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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김치보, 감봉룡 2017년 12월호

이달의 인물

김치보, 감봉룡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김치보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치보(金致寶, 1859. 9. 17∼1941. 11. 18.) 선생을 201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59년(철종 10년) 9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고,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09년에는 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동년 4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던 ‘청년돈의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국민회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여 쇠락한 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를 자임하였으며, 선생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며 한인 교육활동 등에 힘을 쏟았다.

선생은 1917년 <권업신문>을 계승한 <한인신보> 발기회의 고문단장으로 활동, 1918년 한민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2월 설립된 대한국민의회의 상설의회 의원으로 선출, 동년 3월 3·1운동의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일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6일 선생은 노인동맹단 단장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였고, 1919년 9월 강우규를 국내에 결사대로 파견하여 서울역 앞에서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제등실에게 폭탄을 던져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정부는 1996년 김치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감봉룡 경감 철도경찰대는 물러서지 않는다

국가보훈처는 감봉룡 경찰 경감을 12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감봉룡 선생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황해도 개성 지역 철도경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정예 제1사단, 제6사단과 13대의 T-34전차 등 상대의 집중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국군 제12연대는 김포반도로 철수해야 했다. 개성경찰서 병력도 대대와 함께 철수했다.

그러나 이때 감봉룡 경감이 지휘하는 철도경찰대는 50명 전 대원 모두 본부를 사수하기로 결의하고 본부 주변의 요충지를 점거해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철도경찰대의 저항이 워낙 완강한 데다 개전 후 처음으로 조직적인 저항을 받은 북한군은 다른 통로로 진출하던 5대의 전차까지 동원해 본부 건물을 포격하기 시작했다.

포위망은 좁혀져 왔고 통신마저 두절된 상태였지만 감봉룡 경감과 대원들은 굴하지 않았다. 북한군 전차의 포격으로 본부 건물이 파괴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전 대원의 결의를 가다듬고 선두에서 돌격을 지휘하다 동료 43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이들의 분전은 전쟁초기 북한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면서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숭고한 희생이었다. 정부는 감봉룡 경감의 고귀한 뜻과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2014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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