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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라! 통일교육 보물창고 | “어찌 나만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소” 2017년 9월호

열어라! 통일교육 보물창고 7 | 장기려 박사의 보내지 못한 편지

어찌 나만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소

기획 : 통일부 통일교육원 제작 :  미디어

기획 : 통일부 통일교육원 / 제작 : 미디어

 

2학기에 접어들어 9월 마지막 주의 가족행사 체험 신청서를 정리하다가 문득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기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추석이라고 가족이 모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고, ‘명절 스트레스를 겪느니 따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 소망일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학생들과 어떤 통일 교육 자료를 볼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바로 ‘장기려 박사의 보내지 못한 편지’라는 영상이다. 이 자료는 ‘한국의 슈바이처’로도 불리었던 고(故) 장기려 박사의 일화를 통해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도록 제작한 영상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묻고 일생 의사로 헌신하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던 한 젊은 의사가 환자들을 태우고 남으로 가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다섯 아이와 아내를 평양에 남겨둔 채 둘째 아들만을 데리고 남한 땅에 먼저 내려온 것이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은 채 부산의 피난살이 천막에 촛불을 켜고 무료 진료를 시작한 이가 바로 장기려 박사다. 가난한 환자에게 자신의 월급을 건네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는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봐주고, 병원 옥탑방에서 홀로 지내며 환자 돌보기에 헌신한 의사, 장기려. 그러나 그는 밤이면 아내와 함께 부르던 ‘울 밑에 선 봉선화야’를 홀로 부르며 눈물을 삼키는 한 여인의 남편이기도 했다.

“이제 그만 재혼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선생님, 북에 계신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셨습니다!” 공식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기 전, 미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어렵게 가족 상봉의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의 짧은 답신에 깜짝 놀란다. “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이 나만 못지않을 텐데 어찌 나만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며 북행을 할 수 있겠는가”

1980년대 후반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그의 헌신적인 의료 활동과 수고에 특별 가족 상봉을 제안하지만 자신 혼자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이산가족이 나 하나만이 아닌데…, 그들을 다 보내준다면 나도 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절하겠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 소망했던 마음은 길고 긴 분단의 시간 속에 그렇게 묻혀갔다. 그리고 1995년 12월 25일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리던 성탄절, 늙은 의사는 홀로 눈을 감는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택용 엄마, 6·25 참화로 가족과 생이별한 이가 어찌 나뿐이 오만, 해마다 6월이 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미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물을 삭이곤 하오…’ 북에 있는 아내에게 한 자 한 자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들은 5년 뒤, 이산가족 의료진으로 평양을 찾은 아들의 손으로 50년 동안 남편을 기다렸던 아내에게 전해졌다.

영양부족 환자에게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을 내주시오’라고 처방한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환자에 대한 그의 끝없는 사랑은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남측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13만850명, 그중 끝내 만나지 못한 가족을 그리며 눈을 감는 이들이 해마다 4천여 명이나 된다. 사진과 자막, 그리고 잔잔한 음악만으로 구성된 이 영상 자료는 보는 내내 장기려 박사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장기려 박사의 보내지 못한 편지' 영상 中

‘장기려 박사의 보내지 못한 편지’ 영상 中

평생을 눈물로 써내려간 편지 속에는

필자는 이산가족 3세대다. 분단과 전쟁을 직접 겪었던 1세대에 비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4세대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어떠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상은 수업시간에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추석을 앞두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을 위해 이산의 고통을 겪은 1세대 어른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수업을 준비해 보도록 하자. 영상과 함께 헤어진 지 40년 만에 편지로 만났다는 장기려 박사 부부의 편지 일부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편지의 일부를 함께 수록한다.

“40년을 남한에 살면서 재혼하라는 권유도 많이 들었다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스스로의 언약, ‘우리 사랑은 영원하다. 만일 우리 둘 중 누가 하나라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이 사랑은 없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육으로 있을 때뿐 아니라 떠나 있을 때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사랑이다라고 한 말을 상기하며 당신을 기다렸소. 여보, 몇 년 전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몇 명씩 남과 북을 방문하여 해후의 기쁨을 나누고 돌아온 것을 기억하지요. 난들 왜 가보고 싶지 않겠소. 당신과 자식들을 만나고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님 산소도 둘러보고 고향집과 평양 신양리의 옛집에도 가보고 싶소. 그러나 일천만 이산가족 모두의 아픔이 나만 못지않을 텐데, 어찌 나만 가족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고 북행을 신청할 수 있겠소. 나는 내 생전 평화통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온 민족이 함께 어울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그날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 남편 장기려(1995년 12월 25일 작고)

그립고 보고 싶고 또 그리운 당신에게, 늘 기도 속에서 당신을 만납니다. 저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저 혼자 아이들을 키운 게 아니랍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그때마다 당신은 당신 생각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전 그대로 했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 있어 주세요 – 아내 김봉숙(2004년 4월 16일 작고) 여사의 편지 中

배은주 서울 공항중 통일교육 담당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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