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좌담 | “대격변 속 기회 맞은 한반도, 평화구축 의지 다져야” 2018년 5월호
특집좌담 | 4·27 남북정상회담 … 한반도의 봄, 평화의 문 열다
“대격변 속 기회 맞은 한반도, 평화구축 의지 다져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2018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판문점 선언’은 ▲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 ▲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3개 장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지역 설치,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와 북방한계선 평화 지역 조성, 연내 종전선언 추진, 비핵화 공동목표 확인 등을 포함한 13개 조항으로 이뤄졌다.
2018 남북정상회담은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목표를 확인하는 양 정상의 의지를 담았고, 남북관계 복원 개선의 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회담이라는 평가와 함께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청와대는 평가했다. 이제 공은 향후 1개월 남짓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 간의 만남으로 넘어갔으며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여부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분석해보고 앞으로 한반도 정세와 평화를 견인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바람직한 전략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Ⅰ. 2018 남북정상회담 총평은?
“판문점 선언, 길잡이가 만든 최고의 지도” 김준형
“기획 및 정상유대 좋았지만 합의문 아쉬워” 신범철
“샌프란시스코체제에서 판문점체제로 전환” 조한범
“위기의 역설, 대전환의 계기 맞아” 김태현
김태현 여러분 모두 면밀하게 지켜봤겠지만 대단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 차원의 발전 측면에서 세 번째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나간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앞으로 어떻게 이러한 국면을 좋은 방향으로 끌어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평가를 해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아침부터 TV를 통해 생중계를 봤는데 대단한 연출이었던 같고요. 우선 패널분들의 총평을 한 번씩 들어보겠습니다.
김준형 제가 이번 주에 써야 할 칼럼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길잡이가 만든 최고의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판문점 선언’의 순서도 대부분 비핵화가 가장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배치된 것도 절묘한 선택인 것으로 보이고요. ‘길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길의 방향과 울타리, 즉 비핵화를 통한 평화 그 다음은 종전선언이라는 식으로, 방향과 울타리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는 선언이라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내용까지 담았다고 평가하고요.
또한 비핵화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잡이로써 당면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핵화를 하나의 조건으로 두었다는 것, 이를 향후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을 가장 앞에 두고 이것에 종속되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평가되어야 할 것 같고요. 다른 말로 하자면 주도적으로 출발해 국제적으로 확대시키는 우리의 역할을 운전자 또는 길잡이로 설정한 것이 되겠죠. ‘판문점 선언’의 구성을 보면 남북이 우선적으로 발전을 논의하고 이에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해결하며 다음 평화로 가는 조건으로서의 비핵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러한 선언문 순서도 상당히 의미하는 바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신범철 전반적으로 지금의 평화 분위기가 구성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분석적으로 정상회담을 상세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정상회담이 성공이고 어떤 정상회담이 실패인지에 대해서 외교 분야에서는 첫 번째로 의전, 두 번째로 정상 간 유대, 세 번째로 합의문이라고 말하죠. 이러한 기준을 놓고 보면, 우선 의전과 기획 부분은 정말 ‘A+’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준비되었다고 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넘어오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순간까지 잘 짜인 한편의 드라마 같았고 우리의 세심한 배려도 잘 나타났다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도 상당한 감명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상 간 유대 측면에서도 상당히 좋았어요. 일부에서는 도보다리 산책 과정에서 오랫동안 분위기 좋게 두 정상이 대화한 것을 많이 강조하는데, 사실 저는 마지막 환송행사 때 환송공연에서 두 정상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죠. 분명 누가 잡으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인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정상 간의 유대가 매우 높게 형성된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정상 간의 유대는 의전이나 기획 분야처럼 ‘A+’까지 주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긴밀한 유대가 형성되었다고 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허심탄회한 대화가 나왔어야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공개적인 대화의 자리에서 비핵화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죠. 이러한 부분이 조금 아쉽게 다가옵니다.
합의문 측면에서는 사실 생각해볼 만한 점이 많아요. 정상회담을 구성하는 합의문에서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기준이 있을텐데요. 우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를 먼저 다룬다는 것이고요. 다음으로 말을 주고 행동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핵화 부분이 구조적으로 조금 아쉽게 다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한이 약속한 것 역시 선언적으로 해석될 부분이 있는 반면 우리가 이행해야 될 부분은 시한이 못 박혀 있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합의문 구성과 관련하여 협상에 임할 때 기본적으로 북한 측의 입장을 상당한 수준으로 배려한 것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조한범 큰 그림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의 세계, 동북아, 한반도 질서의 출발점은 1951년 탄생한 샌프란시스코 체제입니다. 미국이 패전국 일본을 동맹국으로 전환시킨 계기였죠. 물론 그 원인은 중국 견제가 될 것이고요. 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사실은 오늘날 한반도 문제의 기본적인 뼈대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화를 모색한 것이 바로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방중해 이뤄낸 상하이 공동성명이거든요. 냉전체제에 변화를 겪게 된 첫 출발점이라 할 수 있죠. 미·중관계가 대결적 구조에서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구조로 변화하는 계기였습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1980년 후반 냉전체제가 붕괴하게 되고요.
