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 “동북아 슈퍼그리드, 막대한 에너지 편익 제공할 것” 2018년 5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정규재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동북아 슈퍼그리드, 막대한 에너지 편익 제공할 것”
이동훈 / 본지기자
Q.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현과 에너지 전환 정책의 추진을 위한 중요 정책방안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선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A. 한 나라에서 자국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서 갖고 있는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 시스템과 전기를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송배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기의 특성상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균형을 이루면 가장 안정적인 전력시스템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생산능력 이상의 소비 증가가 나타난다거나, 비상상황 발생으로 생산능력이 감소하여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경제 및 사회 활동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주변국의 전력 시스템과 연계하여 필요한 전력을 서로 사고파는 것이에요. 전통적으로 이러한 계통 연계가 다국 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슈퍼그리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생산 기술과 송전손실을 최소화하여 먼 거리까지 전기를 보낼 수 있는 고압직류 송전(HVDC) 기술, 그리고 ICT를 접목하여 시스템 운용을 더욱 효율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력융통의 슈퍼 하이웨이’로 정의되는 슈퍼그리드 개념이 새롭게 나타나게 되었어요. 현재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슈퍼그리드 사업으로는 유럽 북해의 해상풍력을 활용하는 북유럽 슈퍼그리드, 사하라 사막의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데저텍 프로젝트, 그리고 중부 아프리카 지역 콩고 강의 수력을 활용하는 그랜드 잉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몽골 고비 사막의 신재생에너지(풍력, 태양력), 러시아의 수력 및 천연가스 등 동북아 지역의 풍부한 친환경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해 HVDC 송전망을 통해 전력수요가 많은 한국, 중국, 일본에 전기를 공급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 전력을 상호융통하기 위해 추진하는 대규모 국제협력 프로젝트입니다. 이러한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역내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 친환경 에너지원 활용을 통한 미세먼지 및 기후변화 대응, 관련 산업의 발전, 저렴한 전력공급에 따른 국민후생 향상 등의 막대한 편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동북아에서 다자나 양자 차원에서 전력망을 연계하는 구상은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지요?
A. 동북아 지역에서 국가 간 전력망 연계 논의는 2000년대 중반 북한 통과 송전망을 건설하여 러시아 전력을 남한에 공급하는 한·러 정부 간 ‘전력협력 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양국의 전력기업 및 연구기관들에 의해 전력계통 연계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공동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이후에 북한 문제 악화로 인해 중단과 재개를 계속 반복하였고요.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등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결국 2016년에 중단된 상태로 있습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대한 논의는 2011년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제안한 아시아 슈퍼그리드 구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 슈퍼그리드 구상은 몽골 고비 사막의 막대한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동북아 지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및 인도에까지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상은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사업이며, 그 첫 번째 단계가 동북아 슈퍼그리드입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관해서는 ECT(The Energy Charter Treaty), APERC(Asia Pacific Energy Research Center), ADB(Asian Development Bank)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였으며, 역내 국가의 전력기업 및 연구기관도 이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초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에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전력기업 사이에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협력 합의각서를 체결하고, 1차 사업으로 한·중·일 전력망 연계를 선정하여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간 부문에서 먼저 사업추진을 논의하였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각국 정부의 정책 협력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여 2017년 겨울 러시아를 방문한 대통령께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해 각국 정부가 협력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으며, 러시아 대통령도 이보다 앞서 비슷한 내용의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Q. 동북아 전력망을 연계하는 것에 대한 관련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는 어떤지요?
A. 동북아 지역에는 아직까지 각국의 전력시스템이 연계되어 서로 필요한 전력을 거래하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된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이 지역에 전력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의 전력 분야를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한국, 중국, 일본은 전력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발전소나 송전선 등 전력공급 기반을 새롭게 건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몽골과 러시아(극동)는 전력수요에 비해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어 전원개발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평가됩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이러한 장점들이 많기 때문에 각국도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각국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 것인지가 슈퍼그리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관건이 될 것입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와 몽골이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 사업에 대해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은 탈원전·탈석탄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전환정책 추진의 일환으로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함으로써 이를 정부의 정책과제로 격상시켰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전력망을 하나로 묶기 위한 ‘글로벌 에너지 연계(Global Energy Interconnection)’라는 국가전략 아래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중요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극동 러시아 지역의 수력과 천연가스를, 몽골은 고비 사막의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원을 개발하고 여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동북아 각국에 수출함으로써 자국의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전기가격이 역내 다른 나라들 보다 최대 두 배 이상 높아 자국의 전기소비자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매우 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안보를 정책의 1순위에 놓고 있는 정부 및 전력업계의 보수적 태도로 인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Q. 다자간 전력망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관련 해외사례를 들여다보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일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먼저 남부아프리카 지역의 전력풀(SAPP) 프로젝트의 추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요?
