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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 분단과 평화에 대한 고민,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12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北 마지막회

분단과 평화에 대한 고민, 현재진행형이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날씨는 이미 추웠다. 비록 압록강대교는 중단되어 있었지만 신의주로 향하는 화물차들은 여전히 단둥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줄 서 있었고, 간혹 열차가 출발했다. 그러나 여전히 압록강대교는 그 위용만 자랑할 뿐 무늬만 다리였다. 그러나 신의주와 단둥 사이, 그 경계의 역할을 하는 압록강은 여전히 얼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강 사이 국경선을 나눈 북한과 러시아와의 경계와 달리 서로 강을 공유하는 북·중접경 지역의 압록강. 육지 가까이 갈 수는 있으나 육지에 닿으면 안 된다는 이 묘한 공간의 경계는 그 덕분에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쾌속선에 탑승했다. 강 위의 북한 섬들 사이로 가다 보니 어느 틈에 오른쪽도 북한 땅, 왼쪽도 북한 땅인 묘한 공간에 들어선다. 이 신기한 상황에서 순간 긴장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경계 한쪽 바깥에서 타자적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했던 내게 실제로 지척에 북한 땅이 존재하는 공간은 지금껏 북한을 바라보던 내 시선의 방향이 무엇이었는지 몸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다.

제가 아는 김성민일까요?” 아닐 걸요

우연히 단둥의 한 골동품 거래 건물에 들어섰다. 주로 중국산 도자기가 많았다. 그러나 한 층에서는 북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각 상점 안에는 북한 회화 작품들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한 곳에 들어갔다. 내부에는 김일성의 태양상을 그린 작가 김성민의 대표 작품이 걸려 있었다. 상점 주인에게 “제가 아는 김성민일까요?”라고 물었다. “아닐 걸요. 김성민이 여럿이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주인에게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된 시장이 북한의 현대미술을 망쳐놓을 것이라는 확신은 점점 더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북한 미술 연구자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는지, 한 중국인 주인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골라 달라고 했다. 공훈미술가, 인민미술가들의 작품들이라며 그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런 풍경화들을 그릴 수 있는 미술가들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이러한 작품들로 당신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벌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돈을 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시잖아요? 중국 현대작가는 작품 하나에 100억 원도 하지 않습니까? 북쪽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합니다” 다행인 것일까? 그 중국인 주인은 내 이야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 반론을 펴지는 않았다. “시장에 끌려가시면 시장 맨 끝에 서게 됩니다. 시장을 이끄셔야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자리를 떴다.

그 옆 가게에 들어가니 조각보들이 아름답게 걸려 있었다. 천에 수를 놓아서 만들어놓은 커튼을 비롯해 여러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디자인은 한국인이 하고 북쪽 사람들이 수예를 놓아서 만든다는 작품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결국 이것이 대안일까? 그렇다면 북한의 뛰어난 수예, 자수인들은 하청을 받아 시키는 대로 손만 움직이는 장인으로서만 남아야 할까? 이것이 필연적인 과정일까? 머리가 조금 더 혼란스러워졌다.

북한 미술계에서 내가 주목하고 있었던 이석호, 정창모, 선우영 등등은 모두 이미 사망했고, 몇몇 좋은 작업을 하는 미술가들도 고령이다. 이들의 작업을 잇는 좋은 미술가들은 현재도 키워지고 있을까? 불행히도 나는 북한에서 어렸을 때부터 스타 미술가로 키워졌다는 오은별의 회화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해 평가할 수 없지만, 도록을 통해 본 작품들에서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남북 미술교류가 중단된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또 다른 맥락에서 시장과 활발히 소통한 북한 미술계의 새로운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을까? 단둥에서 본 작품들은 매우 큰 우려를 낳게 했지만 이것이 실재의 북한 미술계를 반영하고 있을지 또한 의심스러운 상황이라 판단을 유보했다. 단 국내용과 외화벌이용 작품들은 따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가능할 것이다. 북한의 미술품들은 이미 외화벌이의 핵심 물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수대 해외개발그룹’의 제재는 이를 증명한다. 비록 트럼프는 제재했지만 실제로 이는 전혀 자본주의답지 않은 정책이다. 시장은 시장의 논리로 이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장이 싸구려일 때 북한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내 고민은 그 지점에 놓여 있다.

북한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월간 <통일한국>에 연재한지도 5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마지막 글을 쓰는 날 알았다. 정말이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북한 미술을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확실한 것은 그 시간 동안도, 그리고 지금도 국내의 미술가들이 북한과 분단, 그리고 평화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확한 것은 연재를 멈추는 이유가 더 이상 소개할 미술 작품이 없어서는 아니다.

과거보다 지금 더 많은 미술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물론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더 좋은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우리 미술계는 북한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연재가 5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미술 작가들 덕분이었음을 다시 한 번 이 자리에서 밝혀둔다. 물론 더 많이 감사해야 할 분들은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이다. 항상 만나고 싶은 분들이다.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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