하지만 동북아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샌프란시스코체제가 붕괴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가 냉전의 해체를 공식화한 몰타 선언으로 결국 냉전체제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고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체제의 구조는 지금까지도 동북아에서 계속되어 1953년 이후의 한반도 정전체제를 형성해 왔다고 봐야죠. 그런데 저는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서 동북아, 특히 한반도에서 샌프란시스코체제가 판문점체제로 전환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판문점 선언’의 끝은 결국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질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요. 남북한이 평양과 서울에 상주 연락사무소를 두게 되고, 향후 미국과 일본의 대사관이 평양에 개설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는 자체가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이동이 아니에요. 샌프란시스코체제에서 판문점체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흐름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은 초단위로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합의문은 이미 구성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 1~2개의 애드리브만 있었죠. 도보다리 위에서의 정상회담도 인상 깊었습니다. 단독 정상회담을 생중계하는 사례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없었습니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입술은 보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입술은 보이지 않은 점 등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보면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눈물을 훔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겪었는지 알 수 있죠. 연출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연출은 여기까지입니다. 연출이 좋아도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오래 못 가듯이 이제는 콘텐츠, 즉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할 때이고요. 그 스토리는 바로 샌프란시스코체제가 판문점체제로 전환되는 한반도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대처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준형 회담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1년의 시절에 대해서도 시간을 버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저는 이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 봅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것은 그 이전의 데탕트 시대가 상당한 바탕이 됐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과거 2000년 첫 번째 정상회담과 2007년 두 번째 정상회담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과거의 흐름이 남북 사이의 데탕트라고 한다면 2018년 이뤄낸 판문점체제는 한반도에서 냉전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하고 세계사적인 함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태현 이번 기회는 사실 굉장한 위기 끝에 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저는 ‘위기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위험과 기회가 있는데 위험이 크면 클수록 기회도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위험이 기회를 가져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위험을 피하고자 하잖아요. 그러면 그 방책을 이리저리 찾습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높아지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가치도 커질 수 있어요. 그러니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동력으로 바뀌어 나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샌프란시스코체제에서 판문점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과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상당히 의미 있는 계기가 되겠지만 사실 저는 이 시점 이후의 구체적인 장애물을 넘어가기 위해 앞서 말한 동력이 제대로 만들어져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소진될까봐 가장 걱정입니다.
Ⅱ. 비핵화 의지, 어떻게 봐야?
“북한, 핵프로그램 재개 노하우 여전히 보유할 것” 조한범
“북한 비핵화 의지 관련 성과는 기다려봐야” 신범철
“핵능력 상당수준 발전해 협상 난항 겪을 수도” 김태현
“완전한 비핵화 합의, 상당부분 의지 확인한 것” 김준형
김태현 비핵화와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죠. 사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향후 더욱 큰 이벤트가 될 북·미정상회담이 목전에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남북정상회담의 연출이 매우 잘 이뤄진 상황에서, 비핵화라는 가장 큰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다뤄나가야 할 것인지, 또한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를 어떻게 연결해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조한범 북한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보도를 했는데요. ‘판문점 선언’도 전문을 있는 그대로 내보냈고 비핵화라는 이야기도 명확히 썼습니다. 서해 북방한계선이라는 표현도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어떤 왜곡도 없었죠. 이는 북한이 대내적으로 전략노선의 수정을 알리는 시작점이라고 판단됩니다. 대외적으로는 비핵화 이행의 의지, 즉 속임수가 아닌 진정성을 가지고 진행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현재의 대북제재가 상상 이상으로 북한에 충격을 줬다고 봐요. 이대로 가면 경제가 하반기 정도에 괴멸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따라서 북한은 북·미협상의 카드로 레버리지를 갖지 못한 중국을 초조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김정은 위원장이 방중했다고 봅니다. 그러니 중국은 북한이 어려울 때 긴급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고요.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핵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는 점이에요.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평가되지만 기본적으로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죠. 핵을 개발해 나가는 단계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즉 ‘CVID’를 받아들이면 모든 기술적 진보가 중지됩니다. 그런데 일련의 핵기술을 완성한 다음에는 비록 운반수단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핵제조 기술의 노하우를 확보한 상태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당장에 쓸 수 있는 핵을 개발하기는 어렵지만 유사시 다시 핵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는 인적·물적 노하우는 확보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김정은 입장에서는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죠. 과거에 비해 몸값이 훨씬 높아졌거든요. 물론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미래의 핵’에 대해서는 포기했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영변 핵시설 등이 모두 미국과의 협상과 거래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잠재적으로 핵과 관련한 기본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를 일컬어 소위 공인된 핵무력 보유국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핵무력을 보유할 수 있는, 즉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상태가 되었다는 것인데요. 그러니 앞서 말한 핵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을 다 팔아도 지금까지 축적된 노하우는 그대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종합해보면, 김정은은 자신만의 시간표가 있었고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소위 ‘한반도 운전자론’이 돌파구를 마련해 줬다고 생각되고요.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국내정치의 어려움과 함께 북핵 문제에 대한 고강도 압박의 한계가 맞물려지면서 절묘하게 바뀐 물꼬가 터진 것입니다. 지금은 이 방향대로 남·북·미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죠.
