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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 ‘틀림’이 아닌 ‘다름’을 가르칩니다. 이수연 북한이탈주민 표준어교육 강사 2016년 6월호

 인터뷰| 이수연 북한이탈주민 표준어교육 강사

틀림이 아닌  다름을 가르칩니다.

 

이수연 북한이탈주민 표준어교육 강사

이수연 북한이탈주민 표준어교육 강사

“자, 같이 해보실까요? 신촌, 신천.” “신촌, 신천” 표준어 수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 마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수업시간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열심히 표준어 발음을 연습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능숙하게 발음하기 위해 학생들은 큰 소리로 입을 움직여 본다. 성별, 연령, 직업 등은 다양하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모여 있다. 자연스러운 표준어를 구사하여 이 사회에 녹아드는 것이다. 교단에는 이수연 강사가 서있다. 원래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남북한 언어비교 공부를 하며 그 대상을 북한이탈주민으로 확대했다.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 설수록 수업의 중요성을 느끼고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북한식 말투로 구직에 어려움을 느낀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생활에 있어 언어구사에 불편함을 느낀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5명 가운데 1명은 ‘북한식 말투로 구직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음, 억양, 어휘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되지만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표현의 차이로 종종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남한도 지역에 따라 방언이 있듯이 북한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언어 습성을 갖고 있다. 특히 함경도 출신의 경우 말이 빠르고 억양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

“수업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게 ‘ㅡ’와 ‘ㅜ’, ‘ㅓ’와 ‘ㅗ’의 구별이에요. 북에서는 입모양을 다르게 발음하기 때문에 우리가 듣기에는 ‘마음’을 ‘마움’으로 발음하는 것처럼 들리죠. 높임법에도 차이가 있어요. 만약 웃어른께 ‘식사하셨습니까?’가 아닌 ‘식사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결례가 되겠죠. 하지만 북에서는 선어말어미 ‘-시’가 없이도 높임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또 명령조의 말투도 많이 사용하죠. 함경도 출신 분이 ‘잠깐 기다리십시오’하고 강한 억양으로 말한다면 남한 사람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잠깐 기다려주시겠어요?’처럼 완곡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잖아요.” 의미는 통하지만 이러한 미묘한 차이 때문에 사소한 오해를 받는 사례가 빈번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부분은 전화통화라고 한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더 어려운 부분이다. “만약 ‘김영희 전화받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전화받습니다’라는 표현은 잘 안 쓰니 어색하기도 하고, 상대방은 이름을 김용희로 들을 수도 있죠. 요즘에는 북한도 휴대전화를 많이 사용하니 덜 하지만 예전에는 일상에서 전화 사용빈도가 낮았어요. 그러니 통화예절을 모르고 툭 끊어버려 불쾌감을 주는 사례도 종종 있죠.”

표준어 억양에는 말끝을 길게 늘이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친절하게 들린다. 짧게 떨어지고 강한 느낌의 말투에 익숙해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씩씩한 말투를 선호하는 북한 여성들은 처음에 부드럽고 친절한 남한 남성들의 말투에 간지러워하기도 한단다.

한편 의미전달이 잘 안되기도 한다. “‘참 안 됐다.’ 우린 주로 동정할 때 사용하는 말이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사과할 때 ‘안 됐다’를 사용해요. 가령 ‘늦어서 안 됐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늦어서 죄송합니다’의 뜻인데 남한 사람은 사과를 받은 느낌이 안 들고, 북한 사람은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거예요.” ‘말 한 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 같이 언어를 통한 의사전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불필요한 오해가 반복된다면 북한이탈주민들은 위축되고 사회를 향한 걸음이 더뎌질 수 있다. 남한 사람들도 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질 수 있다.

2010년 국립국어권과 서울대가 개발한 '새터민이 배우는 표준 발음 교실' 웹사이트(edu.korean.go.kr). 북한이탈주민들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표준어 발음, 억양 등을 인터넷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0년 국립국어권과 서울대가 개발한 ‘새터민이 배우는 표준 발음 교실’ 웹사이트(edu.korean.go.kr). 북한이탈주민들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표준어 발음, 억양 등을 인터넷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언어로 인해 구별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교육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한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사회생활을 하며 앞서 소개한 사례들이 반복되어 소통에 불편함을 느끼고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초기 정착시설인 하나원에서도 표준어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때는 하루 빨리 경제활동을 하고 정착하려는 마음이 앞서 의사소통에 대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야 비로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며 남한 사람들과 접촉을 많이 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잠을 줄여가며 아르바이트 시간을 쪼개서 수업을 찾고 학부모들과의 만남에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업을 듣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속내는 ‘시선’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남들과 다른 말투는 주변의 이목을 끌고 졸지에 이방인이 되게 한다. 조금 다른 언어 속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대부분은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지만 참여자 중에는 왜 왔나 싶을 정도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북한 출신도 있었다. 그는 언어로 인해 구별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수업을 찾은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이 수업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죠. 의사소통을 잘하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주변 시선이 불편해서 원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차별적 시선이 없어지면 이러한 수업은 남북이 서로를 배우는 형태로 바뀌어가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에서 방언에 대한 이미지를 지방에 대한 매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확산됐듯이, 북한에 대한 방언을 받아들이고 북한 출신에 대한 인식을 달리한다면 그들이 수업에 임하는 목적 또한 바뀔 것이다.

표준어 수업, 남한생활로의 교정아닌 적응과정

이수연 강사는 교단에 설 때마다 조심스럽다. 생사의 고락을 넘으며 다사다난 했던 속사정을 가진 교육생들이 많기 때문에 행여나 제시한 예문이 상처를 주지 않을까, 농담으로 건넨 말에 오해를 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연구물을 훑어보고 주변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간혹 자발적 참여가 아닌 소속집단에 의한 참가자들은 수업에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구성하지만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민감함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좀 더 예의 있고 세련되게 들려요.”와 같이 차이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의 목표도 새로운 언어로 탈바꿈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표준어도 문화어도 모두 편하게 사용하며 조금이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언어는 익숙해지는 데에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어휘는 비교적 개별 터득이 용이하지만 발음이나 억양은 상대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지속적인 수업과 접촉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북한이탈주민들의 표준어 수업은 이 부분에 필요성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나 기관 등에서 일회성으로 기획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착 기간에 따른 단계별 수업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시간투자다. 수업 요청에 따라 기획이 되어도 막상 생업과 겹치면 수업은 뒷전이 되기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물론 모든 북한이탈주민이 참여할 필요는 없다. 표준어에 정착의 성패가 달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상에 불편함을 느끼고 남한 생활에 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동참하면 된다.

국내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 새로운 터전에서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그들의 일방적인 노력을 넘어 ‘다름’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요구된다.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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