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5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북한의 한류 진원지? 2016년 5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63

북한의 한류 진원지?

이 이야기는 요즘 북한을 강타하고 있는 한류에 대한 이야기다. 언젠가도 한류에 대한 토막이야기를 이 코너에서 했지만 오늘 또 들고 나왔다. 왜냐면 조금 충격적이랄까, 아니면 놀랍다거나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얼마 전 북한에 있는 조카와 전화 통화에서 듣고 쓰게 된 이야기다.

암살’ ‘국제시장’ ‘내부자들’, 최근 태양의 후예까지

한국 드라마나 영화, 가요제, 예능 프로그램들이 북한 젊은이들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좋아하는 것은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요즘 들어서는 누가 더 빨리 신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가에 따라 그 ‘등급’이 매겨진다고 한다.

등급?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자 이 녀석이 한국 사람이 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느냐며 킥킥 웃었다. 나는 잠깐 멍해졌다. 한국에 한 번 와보지 못한 녀석이 삼촌보고 한국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너 한국 사람이라 말했냐? 조선 사람은 아니고?” “왜요? 듣기 싫어요?”

말 억양도 어색하긴 했지만 서울말을 써보느라 흉내내는 게 대뜸 느껴졌다. “한국 드라마에서 배운 말이냐?”고 묻자 “그렇다.”며 “근데 잘 안 된다.”고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전화상으로도 느껴졌다. 할 줄은 아는데 그 부드러움과 억양이 낮고 듣는 사람의 ‘간을 녹이는’ 친절함만은 좀처럼 말에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서울 정착 10년이 되는 나도 아직 서울말을 익혀내지 못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물었다.

“너 말이다. 그럼 함경도 말투와 경상도 말투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데 한 번 해봐라.”고 하자 이 녀석이 대뜸 “해 보라카믄 내 몬 할 줄 아나, 니 그라카믄 내를 좋다는 기가? 어때, 잘하지?”라며 또 웃었다. 이것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말 가운데 이따금 서울말이든 경상도말이든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촌바우(시골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1980년대만 해도 남한이 못산다는 북한 정부 선전에 의해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를 아주 비하하는 의미로 서로 주고 받았다. 물론 그때는 소설책이나 6·25전쟁 때 들어온 남쪽 출신들의 입에서 나온 사투리 억양을 비웃으려 이따금 따라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하가 아닌 친근한 일상의 용어로 사용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왜냐면 그건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서 자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되고 선진 문물을 향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회 특성상 영웅을 선호하는 심리가 큰데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아니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또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장면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이른바 천만 흥행을 한 영화 ‘내부자들’이나 그 전의 ‘암살’, ‘국제시장’ 같은 영화, 그리고 최근 세계적인 히트작 반열에 오른 드라마 ‘태양의 후예’도 북한 사람들의 혼을 빼 놓았다고 한다. ‘태양의 후예’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북한까지 보급될 수 있냐는 질문에 최근에 입국한 한 고위탈북자가 인터넷을 통해 다운 받아 서로 돌려본다는 식으로 증언하는 것을 필자도 읽었다.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이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북한에서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이다. 물론 전문 단위나 고위급에서 일부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운 받아 몰래 보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해외로 나온 장사치들이나 여행자, 또는 밀수업자들이다.

아주 작은 USB 같은 것에 영화나 드라마, 기타 필요한 것을 복사해 가지고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게 목숨 갖고 장난하는 거 아니야?” 하고 반문하자 조카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아무튼 삼촌은 이제 낡았어요. 지금 어느 시절 소릴 하는 거야. 내 아까 한국 영상을 보는 것도 급이 있다고 말했잖소.”라고 했다. 그게 무슨 급이냐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

뒷감당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거지

“삼촌, 남조선 영상물을 갖고 있거나 보다가 잡히면 지금은 진짜 용서가 없어. 목을 내놔야지요. 그런데도 더 유행하거든. 왜 그럴까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들켜도 그걸 무난하게 넘기니까 가능한 거 아녜요. 단속도 다 사람이 하는 거 아니겠어요? 말하자면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걸 갖고 다니는 거지 뭐.”

“진짜 많이 달라졌다.”하고 격세지감 느끼던 내게 조카는

“잡히면 사람이 죽는데, 그걸 잡았다고 공개하는 놈이 진짜 나쁜 놈이지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요. 보위원이나 보안원도 사람이니까 잡으면 마치 큰 범죄자나 잡은 것처럼 손목 묶어 끌고 가던 시대는 이제 낡았다는 소리예요. 이젠 영상물이 든 CD나 USB 같은 걸 개인들끼리 암암리에 사고 팔면서 마음 졸이던 시대도 지나가는 것 같아요. 별 힘도 없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사고 파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한데 그 정도로 눈치 없이 했다가는 언제 ‘골’로 갈지 모르거든요. 삼촌, 지금 여기 어떤 급에서 한국 유행이 시작되는지 알겠죠?”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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