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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아내의 과거 2017년 12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82

아내의 과거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아버지가 북한 노동당 중앙 간부였고 그 자신도 호위국 군관으로 일하던 차일무(가명) 씨는 지난 2010년 8월 탈북해 한국에 입국했다. 소위 북한 엘리트 출신이 왜 탈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나는 사연을 들은 후 격분해 치를 떨었다. 사람의 삶 자체가 천태만상이라 하지만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부로부터 강요받은 것이라면 그 피해는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나는 그 해답을 차일무 씨의 탈북 동기를 듣고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탈북 동기를 간단히 적는다.

호위국 행사처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차일무 씨는 나이 30대 중반에 이르도록 결혼을 못했다. 어느 날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평양의 옥류관으로 불러냈다. 옥류관 귀빈실에서 차일무 씨는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어떤 여자를 보았다. 첫눈에도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대동강 맥주잔이 한 순배 돌았을 때 아버지는 ‘네 색시감이니 상호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라’며 일어섰다. 그 순간 차일무 씨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내 색싯감이라고?’ 여자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긴장된 군 생활에 익숙해 이성 접촉을 못해본 차일무 씨는 못 견디게 두드려 대는 심장박동에 더는 견딜 수 없어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반짝이는 가운데 방금 본 그 여자의 얼굴이 환히 나타났다. “저, 제가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도 돼요” 따라 나온 여자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는 마음에 들어요”

매일 오전 9시에 걸려온 전화의 정체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대동강변의 버들 숲 아래 산책길에는 두 사람의 무수한 발자국이 찍혔다. 성대한 결혼식도 치렀다. 그러나 황홀한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가 화근이었다. 물론 9시 전에 출근한 남편은 한동안 전화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처럼 매일같이 걸려온 전화가 같이 사는 남편의 시야에 걸려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전화는 중앙당 5과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매일 두 사람의 생활을 체크하고 있었던 것이다. 5과의 실체를 알고 있는 차 씨는 부쩍 의심이 들었다. 차마 아내에게 따질 수는 없어 차 씨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따지고 드는 아들을 차마 물릴 수 없어 아버지는 떠듬떠듬 전말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중앙당 5과에서는 전국에서 뽑혀 올라온 여성들 중 특별히 인물이 수려한 여성을 골라 고위직의 시중을 들게 했다. 하지만 나이 25세가 지나면 자연스레 퇴출된다. 그러나 퇴출 이후에도 여성들은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고위직과의 관계가 알려지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기에 같은 중앙당 일꾼들 자제나 주위에서 일하는 측근들의 자제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차일무의 아내도 그렇게 되어 시집을 온 여자였다.

결혼 이후 풍족한 생활까지 당 중앙에서 보장해주며 과거에 있던 일이 무마되도록 조치해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전말을 이야기해주며 “만약 네가 이 일로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것으로 우리의 운명은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면 흠집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건 세월이 다 잊게 만들 것이니 네가 이해하고 며느리를 사랑해줘라. 알고 보면 그 애는 참 순진하고 참하지 않으냐. 나는 결혼 6개월간 너희들의 생활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다. 내가 본 것은 너 역시 며느리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거면 된 것 아니냐? 굳이 일을 밝혀 집안을 풍비박산 낼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지 않으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집안의 미래는 없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하지만 젊은 호위군관으로서의 자존심이 차일무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한때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그릇된 길을 걸었음에도 이를 속이고 버젓이 결혼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그토록 그를 참담하게 만들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아내를 경멸했다.

그런 자들을 호위해 온 저는 어떤 인간이란 말입니까

이후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이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됐다는 것을 안 아내는 결국 결심을 하고 두 사람의 연인 시절 추억이 서린 대동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살할 당시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 사고로 은폐돼 흐지부지되어 버렸지만 차 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가문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탈북의 길에 나섰다.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주먹을 꼭 틀어쥐었다. 지난 시절의 회고를 끝맺으며 한 말이 아직도 내 귀를 울린다. “꽃 같던 조선의 어린 여자들을 종군 위안부로 삼은 일제나 반반한 여자들을 전국에서 끌어올려 차마 못할 짓을 해댄 북한 위정자들의 행위가 대체 뭐가 다르답니까? 또 그런 자들을 목숨 걸고 호위했던 저는 또 어떤 인간이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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