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1월 1일

Uni – Movie | “우리는 살기 위해 헤어졌습니다” 2017년 11월호

Uni – Movie | <크로싱>

우리는 살기 위해 헤어졌습니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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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로싱>은 대표적인 분단 영화 가운데 하나다. 개봉과 함께 본격적인 북한인권 영화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는 분단과 탈북으로 인한 고뇌와 아픔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영화에 관련한 학술논문도 여러 편 나올 정도로 개봉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모았다.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차인표는 지난 1996년 영화 <알바트로스>에서 고(故) 조창호 중위 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당시 영화 <알바트로스>의 개봉을 두고 음해적 말들이 많아 마음고생을 많이 한 그는 영화 <크로싱>에 출연하는 것을 두고 고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인표는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난 이후에 탈북과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지금까지 다방면으로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영화 <크로싱>에서 전편 <알바트로스>보다 한층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애잔한 슬픔을 전달하여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스토리

영화의 무대는 북한에서 탄광이 많기로 소문난 함경도 지역의 한 탄광마을이다. 영화에는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김용수(차인표 분), 아내인 용화(서영화 분), 소학교에 다니는 11살 난 아들 준이(신명철 분)가 등장한다. 형편은 어렵지만 단란한 가족이었던 이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 영화는 용화의 폐결핵, 약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용수, 그리고 사별 등 한마디로 용수 가족의 ‘잔혹사’를 통해 북한 체제의 고질적인 ‘부족 현상’을 드러냈다.

임신한 아내가 폐결핵에 걸리면서 백방으로 약을 구해보지만 약을 구할 수 없었던 용수는 결국 중국행을 결심한다. 그는 어린 아들과 병든 아내를 뒤로 한 목숨을 건 도강에 성공하고 중국의 한 벌목장에서 잡부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약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던 용수의 벌목장에 중국 공안이 들이닥치면서 또 한 번의 좌절을 겪는다.

간신히 도주에 성공한 용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종교인권 단체였다. 중간 브로커로부터 인터뷰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용수는 선뜻 선양에 위치한 독일대사관으로 일행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고 곧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용수는 자나 깨나 병든 아내와 어린 아들 걱정뿐이다. 어렵사리 예전의 탈북 브로커와 연락이 닿은 용수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한다. “하나님도 사람 차별하는 겁네까? 어찌 잘 사는 남조선에는 있고 저쪽에는 없는 겁니까?” 용수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 주인에게 따지듯 외친다.

한편 어머니의 사망 이후 혼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중국행을 결심한 준이. 도중에 만난 꽃제비 소년의 도움으로 두만강에 다다를 무렵 시장 바닥에서 음식 조각을 주워 먹는 미선이를 발견한다. 미선이는 온 가족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헤어지게 된 단짝 친구였다. 준이와 미선, 꽃제비 소년은 두만강에 다다랐지만 어린아이의 몸으로 국경선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도강 직전 국경경비대에 발각되어 불법 도강자들을 구금하는 강제 노역장에 끌려간다. 용수가 아내의 사망 소식에 오열했듯이 어린 준이는 미선이 시체가 되어 밖으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절규한다.

그 사이 용수는 탈북 브로커에게 부탁하여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준이를 빼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감시망이 강화된 중국지역을 벗어나 멀리 몽골을 만남의 장소로 정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한 차례의 가슴 아리는 영원한 이별이었다.

감상포인트

영화 <크로싱>은 북한 인권 영화의 효시답게 북한의 현실을 매우 담담하게 잘 그려냈다. 건물과 복장 등 소품의 완성도 또한 높다. 북한 인권 영화인 영화 <겨울나비>에서 그려졌던 황해도 지역의 모습이 회색빛이었다면 영화 <크로싱>의 배경인 함경도는 희뿌연 황톳빛으로 그려졌다.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준이가 석양이 지는 철도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은 희뿌연 색채와 어우러지면서 어린 나이에 겪는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영화 중반부부터 ‘가난-질병-이별’은 준이 가족의 잔혹사를 맴도는 주문이었다.

‘그날 우리는 살기 위해 헤어졌습니다’라는 포스터의 문구는 가난과 질병으로 아내와 아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용수의 아픔을 전달하는 함축된 멘트다. 이미 국내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었다. 한반도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한반도 격변기의 분단과 이산의 아픔과 비극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아리랑’의 노랫말에 함축되어 있는 한과 서글픔은 그러한 디아스포라적 상황과 적절하게 매치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사적 변동이 가족사적 비극으로 연쇄되어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 수레바퀴가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숙명일 것이다. 작은 노력과 관심이 모여 차디찬 몽골의 사막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서서히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졌던 준이의 한 맺힌 영혼에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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