신범철 북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데요. 제 경우에는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잠재적 위험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부분에 착안해 사안을 평가하게 되죠. 지금 조성되고 있는 판세를 무시하거나 흐름 자체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고요. 단지 안보를 전문 분야로 다루고 있으면서 ‘내가 속으면 우리 모두가 속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현재의 국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핵무력과 관련한 북한의 현재 인식과 상황에 대해서는 조한범 위원님께서 앞서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그 부분은 생략해도 좋을 것 같고요. 이번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비핵화에는 몇 가지 과제가 있어요. 과연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도’의 문제, 다음으로는 비핵화 ‘과정과 방법’, 즉 어떤 경로를 통해서 비핵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결과’의 문제가 있는 것이죠. 각각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 보면, 우선 비핵화 의도와 관련해서는 사실 ‘비핵화를 하겠다’는 선언만 하면 매우 간단한 문제입니다. 9·19공동성명이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성명처럼 선언하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 것이죠. 9·19공동성명에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죠. 이것이 바로 의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에 줄 수 있는 선물은 사실 의도밖에 없어요. 구체적인 협상이나 과정은 미국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죠. 물론 우리도 당사자로서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공조 또는 북한과도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게는 가능하면 이러한 의도 이외에는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에요. 물론 저도 그 점은 수용합니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 특히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의 남북정상회담이라면 이러한 의도 부분만큼은 진정성 있게 밝힐 수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선언문을 보면 어떻게 되어 있나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우리가 요구한 것이겠고, ‘핵 없는 한반도’는 사실 넣지 않아도 되는데 아마도 북측의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항상 핵 없는 한반도를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비판을 강조했던 과거의 역사로 미뤄보면 예측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고요. 또한 ‘공동의 목표’라고 표현했는데요. 그렇다면 이 문건으로만 봐서는 과거 북한이 했던 주장과 비교하여 어떤 부분에서 진일보한 것인지에 대해, 물론 ‘완전한’이라는 표현이 삽입된 것으로 충분한 진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뒷부분 ‘공동의 목표’라는 표현으로 일부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북한을 협상의 장에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북·미정상회담과 연결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졌다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정상회담 합의문을 도출하기 위해 남북 간에는 분명 협상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전에 충분히 접촉해서 논의하는 과정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언문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북한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북·미 사이의 과제로 넘겨진 경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향후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상당 수준의 진전된 합의가 나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얼마만큼 견인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해본다면 현재 도출된 선언문으로는 보완될 여지가 있어 보이고요. 앞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이 과도한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북한을 더 설득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는 것이 남북관계 정상화에 보다 기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판단합니다.
김태현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난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에도 확인되지 않은 시설을 가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파국을 향해 간 전례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당시와 비교해서 북한 핵프로그램이 훨씬 많은 진척을 이뤘기 때문에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세부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죠. 저도 역시 상당히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서 비핵화에 대한 처리, 또 이 문제를 북·미 간 대화의 장에 넘긴 것이 아닌지에 대한 평가가 있었는데요. 김준형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준형 제가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총평하는 말로 ‘최고의 지도’라는 표현을 했잖아요. 저는 여전히 이번 선언문으로 인해 지도는 잘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게임 자체의 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자신감과 공포감이라는 두 가지의 상호모순이 북한에 존재한다고 보는데요. 저는 ‘공포감’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김정은 체제로 넘어오면서 선대의 유훈이라는 핵무력을 완성시키고 이제는 자신의 아젠다인 경제에 방점을 두고 나가려는 행보, 이것이 매우 일관적이면서도 일정한 로드맵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흔히 후발 핵보유국의 딜레마라고 말하는, 즉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핵이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측면으로 보면 지금 북한은 분명 갈림길에 선 것입니다. 핵을 끌어안고 가난하게 살 것인지 또는 핵을 포기하되 핵을 가진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얻어낼 것인지에 대해 지금 김정은은 가격만 맞으면 충분히 거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갈 의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김정은에게는 공포감이라는 부분보다는 자신감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 다음으로 대북제재 측면에서 봤을 때 지난 1990년대와 비교하면 북한 전체 인민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김정은이 이끌고 가야할 수백 개가 넘는 장마당의 돈주, 즉 새로운 경제적 엘리트에게 사실상 큰 위기를 맞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재가 풀리면 국제기구를 통한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경제의 완전한 환골탈태를 기대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북한 체제 내부의 이해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저는 이번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것으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그 다음 목적으로서의 핵 없는 한반도를 제시하며 국제적 지지와 협력까지 담아낸 것은 매우 잘된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넘겨줄 수 있는 고리를 마치 레고 블록처럼 끼워줄 부분까지 제대로 만들어 줬다고 봐요.
