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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대범하고 창의적인 전략적 관여정책 긴요하다 2017년 12월호

시론

대범하고 창의적인 전략적 관여정책 긴요하다

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2017년 한 해 동안 한반도는 한 마디로 전례 없는 안보위기를 경험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후 지난 6년 동안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속도와 방법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의 속도전을 치렀다. 전임자였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핵 개발을 둘러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면, 아들 김정은 위원장은 핵 보유를 핵심 국가비전으로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국제사회를 속이며 핵 개발을 하면서도 6자회담 합의, 9·19선언, 2·13선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비핵화를 약속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특히 지난해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그야말로 국제사회를 정신없이 몰아붙이며 탈냉전 이후 최고조의 위기를 야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설명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경쟁 시대를 북한 생존의 확보를 위한 적기(適期)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새로운 국면 과거와 다른 비핵화 전략 필요

물론 객관적 지표를 가늠하기 어려운 제도적인 힘과 시스템적 요인까지 고려할 때 중국은 아직까지는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만은 미·중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슈마다 전개되던 경쟁 구도가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확대 등으로 인해 제도적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소위 ‘트럼프 효과’까지 작용하여,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생존을 위한 담판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핵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종전과 같은 비핵화 전략을 더 이상 북한에 적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하고 핵문제 해결을 시도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전의를 다지지 않는다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비핵화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9월 이후부터 북한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중국의 제19차 당대회, 미국 전략 자산의 전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한반도를 넘어서는 국제정치의 큰 움직임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여러 가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결연한 대북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이 여기서 주저하지 않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능력 완성을 위한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감행할 것이며, 9부 능선을 넘어선 핵과 미사일 개발의 완성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북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다는 전제 아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재와 같은 대북제재를 일관되게 지속하는 것이다.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줄 것은 자명하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재를 계속하여 북한의 숨통을 조여보자는 생각이다. 물론 그 사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완성할 것이고, 외부로부터 오는 위기를 정권 존립의 근거로 치환시키는 계산을 할 것이다. 미국은 이제 만 2년만 지나면 다시 대선 체제에 접어들게 된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의 동력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둘째, 비핵화를 위해 평화체제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방법이다. 북한이 평화체제를 주장해 온 것은 오래전부터이니 평화체제를 매개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자는 논리다. 방향성은 옳다. 그런데 과연 북한이 평화체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는지가 문제다. 종전 선언을 하고 북한을 향해 불가침 선언을 확약하며 평화체제 틀을 만들어 가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인가?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도 문제다.

마지막 옵션으로 핵이 있으되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일종의 핵무용론적 접근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북한 핵을 몇 가지 핵심 군사적 및 외교적 정책 수단으로 꽁꽁 둘러싸서 포획하자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한·미·중 간에 ‘비핵 연대’만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어도 북한은 핵을 가지고 섣불리 장난을 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평화체제 가능성을 열어 놓고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도록 계속해서 주장하면 된다. 차제에 한·미·중 차관급 회담 정도의 3국 협의체를 만들 수만 있다면, 핵이 있지만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대화에 나올 것을 압박하는 방법이 더욱 수월할 것으로 믿는다.

북핵 무용지물 만드는 핵무용론방법도 고려해야

북핵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동시에 그야말로 창의적이고 대범한 전략적 대북 관여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단순 가공업 중심의 개성공단도, 제한된 공간에서 특정 사람들과의 접촉만이 허용되었던 금강산 사업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교훈 삼아 북한 사회의 신경세포를 건드릴 수 있는 관여정책이 무엇인지 그야말로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다. 여기에 더해 우리 스스로의 대내적 준비도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끼리 협약도 맺고, 국회의 역할도 강화해서 스스로 더욱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정확히 23년 동안 대북정책은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 명이 죽어가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만약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북한은 쓰러졌을까? 혹은 정반대의 논리로, 진보 정부가 국내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관여정책을 전개했더라면 북한은 달라졌을까? 몇 년 후 우리는 2017년을 되돌아보며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지 모른다. 이제 더는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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