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트럼프 아시아 순방, 우리에게 남긴 것은? 2017년 12월호
특집 | 시계(視界)제로 한반도 … 돌파구는?
트럼프 아시아 순방,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청와대에서 한‧미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과 군사적 옵션의 사용 가능성 시사 등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국회연설 등에서 돌출 발언을 하지 않고 특별한 한·미 간 갈등을 노출하지 않았다.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한·미는 ‘긴밀한 협조와 조율, 협력 지속’을 약속하며 ‘북한을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비핵화 대화로 복귀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와 조율된 압박’에 합의했다. 한·미정상회담 이전 일각에서는 미국과 한국이 북핵 해법과 관련하여 ‘전쟁과 평화’의 프레임으로 갈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었지만 실제로 갈등은 노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갈망하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여 정제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성공적인 한·미정상회담으로 마무리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부분이다.
美 대북정책, ‘힘을 통한 평화(억제)’ 방향성 명확히 해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핵심은 ‘군사력을 동원한 북핵 저지’에서 ‘힘을 통한 평화(억제)’로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성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에서 “이제는 힘의 시대”라면서 “평화를 원한다면 강력해야 한다”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전 속도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적 옵션의 사용 가능성을 높여 오다가 한국 정부의 전쟁불가 의지를 반영하여 ‘힘을 통한 평화(억제)’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한국의 첨단 정찰 체계를 포함한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과 개발을 지지하면서 첨단무기 판매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전쟁 가능성을 줄여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견지하는 한편, 미국 전략자산의 순환배치 확대와 미국산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 및 개발을 통한 힘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및 한국과의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 기조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방점은 중국 견제에 찍혀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간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으로 확장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맞대응 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 당시 내세웠던 ‘아시아중시(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rebalancing)’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란 용어 대신 ‘인도·태평양 지역’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 공동언론 발표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신뢰와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 등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축 임을 강조하였다”고 밝힌 부분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이란 점을 강조한 것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과 전략은 대(對)중국 전략 차원에서 범태평양 세력권 형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이 태평양 지역으로 세력을 확산해 나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함이 주목적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제19차 당대회에서 ‘신형국제관계’를 주창하는 등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한 세력 확산을 추진하자, 트럼프 행정부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을 들고 나왔고, 여기에 인도, 호주, 일본, 한국, ASEAN을 연결하여 대중국 봉쇄를 위한 세력권 형성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
물론 미국이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에 포함시키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일본이 인도·퍼시픽(태평양) 라인을 구축하고자 하지만 우리는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고,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지난 11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일 뿐 우리는 동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미국이 제시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은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외교 다변화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공동의 전략적 목적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적절한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최근 한·중은 사드 문제로 불거졌던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한국 정부의 ‘3불(不) 입장’(사드 추가배치 배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거부) 표명으로 한·중 사드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 복원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의 태도 변화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사드 문제로 한국 정부와 갈등을 지속할 경우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체제가 강화되고,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관련 국가들의 갈등이 겹쳐질 경우 ‘신냉전 질서’로 재편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아래 군사·안보적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을 어렵게 할 경우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체제가 강화될 수 있다고 보고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복원하려는 것이다.
한·중관계 복원을 계기로 한국의 균형외교가 재부상,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설명한 바와 같이 균형외교는 미·중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봐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외교라 할지라도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제로섬 관계로 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군사동맹, 중국과의 교역관계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은 어느 한 국가에 편향된 외교를 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리아 패싱’이라는 자기비하적인 말은 성립되기 어렵다. 한국 국력에 걸맞은 위상과 지정학적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주변국들이 한국을 ‘건너뛰어(skipping)’ 한반도 문제를 결정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국가”라면서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다”고 밝히며 ‘코리아 패싱’ 우려를 일축한 것처럼 현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한국을 제외하고 한반도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 중 확인된 해법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고, 힘을 통한 평화와 억제의 시대가 개막됐다는 것 ▲북한에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포기를 촉구한다는 것 ▲완전하고 영원한 북한의 비핵화 등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 새로운 북핵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복귀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와 조율된 압박을 지속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은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9일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한 약속을 논의했고, 과거의 전철을 밝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힘으로써 핵무기 고도화와 관련한 북한의 추가 도발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의 사용을 통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곧바로 추진하지 않고 ‘힘에 의한 평화(억제)’를 강조함으로써 당분간 북·미 갈등 국면은 숨고르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북한을 ‘교도국가(감옥국가)’, ‘악당체제’, ‘독재체제’로 규정하고 ‘지옥’으로 묘사했지만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의 출발점은 도발을 중단하고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며 안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라고 밝힌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관여(대화)의 문’도 열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나와 우리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좋고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좋다”고 말했고, 북·미 직접대화 가능성과 관련해서 “모종의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방문 중인 11월 6일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11월 8일 국회연설에서 ‘미국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과 ‘시험하지도 말 것’을 경고했다. 이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대화의 문을 함께 열어둔 것으로 봐야 한다. 향후 북한은 미국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지켜보고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미국의 진정성 있는 조치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후 태도를 결정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조치 검토’와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 파괴’ 발언에 강하게 반발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을 낮추고 ‘힘을 통한 평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당분간 숨고르기를 지속하면서 정세를 관망하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北 숨고르기 … 북핵 외교적 해결의 기회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눈앞에 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지금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게 되면 그 순간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대북 군사적 옵션 사용 또는 ‘공포의 균형’ 전략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 지난 10월 12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현재는 북핵 위협이 관리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외교적 해법이 작동하기를 기대해보자”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도가 95% 정도라면 남은 기간에 협상을 통해서 완성을 늦추거나 동결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위해 실거리로 ICBM 시험발사를 추진하거나 태평양에서 수소탄 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응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전쟁을 피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연이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화성-12, 화성-14)과 제6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한국과 중국이 제안한 북핵 해법을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동결 입구론’과 중국의 ‘쌍중단’ 제안을 거부하고 핵무력 완성을 위해 제 갈 길을 가고 있어 강화된 제재(최대의 압박) 이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는 것도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미군사연습 잠정 중단이나 조정 등 한반도에 긴장완화와 관련한 조치와 북한의 전략적 도발 중단 합의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베를린 구상’에서 밝힌 군사분계선에서의 초보적 수준의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기 위한 군사당국자회담, 이산가족상봉을 의한 적십자회담,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체육회담 등을 다시 북한에 제의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북한이 일체의 남북접촉을 거부하고 군사당국자회담, 적십자회담 제의에 호응하지 않는 것은 남한의 대북제재와 압박공조 강화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꾸준히 신뢰를 쌓고 대화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복원이란 관점에서 고위급회담 또는 특사교환 문제도 적극 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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