Ⅲ. 북·미정상회담 가시권, 전망은?
“트럼프, 여전히 최악의 상황 대비하고 있어” 김태현
“북한, 안보리 2371호 수준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 신범철
“북·미, 신뢰의 영역 속 상당한 수준 의견 접근해” 김준형
“비핵화 관련 북·미 간 합의, 상당부분 근접한 듯” 조한범
김태현 시장화를 통해 북한에 새로운 엘리트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들이 지금 북한이 처한 경제적 제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겠죠. 또한 정권 차원에서는 이러한 제재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흔든다는 불안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실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행동은 보통 함께 움직이거든요. 특정 국가에 대해 경제적 제재만으로 의도를 관철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경제적 제재가 군사적 행동을 위한 일종의 명분 구축이 되거나, 또는 준비단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북·미관계를 들여다보면 트럼프는 북한과의 회담이 잘 안 되면 언제든지 박차고 나가겠다는 식으로 공공연히 이야기했는데요. 여기에는 모든 평화적 수단을 소진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남은 것은 결국 군사적 행동이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실제 미국이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상당부분 낮아졌고 희석된 측면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부분을 포함하여 향후 북·미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전망을 해보죠.
신범철 북·미정상회담 관련해서는 지금 생각보다 깊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트럼프의 발언 등을 비춰봤을 때 말이죠. 북한이 미국에 비핵화 등의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고요. 그러니 미국이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려고 하겠죠.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일지에 대한 부분이죠. 앞서 비핵화의 의도, 방법, 결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여기서 두 번째인
‘방법’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북한은 분명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의 이익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게 최대의 이익이라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평화’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어떻게든 핵능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합의를 하고 그 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최상의 결과가 될 것인데 이는 미국이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갈 수 있는 방식은 결국 단계적인 비핵화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스커드나 노동 계열의 미사일은 자위력 차원이기 때문에 당분간 갖고 있는 선으로 나아갈 것이고요. 단계적인 비핵화에 나서는 것, 즉 핵물질과 핵탄두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에 대해 단계적으로 이행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취하는 전략으로 갈 수 있겠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이 결국 중점적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재 완화입니다. 그래서 대북제재가 지난해 8월 5일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 2371호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결국 북한의 전략물자라든지 대량현금, 즉 벌크캐시가 들어가는 정도만 통제를 받게 될 것인데요. 이 정도면 북한은 경제교역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할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북한 입장에서는 안보리 결의 2371호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으로 넘어갑니다. 경제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죠. 중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고 북한 노동력을 수출할 수 있게 되는, 경협의 이점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죠. 시장의 원리에 따라서 말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나올 수 있는 단계적 접근과 제재 해제에 있어서 관건은 이 부분에서 어떻게 우리가 관여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이 되겠죠.
마지막으로 결과에 대한 것까지 보자면,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핵 관련 정보와 인프라 모두를 포기하지는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확정하는 것은 무리예요. 북한에 있는 과학자 2천여 명을 모두 해외로 내보낼 수도 없는 것이고 북한 내에 있는 비밀시설을 다 찾기 위해 뒤질 수도 없는 것이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 부분을 이행하지 않을 때 다시 제재와 관련한 부분을 어떻게 조치해 나가야 할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 속에 핵인프라까지 어떻게 해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제재 해제 단계 설정에서 주도권은 미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우려를 지적하고 싶어요.
