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축제, 만발하다 2016년 5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2
축제, 만발하다
남한에는 축제가 정말 많다. 나는 원래 축제라고 하면 어떤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띤 굉장한 행사로만 알고 있었다. 그만큼 축제라는 것이 자주 열리는 행사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남한에 살다보니 축제가 거의 일상이라고 할 만큼 많았다. 정작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띤 축제는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런 것이 있기는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엔 남한에서 열리는 축제들 거의가 시시껄렁한 것들이었다. 꽃 축제, 물고기 축제, 음식 축제, 과일 축제, 불꽃 축제 등이 과연 축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만큼 대단한 것인가. 약간 우습고 가벼운 사회라는 느낌과 물질적 풍요가 낳은 기형적인 문화가 이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축제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꽃 축제만 해도 벚꽃 축제, 진달래 축제, 철쭉 축제, 메밀꽃 축제, 유채꽃 축제, 들꽃 축제 등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같은 종류의 축제라도 앞에 지명을 붙인 축제로 또 나뉘었다. 물고기 축제는 파주 송어 축제, 화천 산천어 축제, 가평 빙어 축제 등으로 나뉘고 문화 축제도 가야 문화 축제, 진주 한지문화 축제 등 가지가지다.
북한에서 경험한 축제는 해마다 김일성 생일을 맞아 진행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대표적이다. 또 1989년에 평양에서 있었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올림픽에 버금가는 대규모 축제였다. 국경절을 계기로 한 체육축전, 예술축전 등도 있었지만 그 분야 전문가들만의 행사로만 인식했다. 이외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 축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았던 것 같다.
“여의도 봄꽃 축제장, 주석단은 어딘가요?”
남한에서 본 축제는 분위기도 과정도 모두 낯설었다. 축제라면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정작 보니 딴판이었다. 남한에 와서 처음 본 축제가 여의도 봄꽃 축제다. 나는 축제가 ‘지엄한 정치의 본당’인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서 열린다기에 봄꽃이 그냥 봄꽃이 아니고 거기에 ‘어떤 정치적 함의가 깃들어 있는 것이겠지’라고 짐작했다.
우선 옷차림부터 정중하게 차려입었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바지에 칼날 같이 주름을 잡고 구두도 잘 닦아 신었다. 축제장에 도착해보니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 있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행사를 주최하는 ‘주석단’이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에게 봄꽃 축제에 참가하러 왔는데 행사장이 어딘가 물었지만 “여긴데요.”하며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곤 가버렸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여자, 배낭을 걸친 사람, 도대체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뛰어다니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저 놀러 온 사람들로 보일 뿐 정중한 분위기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결국 봄꽃 축제란 꽃 구경에 불과한 여가 생활의 한부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여러 꽃 축제에 다녀오긴 했지만 나는 그냥 “꽃구경 갔다 왔다.”고 했지 축제란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은 진해 군항제에 간 적 있다. 나는 군항제만은 다를 것이라고 여겼다. ‘시시껄렁한 꽃이나 음식 따위가 아니고 군항제라니 이건 좀 성격이 다르겠구나.’라고 또 정중한 옷차림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보니 함께 가는 분들 중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군항제도 그냥 구경거리긴 다른 축제나 다를 바 없었다. 실은 봄꽃 축제와 동반된 것이었다. 군항제라고 하여 열을 맞춰 차렷 자세로 엄숙하게 연설을 듣고 나라 지킬 굳은 결의를 다지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구경은 잘했다. 해군과 이순신 장군 자료가 전시된 박물관과 실물 크기로 제작된 거북선을 보았고 해군 헌병대의 퍼레이드도 감상했다.
진해 군항제, 민간인에게 군함 공개 놀라워
놀란 것은 군함에 직접 올라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군인도 아닌 일반 민간인에게 그것이 허용되다니 놀라웠다. 알고 보니 군항제 기간에는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어려운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의 영내 출입이 가능하고 군함에 승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 같으면 군함에 오르기는커녕 군항 근처에만 얼씬해도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당시에는 한순간 ‘대한민국이 너무 안일하구나, 안보에 구멍이 났구나, 과연 이래도 될 만큼 자신감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국민에게 볼거리를 주고 민주주의를 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이런 의구심이 해소되기까지는 한 동안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나도 갖가지 축제들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 축제들이 왜 생겨났고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도 알고 있다. 축제가 체제 선전장으로 활용되는 북한과 너무나 비교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북한에도 지역 축제, 문화 축제들이 많이 생겨나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통일한국이 더 풍성한 축제의 나라로 전변되리라 믿는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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