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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물이 물 같지 않던 시절 2016년 1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8

물이 물 같지 않던 시절

 

일상생활에서 남한이 북한보다 좋은 점을 말하자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물 걱정이 없는 것이 제일 좋다. 물 걱정을 못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를 것이다. 아마 남한의 젊은 세대는 물 걱정이라고 하면 느낌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더운물과 찬물이 사시사철 나오고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해대며 펑펑 물을 쓰는데 물 걱정이란 말이 실감날까.

남한도 오래 전엔 물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안다. 북한에서 남한이 물 고생을 한다는 선전을 많이 했었다. 신문잡지에 수돗물을 받겠다고 공동수도에 길게 줄을 선 사진이 올랐고 영상물들엔 오염된 한강과 낙동강의 모습도 나왔다. 남한을 소재로 한 어느 영화에는 수돗물에 벌레가 섞여 나오는 장면도 나왔다. 남한에 와서 물어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다.

공동수도, 우리집 앞에 있으니 우리집 물?

그렇지만 북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마을마다 공동수도가 있고 거기서 물을 길어먹느라 아침저녁으로 줄을 서곤 했다. 아파트 중에도 집집에 수도가 들어가지 않고 층마다 수도 칸이 따로 있거나 아파트 밑에 공동수도가 있는 아파트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아파트도 현관 앞에 공동수도가 있었다. 우리 집이 바로 현관 앞 1층이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공동수도가 우리 집 앞에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수도라고 우겼다. 엉뚱하게도 제멋대로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한 격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을 통제했다. 그런데 혼자서 통제할 수 없어 다른 아이 몇을 부하로 두고 통제에 협조하도록 했다. 대신 특혜로 수돗물 사용에 우선권을 줬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물을 길어오라는 부모님의 심부름에 지장을 받았다. 동네 어른들은 ‘자본가 심보를 가진 녀석’이라고 야단을 쳤고 아버지한테 맞곤 했다.

몇 해 지나 집집에 수도가 들어가고 공동수도는 사라졌다. 비록 ‘권력’은 잃었지만 집안에서 수돗물을 받아먹게 되니 그런대로 좋긴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수돗물이 약하게 나오더니 4층 이상부터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저층 세대마저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만 물이 잘 나왔다. 집집에 수도를 낼 때 원래 있던 공동수도에서부터 배관이 시작됐기 때문에 우리 집 수도꼭지가 맨 처음이어서 그랬다. 온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집에서 물을 길어갔다. 밤에도 문을 잠그지 못하고 부엌문을 개방해 놓아야 했다. 야박하게 문을 잠글 수도 없고 정말 불편했다. 짜증나고 속에서 다시 ‘자본가 심보’가 꿈틀거렸지만 이미 나이 들어 철이 든 때라 그러지도 못했다. 좀 지나면 수도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해만 갔다. 수돗물이 아예 중단되는 날이 많았다. 집집마다 시멘트로 물탱크를 만들고 수돗물이 나올 때 미리 받아 채웠다. 아파트 겉벽 물탱크가 면한 벽면들이 수분을 먹어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한 것이 보였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선 급수시설에 사용되는 소독약마저 부족해 수질소독을 못하고 수돗물에 벌레가 보이곤 했다. 물을 긷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강물을 긷자면 낮에는 어지러워 한밤중이나 새벽에 긷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세탁이나 목욕에 쓸 물은 낮에도 길었다. 급하면 낮에 퍼온 물도 식용으로 썼다. 장마가 지면 누런 흙탕물을 그대로 길어다 가만히 놓아두었다가 흙먼지를 가라앉혀 사용했다.

물장수 등장 장사도 가지가지

이윽고 물장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사를 해서 돈을 축적했거나 권력을 악용해 뇌물로 살찐 사람들은 물을 돈 주고 샀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가진 것이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은 물을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물을 긷는 방법도 진화했다. 처음엔 작은 물통으로, 조금 지나선 큰 물통을 수레에 실어 날랐다. 그러다가 아주 기발한 방법이 나왔는데 커다란 비닐주머니를 만들고 찢어지지 않게 겉에 방수포천이나 수지마대를 씌워 물을 담았다. 그런 물자루를 수레에 몇 개씩 쌓아 실으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나를 수 있었다. 물이 귀하다보니 위생상태가 불결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겨울철엔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다 지나간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북한에 살던 그 때를 생각하면 그땐 정말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다. 찬물 더운물이 늘 철철 흘러넘치는 집에서 살게 될 줄을 북한에 그냥 살았더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정수기란 말도 몰랐던 나, 지금은 이것저것 가려서 교체하다니. 그냥 수돗물을 받아 마셔도 되는데 꼭 정수기를 거쳐 받아먹어야 마음이 놓인다. 아리수 수질이 너무 좋아 그냥 먹어도 괜찮다는 안내서를 받기도 한다. 소처럼 아무 물이나 꿀꺽꿀꺽 마셔도 별일 없던 지난날이 믿겨지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나 달라진 일상에 가끔은 내가 이래도 되나, 너무 안일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 걱정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이 눈에 삼삼히 떠올라서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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