김태현 예전에 제가 1차와 2차 북핵위기에 대한 로버트 갈루치와 마이크 치노이의 저작물을 번역한 적이 있어서 당시 사례를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기도 했는데요. 오바마 정부 당시에 미국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당신들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죠. 돌아온 대답은 북한 인사들과 만나 협상하면 힘들다는 것이었는데요. 작은 부분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하고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저는 시기적으로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했고,
11월 중순에는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있으니 그 전에 큰 그림은 마무리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보면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준형 북핵 해결과 관련하여 마지막 부분은 결국 신뢰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부분이 없으면 사찰과 검증만으로도 불가능하잖아요. 만들어 놓은 게 있고 심지어 과학자들 머릿속에도 있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은 오로지 신뢰의 영역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현재까지 북·미는 예상보다 훨씬 원활한 대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요. 북한 역시 특별한 조건을 달지 않고 미국이 원하는 사찰에 동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북한은 묘하게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별로 내놓지 않고 있어요. 일단 미국과의 신뢰 문제를 회복해놓고 나머지 원하는 몫을 단기간에 얻을 수 있도록 거래하고자 할 것으로 생각되고 이 부분이 바로 북·미정상회담 성패의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한범 스스로 핵을 개발해 실전배치했다고 하는 국가 중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했던 전례는 없어요. 그러니 이번에 만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된다면 과거에는 듣도 보지도 못했던 변칙적인 비핵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핵화를 놓고 보면 문재인의 시간표, 트럼프의 시간표, 김정은의 시간표가 모두 달라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는 짧게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올해 11월 중간선거가 있고요. 또 하나는 2년 뒤 재선이죠.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는데 여기에 시한이 빠져 있잖아요. ‘언제까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비어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 김정은을 배려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만약 평양으로 간다면 여기에 대한 시한을 받아올 것입니다. 트럼프의 시간표 상 ‘2년 내 완전폐기’라는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죠. 또한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송환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고요. 어쨌든 최근 양상으로 보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수준, 그리고 김정은이 원하는 비핵화의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양측의 합의가 거의 근접했다고 판단됩니다.
Ⅳ.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 어디로?
“정전체제의 전환, 북·미관계 개선이 관건” 김태현
“건전한 한·미동맹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신범철
“미·중 간 패권경쟁이 핵심 고려사항 될 것” 조한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향한 6자 합의 긴요” 김준형
김태현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미 간 약속 이행을 두고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요. 합의에서 쌍방이 각자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도록 했잖아요. 당시 미국에서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 장소를 알아보러 간다는 움직임이 실제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러한 활동이 없어졌어요. 저는 막연히 미국의 의도가 변화되었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이유가 궁금해 고위관계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 물어봤더니 대답이 그 원인은 자신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에요. 오히려 반대로 북한이 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죠. 그래서 아마 북한에 미국인들이 다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좌우간 조심스러운 평가를 하게 되는 시점인데요. 다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로드맵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고자 합니다. 앞서 말한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는 문제인데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북·미관계의 개선이겠죠?
신범철 한반도 평화체제는 필요한 것이고 이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과거로 시계를 돌려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던 것인데, 결국 달성되지 못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임기 말에 추진하게 되었으니 동력을 받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보고 있고 따라서 정권 초기부터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평화체제의 로드맵은 이미 다 제시되어 있다고 봅니다. 북핵 문제의 진전이 있으면 종전선언을 하고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3자 또는 4자 대표들이 모여서 평화협정 논의를 하겠죠. 평화협정 논의를 하면 거기서 정치적인 종전선언의 의미를 넘어 법적인 종전 그리고 이와 연계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합의할 것입니다.
평화체제라는 것은 법적 문서로나 정치적 선언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평화보장 장치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구조적 군비통제까지 이루어진 모습 그리고 정치적으로 정부와 의회 간 대화의 정례화 등이 모두 합쳐져 완성되는 것이죠. 평화체제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특징은 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평화체제를 구축해 놓고 평화공존으로 가면서 통일은 중장기 과제로 놔두겠다는 것이고요. 이러한 기본 구조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지금 평화체제 로드맵에 미국이 동의를 해주고 있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게 주한미군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요. 미국이 우려했던 부분이 이것이었죠. 종전선언과 이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변화나 철수 등의 문제로 이어지면 자칫 한·미동맹이 깨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인데요. 따라서 그간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북·미 사이에 최근 이와 관련한 의견교환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혼란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우리가 유지해야 될 부분은 건전한 한·미동맹을 지속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평화가 도래했으니 사드는 필요 없고 주한미군 철수하자는 식의 반미여론이 한국 내부에서 확산될 수 있는데 이것은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할 것 같고요.
또한 평화체제 로드맵의 추진 속도가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데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진 상황에서 전략적인 선택에 나섰고 이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진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종전선언을 포함해 후속적 조치들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이 북한 비핵화 속도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약 북한이 비핵화 속도에 있어서 일정 수준 지체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면 고려해봐야 할 것이 있어요.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에서 종전선언을 올해 안으로 체결하기로 했잖아요. 그러면 속도의 불균형이 있을 수 있거든요. 자칫 한·미 간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고 이를 둘러싼 국내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러한 상황도 가정하여 속도의 균형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조한범 정전협정이라는 ‘문서’를 중심으로 국가 간의 안보, 질서, 정전체제가 형성이 되죠. 그러니 이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면 정전협정이라는 문서를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되거든요. 근데 평화협정은 한 장짜리가 아닙니다. 그 안에 핵심은 평화조약이고, 여기에 따른 수십 수백 가지의 의정서를 포함하는 일련의 문서를 공인하는 것을 평화협정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평화조약은 국가의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니 행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해요. 지금 평화조약을 체결하려면 국회의 비준을 받거나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여기에 따르는 새로운 관계정상화까지 포함되는 포괄적인 틀이 평화체제입니다. 이 출발점이 종전선언이고요. 종전선언이 있으면 종전선언 이후에 불가침부터 체제인정에 대한 부분이 합의되어야 합니다. 또한 ‘말로만’ 하면 안 되잖아요.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내려놔야죠. 이것에 해당하는 게 바로 군비통제입니다. 군비통제에 주한미군 문제가 들어가는 것이고요. 그 다음이 관계정상화입니다. 즉 북·미가 수교하고 대사급 관계를 개설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거든요.
