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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이태준, 매튜 리지웨이 2017년 2월호

이달의 인물

몽골의 슈바이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암 이태준(李泰俊, 1883~1921) 선생을 2017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에서 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자매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김필순과 함께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중국인 기독교인의 도움으로 기독회의원 의사로 취직하였으나 몽골에 비밀군관학교 설립 계획을 갖고 있던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경 몽골 고륜(울란바토르)으로 옮겨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원하였다. 라마교의 영향으로 미신적 치료에만 의존했던 몽골에 선생이 들여온 근대적 의술은 몽골 국민들로부터 큰 신망을 얻었다. 선생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보그드 칸의 어의가 되었으며, 당시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을 받았다.

선생은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독립운동 자금도 지원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군의관 감무로도 활약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고륜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몽 친선의 상징인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태준선생기념공원이 건립되었으며,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생의 공적을 기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매튜 리지웨이 대장,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국가보훈처는 매튜 리지웨이 미국 육군 대장을 2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리지웨이는 1950년 12월 미 제8군사령관에 부임했다. 당시 유엔군은 11월 25일 시작된 중국군의 제2차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한 상태로,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중국군의 제3차 공세로 평택에서 삼척을 잇는 선까지 또다시 후퇴한 이후 유엔군의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고, 곧 한반도를 포기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실제로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오히려 이때 리지웨이의 강력한 리더십과 뚝심이 빛을 발하여 전세를 역전시킨다. 1951년 1월 25일부터 작전의 개념을 수색 정찰에서 지역 확보로 바꾸고 여러 병종이 거대한 팀워크를 이루며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선더볼트 작전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가 직접 전투 현장을 지휘했던 이 작전에서 유엔군은 중국군 인해전술의 한계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였고, 땅에 떨어졌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리지웨이의 확신에 찬 독려와 지휘로 전장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꾼 유엔군은 38도선으로 다시 진격하여 한강 남안을 확보하였다. 맥아더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된 리지웨이는 6·25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정전협상을 이끌었다. 1993년 98세의 나이로 미국 피츠퍼그 자택에서 영면했으며 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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