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안승우, 이경복·백성흠 2016년 6월호
이달의 인물
안승우, 제천 의병의 선봉에 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제천에서 의병장군으로 활약한 하사(下沙) 안승우(음력 1865.9.9.~1896.6.) 선생을 2016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화서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선생은 청·일전쟁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던 망국적 위기상황에서 이춘영, 김백선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896년 1월 선생은 원주 안창에서 거의를 선포하고 원주를 거쳐 제천을 점령하였다. 선생과 함께 동문수학한 많은 인사들도 합류하여 이필희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선생은 군중 사무를 총괄하는 군무도유사의 직책을 맡았다. 제천 의병은 단양으로 진군하여 공주병참 관군 1개 중대와 첫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생은 전군장을 맡아 의진의 선봉을 이끌었다. 선생은 열악한 상황에서 전군장에 임명되어 의진의 전열을 정비하고 병력을 증강하기 위해 분투하였다. 제천 일대에서 군사를 지속적으로 모으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주변 각지에서 전개되던 소규모 전투에 군수물자와 병력을 공급하고 병기를 제작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이러한 전력 강화 활동과 함께 전몰 의병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구제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관파천 이후 관군의 해산 요구에도 제천 의병은 일제와 결탁한 집권세력이 개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코 의병을 해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항일투쟁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다. 5월 26일 관군이 제천성을 공략하자 선생은 최일선에서 의병을 지휘하여 세 차례나 관군을 물리쳤으나 우천으로 화승총을 쓸 수 없게 되면서 제천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선생은 전투 중 오른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관군에 체포되어 타살 당하였다. 선생은 부친 안종응과 아들 안기영 등 3대가 항일의병에 투신하였다. 특히 아들 안기영은 1907년 이강년 의진의 종사로 항일전에 참가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조국을 지켜낸 창공의 신화, 이경복·백성흠
국가보훈처는 이경복, 백성흠 공군 소위를 6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북한군은 한강을 건너 빠르게 남하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적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항공정찰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는 L-5 연락기 12대와 T-6 훈련기 10대가 전부였다. 당시 공군은 손으로 직접 폭탄을 투하하며 조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공군의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당시 계급)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한 조가 되어 급조된 폭탄을 싣고 L-5 연락기로 수원기지를 이륙해 흑석동 상공으로 방향을 잡았다. 흉물이 된 한강 인도교를 보면서 한강 철교 쪽으로 기수를 돌렸지만 북한군의 대공사격에 피격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적의 탱크 수십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적탄에 기체 일부가 파괴되어 점점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으나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수원기지에 적 탱크의 상황을 무전으로 알리고 적 탱크를 향해 기수를 돌려 장렬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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