그런데 잘 봐야 할 것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안보체제 과정에서 형성된 미·중 간의 군사적인 패권경쟁을 어떻게 정리하고 나갈지에 대한 부분인데요. 이 문제에 주한미군이 걸려있습니다. 중국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해요. 지금 주한미군은 어차피 오래전부터 북한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았어요. 이라크 전쟁으로 차출될 때부터 주한미군은 미국 태평양사령부 예하 야전부대의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거든요. 2010년 이후부터 야전군 형태로 전력을 재편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가 한반도를 벗어나게 됩니다.
이 말은 곧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은 좋게 말하면 동북아 평화유지군, 나쁘게 말하면 중국에 저항하는 핵심전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뺄 수 있나요? 절대로 못 빼죠. 중국 입장에서는 국가이익 상 주한미군이 무조건 나가야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 주한미군은 남·북·미의 문제가 아니고 결국 평화체제 추진 논의와 관련해서 중국과 미국 사이 군사적 패권경쟁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드로 폭발성 있는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준형 간단하게 말하자면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미군이 중국 봉쇄의 선봉대가 되어 우리가 이에 편입되면 중국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그야말로 평화유지군의 성격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균형을 잡는 레버리지를 찾을 수도 있어요.
김태현 이렇게 거시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결국 미국과 중국,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괄해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만들고 동시에 동북아 지역에 내재된 냉전의 종식을 가져 올 수 있는 장치라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한범 남북으로 출발해서 남·북·미로 가고 적어도 최소한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그 다음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한 6자까지도 확장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군비통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핵심은 남북이 아니고 사실은 미·중 패권경쟁 위에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가 덮인 상태로 진행된 것이고 저변에 미·중 패권경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의 구조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안보질서에 대해 미국을 배제한 다자안보를 추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갈 수도 없고요.
그러니 지금과는 성격이 다른 한·미동맹, 즉 철수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적인 안보 위협 수준에 맞춰 한·미동맹 체제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아세안안보포럼처럼 느슨한 형태의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가야 할 것이고요. 여기에 북한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죠.
김준형 지금 정상들이 직접적으로 동북아의 미래체제에 대한 부분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으니 아마도 이에 대한 논의가 연속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물론 상황은 비핵화 진전에 따라 달려있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기본적인 골격은 2자, 3자, 4자, 6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완성된 상태로 보면 6자의 형태가 되겠죠. 비핵화 문제도 마찬가지로 2자, 3자, 4자, 6자 순으로 가야 돼요. 왜냐하면 지금 리비아식 모델로의 전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미국의 양보도 필요하겠지만 이 4자나 6자가 보장해 주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소위 말하는 북한의 체제보장을 선언할 때 추인의 형식을 띄게 될텐데 여기서 6자가 인증하는 방식이 긴요할 것입니다.
원래도 6자회담이 성공하면 이것이 기초가 되어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간다는 구상이 마련되어 있었기도 했고요. 어쨌든 이러한 구도로 가면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는 것이거든요. 여기서 저의 걱정은 북한을 악마화하는 미국 관료사회 내부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볼턴과 폼페이오 등의 관료는 사실 트럼프가 행동대장격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제압이 가능했잖아요. 문제는 미국의 전략가들이에요. 이들이 과연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대책 없이 어떻게 풀어버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나온다거나 또는 중국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6자의 체제보다는 한·미·일 3자 동맹이 여전히 최고의 방안이라고 판단하면서 반격해오면 이것이 더 큰 우려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Ⅴ. 군사적 긴장완화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
“이슈별 합의, 국내적 갈등요인 되어선 안돼” 신범철
“북한의 대남 경제의존성 대폭 강화해야” 조한범
“정권 넘어 국가차원 업적되어야 동력 생겨” 김태현
“‘평화’와 ‘군사’ 의제 분리, 상당한 발전” 김준형
김태현 이번 선언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개선 측면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또한 남북관계에 대해서 특히 걱정이 되는 것이기도 한데, 국내적으로 과연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도 있고요. 향후 남북 간의 국내정치적 지지 및 동력을 어떻게 동원해 낼 수 있을지를 포함하여 논의해보죠.