A.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체적으로 전력보급률이 매우 낮고, 자체 기술력과 전문인력, 그리고 투자재원도 크게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금융 기관과 선진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역내 발전시설을 공동건설하고, 송전선을 건설하여 전력을 함께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는 수력자원과 석탄화력자원이 매우 풍부해요.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이 오랫동안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추진하여 주변 흑인정권 국가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전력망 연계에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오랜 내전과 내정 불안, 그리고 정부의 강한 전력시장 통제 등이 장기간의 대형 투자사업(발전시설과 송전선 건설)을 추진하는 데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199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였고, 이를 계기로 남아프리카지역 전력풀(SAPP)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접한 국가 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에 민주화와 시장자유화가 남아프리카지역 국가들에서 빠르게 추진되었습니다. 국제금융 기관과 선진국들은 역내 대규모 수력발전 시설 건설 및 전력망 연계 사업에 투자자금과 전문인력을 지원했고, 현지 국영전력 회사들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이 기업과 가정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경제성장과 주민생활 환경개선을 가져다주었고, 경제주체들의 구매력이 증대됨에 따라 전력기업들의 재투자도 가능하게 되어 전력 부문에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었습니다. 현재 SAPP 참여국 정부들은 자국의 비교우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전력 부문에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시장자유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Q. ASEAN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의 전력망 연계 과정도 살펴볼 수 있겠는데요?
A. ASEAN 국가들도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전력부족 상황을 겪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발전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할 수 있는 투자자금과 전문인력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는 풍부한 수력자원을 개발해서 자국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수출하여 막대한 외화수익을 얻으려 합니다. 특히, 싱가포르는 해외로부터 비싼 가스를 수입해서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데, 주변국으로부터 자국보다 훨씬 저렴한 수력 전력을 수입해서 해외가스 의존도도 낮추고 경제적 이득도 얻으려고 합니다.
현재 동남아 국가들은 ASEAN이라는 지역협력체를 중심으로 역내 전력망 연계를 계획해 추진하고 있으며,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부족한 투자비를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 간 전력망 연계는 활발히 추진되고 있지만, 다국 간 전력망 연계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된 원인으로는 국가 간에 상이한 정치적·경제적 발전수준, 전력시장 자유화 정도, 그리고 각국 정부의 낮은 전력요금 유지정책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종 전력수입국인 싱가포르는 전력시장이 높은 수준으로 자유화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있는데 반해, 전력 수출국과 통과국들은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라오스에서 생산된 전력이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자국까지 지속적이며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이들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죠.
Q. 앞서 말씀해주신 현황과 해외사례 등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무엇이며, 동북아 슈퍼그리드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나아가려면 법과 제도적으로 어떠한 점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동북아 국가들 간 전력망 연계 논의는 지난 30년 동안 연구기관과 기업 간에 진행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정부들도 주변국과의 전력망 연계를 정책과제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적으로 장거리 송전기술이 발전했고, 정책적으로 대기오염 문제 해결과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역내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공동 개발해 사용할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경제적으로 전력망 연계를 통해 전력가격을 낮추고 전력수급 안정을 달성하려는 유인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역내 전력기업들은 전력망 연계를 미래 전략적 성장사업으로, 투자자들은 장기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투자사업으로 보고 있으며,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의 빠른 추진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국 간 전력망 연계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요인들은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최우선적 과제는 역사적 갈등과 영토분쟁으로 국가 간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다국 간 전력수송에 따른 위험을 완벽하게 해소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기업 차원의 기술적, 법적 안전장치는 이미 성공적으로 통합전력망을 운영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도입해 적용하면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수송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은 매우 복잡하고 오랜 협상과 협의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동북아 지역에는 아직까지 지역협의체가 없는데, 이는 정부와 기업 간에 첨예한 갈등과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북아 국가 모두가 참여하는 지역협의체를 설립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먼저 전력망 연계가 가능한 국가들끼리 정부 간 협의체를 결성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러한 정부 간 협의체가 주축이 되어 공동으로 사업 타당성을 조사하고, 상호 연계된 계통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통합 규제 및 조정기관을 설립하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규범들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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