검토, 다원주의 사회에 대비, 사회통합적 EU환경 구축 등이 중요한 시민교육의 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면서 각 국가적 수준에서 이러한 시민교육적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가 유럽통합에서 핵심 사안이 되었고 이는 유엔의 보편적 규정에 따르는 글로벌 시민성에 대한 개념화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목적 아래 교육협력 프로젝트인 그라즈 과정안(Enhanced Graz Process)이 제시되었으나 북아일랜드는 이미 평화와 화해를 위한 EU특별지원대상국이어서 유네스코 국제교육국으로부터 보스니아와 함께 별도의 사회통합 교육과정 개혁안에 관한 지원을 받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의 경우엔 특히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청되었다. 그래서 공유된 시민성이 변화된 사회환경에서의 대안개념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공유교육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이 존재하지만 시민교육은 통합교육에서도 강조되는 주제다. 새로운 유럽환경이 북아일랜드에서 단일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시민교육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부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역적 개념과 세계적 개념이 함께 어우러진 보편적 가치로서의 시민성 개념이 힘들게 움트고 있다.
강순원 / 한신대 아동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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