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온다, 극동으로 간다! | 낙후된 의료 인프라 … 한국식 ‘패키지 딜’ 시작해야 2017년 7월호
러시아가 온다, 극동으로 간다! 4 의료
낙후된 의료 인프라 … 한국식 ‘패키지 딜’ 시작해야

지난 2013년 3월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국제관광박람회(MITT)에 참석한 한국의 한 의료기관이 방문객을 상대로 갑상선 검사 시범 진료를 해주고 있다 ⓒ연합
현재 러시아 헌법에는 국민에 대한 보편적 무상의료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러시아 국민 개개인은 거주지에 의거해 해당 국영병원에서 무상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의약품만 자비 부담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의료 인프라는 매우 낙후되어 있다. 예산 부족으로 의료진이 매우 낮은 급여를 받고 있으며 의료장비 보유 수준 역시 선진국과 비교해 1960년대 수준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전히 대다수 러시아 공립 병원들은 구소련 시절 사용하던 의료기기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러시아 의료 시장은 글로벌 의료 강국들이 눈독 들이는 블루오션이다. 정부 주도의 무상진료 시스템으로 의료 인프라가 매우 낙후되어 있는 상황이라 값을 더 지불하더라도 민영 병원 또는 해외 의료기관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방한한 러시아인 14%는 질병 치료 위해
러시아 정부는 한국과의 협력으로 자국의 의료 서비스 질적 수준을 개선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형 선진 의료 서비스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 국민들의 의료 관광을 거쳐 철저히 검증됐다. 2015년 한해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국민은 23만5,300명인데 이 중 질병 치료 목적이 3만1,800명으로 전체 방문객의 14%에 달했고, 국내 지출 금액은 약 1천억 원 수준에 이른다. 러시아 중산층들은 수준 높은 한국의 병원에서 계속적인 서비스를 받고자 희망하고 있다.
극동 러시아의 보건의료 시장은 개방될 것이고 한국 의료계에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5년 러시아 정부가 극동개발 촉진을 위해 공표한 바와 같이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과 연계하여 의료 산업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법 개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의료 시장을 개방하고 극동 지역의 의료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 제도적 근간 마련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극동 개발의 전담 부처인 극동개발부는 지난해 외국 의료 기관의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내 입주를 위한 신규 법안을 적극적으로 발의했다. 극동개발부가 초기에 발의한 시행령은 실로 파격적이다. OECD 회원국의 의료 기관이 자유항에 입주하는 경우 해당 의료 기관은 러시아 법이 아닌 의료 기관의 자국법 적용을 받는다는 게 핵심이다. 이 같은 방침은 외국 의료기관들로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주목을 받았으나 러시아 부처 간 의견 불일치로 더 이상의 진척은 보이지 못했다. 이후로 극동개발부는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 또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형국이다.
지난해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진행된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극동 지역의 한국 의료기관 진출, 원격 의료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의료기술 협력, 극동 캄차카 주립병원 건설 협력, 원격 시스템을 통한 의료인 교육 등 네 가지 협력 분야에 대해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함에 따라 의료 협력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상황이다. 러시아 시장에 한국산 의료 장비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협력 초기부터 종합병원 건설 협력을 운운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을 추진하여 그 성과를 바탕으로 더 큰 사업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러시아 비즈니스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노후 병원 인프라 개선에 참여해 사업 기회 확대해야
따라서 러시아 의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략이 필수적이다. 우선 기존 병원들의 신축 및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러시아 내 병원들은 주로 1940~1960년대 건설되어 상당히 노후한 실정이다. 한국식의 병원 현대화 사업을 러시아와 공동으로 추진하여 가까운 극동의 병원 건축물의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정책적으로 참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들이 향후 러시아가 발주하는 의료 관련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수의계약 한다는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다음으로 의료 장비 교체 수요를 노려야 한다. 현재 러시아 공립병원의 의료 장비 대부분은 구소련 당시 구동독 등지에서 도입된 것이다. 여전히 극동 러시아 주요 도시의 병원들은 현대화된 의료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병원 신축 또는 재건축을 발주하는 의료 사업자에게 한국산 의료 장비 구매 의무화 옵션을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사업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병원 운영의 현대화를 지원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아직도 상당수의 러시아 병원에서는 환자 차트, 처방전 등의 서류들을 의사나 간호사들이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전산화하여 진료시간 단축에 기여해야 한다. 한국 병원의 IT 전산 시스템 도입으로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마련, 병원 내 타과 간 협진 시스템을 활성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식 전산 시스템으로 전환될 경우 자체적으로 상당 부문에서 운영 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동일한 체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차제에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의료진 교육도 필수적이다. 한국의 주요 병원들을 활용해 러시아 의료진들이 한국에서 일정기간 교육과정을 거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의료 시스템과 기기들에 대한 사용자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 의료진 또한 단기간으로 러시아 병원에 파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양국 의료진 간의 실무적인 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형 의료 인프라 공급부터 사용자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소위 ‘패키지 딜’로서 러시아 정부와의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전명수 / 러시아 주재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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