신범철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 부분에 있어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이 과거 10·4정상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부분은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간다면 아마 의미 있는 진전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속도조절과 관련해서 유의할 부분은 지적을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금지는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북확성기 철거까지도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단계적으로 나가도 된다고 보거든요. 국회 비준을 통해서 법적 기반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 나중에 혹시나 확성기 재가동의 필요성이 있을 때 국내법적인 갈등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에 철거까지 간 것은 조금 무리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두 번째는 남북 간 공동연락사무소 설치입니다. 저는 이것도 판문점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개성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개성공단 재가동 등과 관련하여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핵화가 제대로 순항하면 모든 걱정이 불필요하겠죠. 그런데 속도가 맞지 않을 때 이는 자칫하면 또 다시 내부적인 문제로 발화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철도연결 사업은 미묘하지만 잘 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북한과 협상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이 유엔안보리 결의에 함정이 있다는 것인데요. 바로 북한에 대한 인프라 사업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지금의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대부분 제한하고 있는데요. 예외를 둔 것이 바로 공공인프라 분야입니다. 그러니 철도와 같은 분야의 사업은 공공인프라 구축에 해당하니 당장 시작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 국제사회에서 그간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온 것이 바로 대북제재의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큰 틀에서는 제재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이 부분을 가져와서 비핵화의 진전 없이 추진을 할 경우에는 일정한 수준의 안보 우려라든가, 한·미 간의 갈등,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 노선에 훼손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한범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불안정했죠. 언제든 제로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성격이었잖아요. 그러니 이번에 남북관계는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형태로 가야된다고 봐요. 남북관계를 거부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 측면에서 북한이 훨씬 크게 부담해야 하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뒤집어 말하면 북한이 합의를 뒤집으면 경제가 붕괴할 수준으로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강화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조금씩,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한국 경제에 완전히 기댈 수 있게끔 하는, 의존성을 대폭 키우자는 것이에요. 이러한 수준으로 만들어 낼 구체적 로드맵도 당연히 마련되어야 하고요.
다음으로는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국내적 문제를 잘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그동안 사회 전반에 구축되어 있던 냉전체제의 균열이 생김을 의미하거든요. 그동안 북한과 내통하면 ‘역적’이었는데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역적’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니 국내적인 진실화해의 프로세스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해요. 70년 가까이 이어온 적대적 관계가 남북한 사이에서는 해결되는데 당장
우리 안에선 남남갈등으로 촉발할 수 있는 상황을 극복해야 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야당의 협력을 견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국내 정치적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특징은 야당의 협력 없이 추진해왔다는 것이죠. 국내정치적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고 여기에 국민적 여론을 결집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현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시도들이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데탕트 시기에도 있었고, 그 다음에 냉전 끝나면서도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다른 곳은 성공했는데 우리만 실패했어요. 유럽에서도 데탕트가 성공을 했었죠. 마치 우리 안에 숨어있는 ‘악마’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정책을 했는데요. 그때는 베이징을 통해서 평양으로 간다고 했는데 베이징까지 간 다음에 멈춰버렸죠. 여기에 만족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쪽으로 말이 바뀌었거든요.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햇볕정책이 7년 동안 잘 진행되다가 표류하였고 동력을 잃어버렸는데요. 저는 그때 남북관계 개선을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국민의 업적으로, 또 정권의 업적이 아니라 국가의 업적으로 부각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합니다. 결국 남북관계, 대북정책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으니 야당에서는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라졌으면 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방선거가 6월 13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지금의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목을 끄는 이슈로 성과가 있는 점을 부각해서 선거에서 이겨야 되니까 말이죠. 그러면 야당이 또 물고 늘어지면서 평가절하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이번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만 가지 말고 야당 대표들도 불렀으면 어떨지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준형 이번 ‘판문점 선언’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부분이 가장 먼저 나왔고 그 다음 군사적 긴장완화, 마지막에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에 대한 순서로 이어졌는데요. 왜 아젠다의 순서가 이렇게 됐을지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가장 주목되는 이슈가 첫 번째 비핵화였고 두 번째 한반도 평화구축, 세 번째 남북관계였는데 이것이 뒤집어 진 것도 그렇지만 새롭게 볼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분리가 되었다는 것인데요. 평화와 군사, 즉 평화체제하고 군사적 긴장완화 이슈를 분리했잖아요. 이것이 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평화체제에 비핵화를 넣었는데 군사적 긴장완화를 따로 떼어낸 것은 무엇이냐면 결국 남북 간에 지금까지 노력했지만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군사적 충돌이었고 긴장 위험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뇌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남북 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정전체제의 상징이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즉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고요. 