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윗동네 여름 이리 헐떡, 저리 헐떡 2016년 8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44
윗동네 여름 이리 헐떡, 저리 헐떡
북한 강원도 원산시 부두에서 지난 6월 21일 여자 아이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내리며 놀고 있다 .
남한에 정착한 이후로 올해처럼 더위가 일찍 찾아온 해도 처음인 것 같다. 찌는 듯한 햇볕에 가정과 기관의 에어컨들이 벌써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주말이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물놀이장과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힌다. 한창 나이의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도 도심과 바닷가, 계곡에서 그들만의 낭만을 만들어간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평양의 문수물놀이장이 연관 검색어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아무나 갈 수도 없는 평양에 물놀이장을 지어놓고는 ‘인민에 대한 김정은의 사랑’이라고 선전하는 북한의 현실이 떠올라서다. 그나마 문수물놀이장 하나로 그렇게나 떠들썩한데, 남한의 워터파크 같은 시설을 북한에 지어놓는다면 기자들이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우주에서 왔다고 할까?
이 무더운 여름을 북한 아이들은 어떻게 보낼까? 이전에 북한 학교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같은 냉방 시설이 전무했다. 창문과 출입문을 열어 통풍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일부 학교들에 선풍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로 제1중학교나 외국어학원, 예술학원과 같은 소위 ‘명문학교’에 말이다. 그마저도 교실 규모는 상관없이 교탁 쪽에 달랑 하나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신기해보였고, 뭔가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선풍기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보통 선풍기 가격은 웬만한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 10배에 달한다. 선풍기가 비싼 이유는 북한에서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요즘의 북한은 중국이 없으면 못산다 할 정도로 온통 중국산 천지다.
선풍기가 교실 앞쪽에 있으면 학생들의 시선이 분산되고 소리 때문에 수업이 방해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처음엔 말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풍기는 교실들마다 버젓이, 그것도 칠판 쪽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모든 학교에서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명문학교들 이야기다.
‘있는 집’ 엄마들의 선풍기 구입법?
당시의 상황은 아마도 자본의 위력으로 가능했던 것 같다. 국가적 지원이 전혀 없이 학부형들로 인해 유지되는 교육 환경에서 소위 ‘돈 있는 엄마들’의 힘이 한 몫 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더운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지만 속내는 ‘있는 티’를 내고 싶은 엄마들의 심리가 발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맹점은 돈 있는 집 엄마들이 개별적으로 선풍기를 학급에 기증하는 것이 아니라 학급 전체 학생에게 각자 돈을 거둬 산다는 데 있다. 생활이 어려운 집 부모들에겐 시도 때도 없이 돈을 거둬들이는 학교에 가뜩이나 불만이 많은데 선풍기까지 사려드니 왜 불평이 없었겠는가? 돈 있고 입김이 센 엄마들이 주동해서 벌인 일이니 다른 엄마들로선 ‘동넷집 개를 잡아 제 낯내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당시에 우리 학급의 일부 엄마들은 그렇게 투덜거렸다. 허나 있은들 무엇하랴.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가동률이 거의 없어 졸업할 땐 담임이 집에 가져가거나 지인에게 주기도 한다.
그럼 여름날 학교 밖 상황은 어떨까. 앞서 이야기했듯 지방에는 물놀이장이 거의 없다. 굳이 남한과 비슷한 것을 찾으라면 수영장이 있다. 학교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야외나 강가에 하나씩 있는 정도다. 말이 수영장이지 사방을 돌로 둘러막고 수입구와 하수구를 만들어 강물을 채워 넣은 것이다. 세탁 등으로 오염된 강물이 그대로 수영장으로 유입되어 바닥에는 흙과 돌 천지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에 매우 부적합했다.
더 큰 문제는 장마나 태풍 피해 때다. 수해를 입으면 이 부실한 수영장은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학교가 복구를 맡아 한다. 교육 당국이 시내 각 학교에 구간을 정해주면 학교는 필요한 돌과 시멘트, 모래를 자체적으로 구입해 맡은 구간을 복구해야 한다. 겨울 동파에 담이 무너지면 초여름에 학교마다 수리해야 하고, 장마철에 홍수 피해가 있으면 또 복구해야 하니 1년에 두 번이나 수영장을 복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남한처럼 잘 정비된 워터파크나 수영장은 생각할 엄두도 못 낸다. 여름 방학이면 동네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으로 만족한다. 열악한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어른들이 북한이라는 체제를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숨이 막혀 헐떡이듯, 일생을 조직과 집단에 얽매여 헐떡이며 살아간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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