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펜(PEN) 잡은 자들의 운명 2017년 7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6
펜(PEN) 잡은 자들의 운명
북한에 살 때 몰래 남한 소설을 읽은 적 있다. 어떤 경로를 거쳐 내 손에까지 들어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에서 유입된 것만은 확실하다. 모두 단편 소설이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 <이혼 상담소>다. 내용은 이렇다. 한 부부가 이혼 상담소를 개업해 불화를 겪는 부부들의 사정을 듣고 처방을 내려주는데 대개 이혼하라는 권고를 내리곤 했다. 날이 갈수록 내담자가 많아졌는데, 상담을 받고 이혼한 사람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행복해했다. 이에 부부는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남편에게 “우리도 이혼하는 것이 어때요?”하고 묻는다. 당황한 남편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아내는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요? 그 좋은 이혼을 남들한테만 권고한다는 게 말이 돼요? 우리가 솔선수범해야지 양심이 없잖아요.”하며 기어코 이혼하자고 들이댄다. 그날부터 부부는 다툼이 많아지더니 결국은 이혼이 새로운 행복을 찾는 길임을 깨닫고 이혼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고 크게 충격 받았다. ‘세상에 결혼 상담소도 아니고 이혼 상담소가 있다니’, 작가는 사회 정의와 건전한 윤리도덕이 바로 서는 데 기여하는 작품을 써야지, 오히려 앞장서서 사회를 부패시키다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사회의 어두운 면 그리면 정치범수용소로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재미가 있어야 예술이다. ‘나도 이런 소재로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을 쓰라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면과 기이한 사건을 소재로 삼자면 북한에도 많다. 하지만 어디 발표할 곳도 없을 뿐더러 그런 소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정치범수용소 감이다.
북한을 떠나 제3국 난민수용소에서도 남한 소설을 접했다. 두 개의 장편 소설이었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였고, 다른 하나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또한 충격이었다. 판타지 소설이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판타지 형식이라는 것을 몰랐다. 북에는 리얼리즘 소설이 대부분이고 그 외 과학환상 소설 등이 있지만 판타지 장르는 없기 때문이다. 기괴한 등장인물들과 사건으로 엮어져 있는데 재미는커녕 머리가 혼란스러워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당시의 나는 환상소설도 아니고 신화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글을 쓰는 소설가도, 그걸 재미있다고 읽을 독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도서관부터 찾았다. 거기서 시집과 소설책들을 대출받아 며칠 동안 읽었다. 다행히 재미있고 내용이 좋은 소설들이 많았으며 북에서 온 사람들도 별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리얼리즘 소설이라 해도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에 들어있는 신세대 신인작가들의 작품은 취향이 맞지 않았다.
북에서 온 사람들이 제일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은 아마 소설인 것 같다. 북에서 시인이었던 필자 입장에서는 남한 시가 가장 이질감이 커서 현재는 시보다 소설을 주로 쓴다. 그렇지만 판타지 소설은 흥미가 없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생각이다.
남북한 소설가들의 작품 활동과 생활형편을 들여다봐도 재미있다. 물론 남이나 북이나 문인이 부유하지 못하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북한 문인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남한 문인은 밥술이나 뜨는 정도 될까? 언젠가 한 시인이 문학 관련 세미나에서 “가난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작가”라고 토로하던 기억이 난다. 극소수의 작가가 부유한 것도 남과 북이 같다. 북한에도 우상화작품 창작을 전업으로 하는 ‘4·15문학창작단’ 소설가들을 비롯한 ‘김일성상’ 계관인 작가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잘 살고 있다.
남한에도 부유한 작가들은 있다.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인데 그래도 재산 보유 면에서는 북한 작가들에 비해 훨씬 부자다. 북한 작가들은 부동산도 가진 것이 없고 현금 자산도 별로 없다. 다만 국가의 혜택이 클 뿐이다. 또한 책이 얼마나 팔리든 정해진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판매 부수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좋은 작품으로 읽히고 사랑받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남한 작가들은 다르다. 판매 부수가 작가로서의 명예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니 밀리언셀러 작가니 하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알았다.
“조선 문학만큼 어려운 문학은 없을 것”
가장 큰 차이점은 작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 표현의 자유 범위다. 북한의 작가는 순수한 문인이 아니라 ‘조선노동당의 정치를 펜대로 받드는’ 사실상 정치인이다. 그래서 가난할지라도 당 간부와 동일한 지위를 가진 소위 ‘양반’ 계급이다. 작가에게 당 간부와 동일한 급여를 주는 공산당, 노동당은 어느 공산국가에도 없었다. 그 재원이 문화성이라는 공간을 거칠 뿐 사실상 당 자금이다. 문화성 자체가 당의 직속이다. 정치 선전에 목적을 둔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한 작가들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지만 북한 작가들은 당국의 비위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기준으로 써야 하며 그 기준을 만족시키는 한에서 작품성을 높여야 한다. “이 세계에 조선 문학만큼 어려운 문학은 없을 거요.”라던 북한의 꽤 유명한 원로 작가의 푸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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