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새정부 통일정책, 유념해야 할 것은? 2017년 7월호
시론
새정부 통일정책, 유념해야 할 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많은 일이 있었다. 북한은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사드의 배치와 이로 인한 한·중관계의 악화, 남북관계의 단절,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미국인 세 명의 북한 억류와 오토 웜비어의 사망사건까지 있었던 격동의 시간들이었다. 주(駐)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어느 젊은 유럽의 외교관이 오토 웜비어의 죽음에 관해 말한 것처럼, 외교와 약속만으로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낭만적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이러한 환경적 악화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어떠한 정책적 시도를 보이기도 전에 다시 단절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것일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청년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인해 확실해진 것은 과거와 같은 방식의 대북정책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효과적인 대북정책은 북한 정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불편한 현실이지만 북한 정권의 특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는 협상만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북한 핵 위협의 직접적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과정을 앞장서 견인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미국 역시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생각한다면 매우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둘째, 중국은 미국을 위시한 강력한 외부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전면적인 무역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에도 물론 큰 영향이 있을 것이며,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의 무역 자료에 나타나듯 북한의 대중국 교역을 보면 수출은 감소했지만 수입은 증가했다. 초강력 국제제재가 추진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셋째, 북한이 국제적 제재로 인해 빠른 시일 내에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유류비 상승 등 경제적 측면에서 약간의 불편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 엘리트 계층의 소비생활은 제재로 인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당분간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북한 여행을 금지한 것과 같은 제재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조치로 인해 북한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북한은 좀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직시한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모습을 대북정책 수립에 투영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한다.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정치적 사고이다.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견인하려면 북한의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대화해야만 열린다. 남북한이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꾀하는 비정치적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한국의 정책적 목표 및 정치적 고려와 별개로 만남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과거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동서 냉전은 비록 엄혹했지만, 그 이면을 보면 서로의 왕래와 교류가 긴장을 해소하는 데 순기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분단 당시 독일에서는 이산가족들이 소식을 주고 받거나 서로 만나는 장이 계속 이어졌다. 매년 서독에서 동독으로 전송되었던 2,500만여 개의 소포들은 비판론자들의 말처럼 동독 정권을 지원하는 기능을 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오히려 동독 주민들에게 서독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비록 한 쪽만 자유화된 형태로 교류가 이어진다고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상대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보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상호간에 가능한 한 많은 연락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정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대안 없이 북한 붕괴만을 바라고 있어선 안돼
물론 지금의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남북 간 교류가 이어질 때 일부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한이 민간 차원의 교류를 통해 이득만을 취하려 들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현실정치의 영역 안에서 받아들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상태로 북한이 붕괴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에 선 지금, 근본적으로 남북 간에 모든 만남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의학 또는 환경 분야와 같이 통일 미래를 위한 분야에서의 교류를 확대하고 재정적인 부분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한 남북 교류에 있어 이산가족의 상봉이나 문화·체육 사업, 학술적 교류처럼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상호간 충분한 신뢰가 구축되면 비로소 진지하게 정치적 교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대북정책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북한 사회와 주민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의 교류는 단순히 한 정부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이슈가 아닌 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른하르트 젤리거(Bernhard Seliger) /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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