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 정책결정그룹의 집단인식에 주목 2017년 7월호
북리뷰 | <실패한 외교>
정책결정그룹의 집단인식에 주목
‘합리적 행위자론’은 국제정치가 학문의 영역으로 도입된 이래 오랫동안 신화처럼 자리 잡은 인식이다. 핵심은 국가의 의인화다. 인간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타자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처럼 국가 역시 자국에 호의적인 타국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계를 결정하는 ‘호의’의 기준은 ‘이해(利害)’다. 이로우면 호의적인 것이고, 해로우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합리적 행위자론에서 국가는 지극히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주체다. ‘이성적’이라는 말은 결국 ‘이해’를 구분하여 정확한 ‘득실’ 계산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든 국가의 우선적 목표는 무정부 상태의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의 생존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안보는 모든 국가의 외교 정책에서 제1의 지상과제가 된다. 결국 합리적 행위자론이 보는 국제관계 속 외교란 자국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확한 득실 계산이 가능한 ‘이성적’ 국가들 간 모든 관계의 총합이다.
‘합리적’ 국가는 언제나 ‘합리적’ 판단을 하는가?
그러나 국제정치 무대에서 합리적 행위자론은 근 세기 들어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문이다. 합리적 행위자론의 인식으로 보면 제1, 2차 세계대전은 자국 안보를 최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외교적 수단으로 선택한 국가들이 벌인 결과다. 하지만 당시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현실은 전쟁 이외의 외교적 수단을 검토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왔다. 안보를 위해 결정한 국가의 합리적 행위가 실제로는 안보를 보장할 수 없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로써 국가는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근본적인 반성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의 속성을 규정한 기존 관점에 근본적 변화가 일자 국가의 행위, 즉 외교 정책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합리적인 단일 행위자가 존재해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최종안을 도출하는 형태로 결정된다는 점에 집중한 것이다. 따라서 외교 정책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인원, 조직, 이익집단 등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투입 요소들의 부침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패권적 지위를 유지했던 국가 단위의 거시적 분석 관점은 개별 국가의 외교 정책 결정 과정에 집중하는 미시적 분석 관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실패한 외교>는 이러한 국제정치 인식 전환의 정점에 서 있다. 저자인 찰스 프리처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난 1996년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 초기인 2003년까지 8년여의 시간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무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미국의 대북정책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이 책은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부시 행정부 내의 대북정책이 전개되는 과정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외교정책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자는 한 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의 세부적인 갈등과 화합과정을 미시적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줄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인 셈이다.
저자가 일관성 있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네오콘’이라 지칭한 강경파 각료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극도의 부정적 인식이다. ‘악의 축’, ‘깡패’, ‘폭군’으로 점철된 북한 지도자의 이미지는 그들이 가진 가치 기준에 따르면 공식적인 외교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다. 미국에게 북한은 한국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엄연히 적대국이다. 게다가 이미 핵 문제로 전임 정부와 한 차례 갈등을 겪어 전쟁 직전 상태까지 치달은 경험이 있고,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 즉 테러 단체로 핵 물질을 이전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로 판단하고 있다.
정책결정 ‘경험’ 녹인 서술과 논리전개 압도적
물론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북한 이미지 자체가 아니다.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다. 외교의 기본은 상대국에게 정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태도의 일관성을 담보로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를 반복적으로 어기거나 무시했다. 김정일을 격렬히 비난한 뒤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북한과 협상을 위해 실무진 수준에서 접촉 창구를 모색하고 있는 과정 중에 대통령이 북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밝혀 허사가 되는 등의 사례를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이 대북 협상 과정을 지난하게 만들었고 더구나 협상의 시계가 멈춰버린 동안 자체 핵 능력을 신장한 북한은 더욱 까다로운 상대가 되어 다시 링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는 서술은 압도적이다. 물론 몇 가지 보완점, 즉 당시 정책결정자들의 대북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과 9·11테러 등 ‘결정적 국면(critical juncture)’으로 작용했던 사건들에 대한 분석 및 파장, 관련국 내 동일한 분석단위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검토가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발간 이후 10년 가까이 지난 책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지극히 중요한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트럼프가 각국 정상과 악수할 때 몇 초를 잡고 몇 번을 흔들었는지, 트위터 메시지를 작성한 시간대에 따라 표출되는 감정이 어떤 의미인지 등에 골몰하고 있을 ‘전문 뉴스 낚시꾼들’에게 일독을 권하기 때문이다.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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