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기로에 선 한국, 초당적인 대외전략 긴요하다 2017년 2월호
특집 | 스트롱 맨, 동북아를 흔들다!
기로에 선 한국, 초당적인 대외전략 긴요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오른쪽부터)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장수 주중국 대사가 지난 1월 1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동북아·한반도 정세 점검 및 대책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한국 외교가 큰 도전에 봉착했다.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힘의 정치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이 보여주듯, 국제경제 질서에서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대외의존이 매우 높은 한국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리더십 위기가 발생했으며 조기 대선 국면 전개에 따라 이념적·사회적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생존과 번영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직면한 근본적인 위협을 보라
5년 정도의 중기적 전망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직면할 가장 근본적인 위협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그리고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대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5년 이내에 약 백여 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도 완벽한 수준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어디서든 공격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동아시아의 지역 패권을 노리며 해상굴기를 추구하고 있는 중국은 수 년 안에 한반도와 오키나와, 필리핀을 거쳐 중국이 남중국해에 임의로 그어 놓은 구단선(九段線)을 잇는 소위 제1도련선(島鏈線)까지 해상방위선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중국은 유일한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 이끄는 전단을 발해만에서 남지나해에 이르는 항로를 따라 이동시키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미 제2의 항공모함 건조가 마무리 단계이며 남중국해의 인공 섬들을 군사기지화하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가 실질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하에 놓일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외교·안보적 위협이며, 차기 정부가 직면하게 될 급박한 대외환경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며 우리의 외교안보전략을 구상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당장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살펴보자.
우선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의 경고성 경제보복 조치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중국의 의도는 우리 내부의 사드 배치 반대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실제로 사드를 배치하면 더 큰 보복을 서슴지 않겠다는 협박성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안보를 생각하면 사드를 배치해야겠고, 경제를 생각하면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내부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대선 기간을 거치며 이 문제는 더욱 정치화될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자국의 힘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중국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국내적으로 반(反)중 감정을 일으키고, 대한민국을 더욱 미국 쪽으로 밀어붙이는 효과를 발휘할 뿐이라는 점을 중국 당국에 인식시켜야 한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는 일본의 외교적 압박과 경제보복도 우리가 당면한 현안이다. 소녀상 건립의 목적은 일본의 역사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협정에 반대하는 항의의 표시일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야기되는 한·일 간의 외교 갈등은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크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우리가 안보·경제적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일본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비해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따른 이익은 일본의 역사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다. 시민단체의 행동을 외교적 계산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외교당국이나 대선 후보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이 모두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격화와 무역전쟁, 환율전쟁의 반발도 우리나라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후보자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기다릴 수 없는 일이다. 주한 미군 주둔비용 증액 요구는 이미 우리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부담을 하고 있다는 근거와 논리를 내세울 수 있겠지만, 우리의 안보현실을 고려할 때 미군의 전략자산 한반도 배치 증대와 같은 요구로 협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여부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 심화와 더불어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시킬 것이고, 세계 경제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WTO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국제적으로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를 내수 중심으로 신속히 바꿔나가야 한다.
대권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외교·안보 활용해선 안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예고돼 있는 가운데 대북정책 역시 매우 갈등적인 요소이다. 다가오는 대선 정국에서 진보진영은 보수정부 10년간 계속된 대북 압박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비판할 것이다. 반대로 보수진영은 국제사회의 공조로 대북제재를 계속해야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결국 북한 정권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하고 협상카드를 마련해주는 현실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차기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으로 돌아간다면, 대북정책을 두고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충돌하는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정국은 급속히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교·안보 문제가 중요한 대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이번 대선에서도 진영 논리를 앞세운 대외정책 노선 싸움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외교는 정파적 갈등을 초월하여 추진돼야 한다는 말을 우리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 외교가 난관에 봉착할수록 우리 내부의 단합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외교적 난관을 대선 승리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하면 할수록 한국외교는 더욱 수렁에 빠질 것이다. 이는 어느 쪽이 이기든 차기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대외전략 수립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논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진영 /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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