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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그 시절 옥수수는 금(金)이었다 2018년 5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87

그 시절 옥수수는 ()이었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1980~1990년대 북한에서 상류급 생활을 했다는 한 여성을 만났다. 남편이 비행기 조종사여서 식량공급도 걱정 없이 받아 잘 살았다고 한다. 공급량은 입쌀 80%에 찹쌀 10%, 흰 밀가루 10%씩 하루 식구 1인당 1kg씩 받았고 수입한 흘레브(빵)와 버터도 매일 공급받았다. 초콜릿도 정상 공급됐고 주마다 받는 여러 종류의 과일과 소고기, 돼지고기 소시지와 훈제된 고기는 다 소비하지 못해 친척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우유차가 매일 왔는데 집집마다 공급량을 받아다가 설탕을 넣고 끓여 먹으며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면서 여인은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는지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파면과 함께 온 몰락 옥수수밥을 어떻게 먹어!”

그러나 그 행복이 어느 날 밝은 햇빛이 검은 구름장에 가려지듯 갑자기 사라졌다. 남편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조종사직에서 파면되어 지방으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고행의 삶이 시작되었다. 슬하에 학교에 다니는 오누이가 있었는데 당시 식량공급소에서 타온 옥수수쌀로 밥을 해주면 ‘이걸 사람이 먹으라고 주는 거냐’며 숟가락도 안 대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엄마로서 속상했지만 집안에 옥수수쌀밖에 없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며칠 동안 엄마와 아이들 사이 옥수수밥을 두고 냉전이 계속됐는데 닷새가 지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옥수수밥이 그렇게 맛있는지 밥그릇 밑까지 박박 긁으며 먹어대는 애들의 모습이 장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먹으면 목구멍이 깔깔한 그 옥수수밥마저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밥 같지 않은 밥에 부식물도 없이 순수 연명을 위한 일상이 지겨워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굴뚝 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 목숨이 그렇게 생각하나만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열악한 삶속에서 점차 옛일은 사라지고 대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욕이 가슴을 메웠다. 아마도 그것은 배고파 엄마만 쳐다보는 애들의 간절한 눈빛에서 솟구친 의욕이었던 것 같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무서운 괴물이 삶을 괴롭히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가 식량공급은 끊어지고 풀죽으로 연명하는 시대가 닥쳤다. 보기도 싫던 누런 옥수수쌀이 그처럼 귀한 식량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미역이나 산에서 뜯어온 나물을 끓여 끼니를 해결하는 때 한 숟가락의 옥수수 가루라도 들어갔을 때와 안 들어갔을 때가 하늘과 땅차이로 갈렸다. 사람에게는 그래서 ‘쌀벌레’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옥수수쌀 한 종지를 넣고 채소나 뜯어온 풀을 넣고 죽을 쑤어 먹을 때 한 종지의 옥수수쌀이 그냥 쌀이 아닌 금쌀임을 체험으로 알게 됐던 것이다. 금쌀이기에 귀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종일 보이지 않던 맏이가 저녁 늦게서야 싱글벙글 웃으며 집에 들어섰다. 이 각박한 세월에 뭐가 좋아 헤벌쭉거리는지 영문을 몰라 멍히 쳐다보는 엄마에게 맏이는 손에 들고 온 것을 내밀었다. 보자기 속에 든 것은 마른 옥수수국수 세 사리였다. 한 사리가 대체로 500g이었는데 엄마는 깜짝 놀라 “이거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맏이는 그날 학교에 안 가고 제 동무와 같이 수레를 끌고 20리 길을 걸어 산에 나무하러 갔다고 한다. 그렇게 싣고 온 잡관목 한 수레를 팔아 사온 것이라며 “엄마 나 잘했지?”하고 어깨를 으쓱했다고 한다. 돌부리에 채였는지 흰 운동화를 뚫고 뻘건 핏물이 배어 있음에도 아들은 옥수수국수를 구해온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듯 환히 웃고 있었다.

엄마, 나 잘했지?” 옥수수국수 사리에 정신이 번쩍!

정말이지 그 국수사리는 평범한 국수사리가 아니었다. 그건 사람의 생명이었고 삶을 영유할 귀중한 식량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닥친 열악한 생활터전에 익숙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여인은 비로소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남들처럼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 종지의 옥수수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금쌀이기도 하다. 지금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로 하여 북한 사회에서는 다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물론 제재에 의한 ‘고난의 행군’이 아닌 북한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시작된 악화일로에 북한 내부의 분위기 또한 심상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아마 그래서 북한 정권은 현재 정책전환 노선을 국제사회에 밝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1990년대와 달리 이제는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비극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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