이것이 남북관계 의제와 평화체제 및 비핵화 의제 사이에서 단순히 분리의 의미가 아닌 최고의 연결고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도가 이번 남북정상회담 곳곳에 숨겨져 있어요. 남북협력과 화합의 메시지를 만찬 메뉴에 올려놓기도 했고요. 앞서 개성 지역의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문제가 언급되었지만 저는 이것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해요. 바로 추진할 수 있거든요. 개성에는 이미 남북연락사무소를 운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다 구축되어 있어요. 들어가서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상징성이 있잖아요. 합의한 것처럼 국면이 풀리면 개성공단 재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논의 과정에서 4월 27일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우리 내부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이제는 소통을 넘어서 참여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앞으로 봇물처럼 관련국 간 회담이 이어질텐데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주도면밀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국내적으로도 시민사회 등에 상세한 설명 등을 통해 간극을 좁혀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죠. 소위 말하는 이념과 여론 그리고 국민 간의 분열을 막는 차원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이었는데 이를 상향식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죠. 김태현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국면은 분명 정부의 업적이지만 동시에 이는 국민의 업적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이것이 거꾸로 정부 업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하향식 접근은 복잡하고 다단한 문제를 속도감 있게 푸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착되고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주려고 하지 말고 일정한 수준에서 또한 법이 허락하는 상황에서는 전부 풀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주도권이 국민에게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조한범 이번 ‘판문점 선언’은 핵심적인 내용만 추리자면 지금 분량의 1/3로 충분히 줄일 수 있어요. 여러 핵심적인 메시지를 숨기기 위한 목적이 있겠죠. 의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남북한의 경제적인 이슈에 대해서 저는 10·4정상선언 준수 수준으로 조율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은이 회담장에서 과거의 합의에 대한 준수 및 이행 발언은 결국 10·4정상선언을 말하는 것이죠. 10·4정상선언을 보면 남북한 FTA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만 준수되면 남북 간에 더 이상 경제적으로 합의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10·4정상선언 준수하는 것으로 논의가 끝나는 것이죠.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체제에서 판문점체제라는 거대한 그림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옛날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한·미관계, 한·중관계, 미·중관계, 한·미·일·북·중·러를 포함한 양다자 간 관계의 근본적인 속성이 바뀌거든요. 그렇다면 사실 경제와 산업전략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남북관계를 봐야하는 것이지, 그저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큰 그림을 그리고 둑을 텄어요. 제방의 물이 막 터지기 직전인데 여기에 구멍을 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거든요. 그런데 구멍 내는 방향은 우리가 했지만 작은 구멍으로 터져나오는 물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예의주시하면서 대비해야 합니다. 이 물이 모여 흐르는 위에 우리가 만든 배를 띄우고 미국, 중국, 북한을 태우고 가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것은 사실이고, 서훈 국정원장이 눈물을 훔칠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었던 것은 맞지만 지금부터는 곳곳에 도사린 어려움에 제대로 대비해야 합니다. 이 그림의 끝이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한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운전을 해나가야 할 때라고 봐요.
Ⅵ. 국내정치 그리고 평화구축 동력
“비핵화 관련, 우리만의 안으로 주도해야” 신범철
“평화 배당 위한 대내외적 담론 개발 중요” 김준형
“통일국민협약 제정으로 포괄적 공감대 형성해야” 조한범
“복지부동 벗어나 평화구축 위한 의지 가져야” 김태현
김태현 조한범 위원 말씀대로 비유적으로 하자면 조금 작은 배에 큰 짐을 싣고 거센 풍랑도 이겨내고 곳곳에 박힌 암초를 피해 안전한 항해를 해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도의 뛰어난 항해술과 집중력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바로 동력이겠죠. 다행인 것은 과거 10·4정상선언 당시와 비교하여 지금은 국민적 관심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좋은 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0·4정상선언 당시에는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두고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수년간 진행된 햇볕정책의 피로도도 쌓여있던 상황이라 국민들의 관심이라는 측면에서 동력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초반이고 국민적 관심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펼쳐질 한반도의 정세 전망과 함께 정부나 국내적 차원에서 제언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신범철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과정과 현재의 정세를 미루어 판단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깊게 관여되어 진행될 환경이 마련된 것 같고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을 해요.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의 안보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전략을 펼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 이익 상의 우선순위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의 안보순위의 우선적인 고려사항은 ICBM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전혀 관련없다고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를 향하고 있는 북한의 단·중거리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단계적인 로드맵의 기간이나 내용, 앞서 언급했듯이 비핵화의 의도, 방법, 결과 중에 결과에 해당하는 부분과 북한 핵인프라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 고민하여 안을 만들고 이에 대해 미국과 협력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비핵화와 완전히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부분 북한에 불편한 내용을 요구하게 되더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해결하는 노력을 보임으로써 근본적인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조한범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의 공고한 동력을 만들기 위해 법적인 자원이 필요할텐데요. 국제법 측면으로 보면 평화협정이 되겠죠. 다음으로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법적 자원은 남북기본협정일 것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법들을 수용하기 위해선 국내법적인 자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제안했던 통일국민협약이 될 수 있어요.
지금 통일국민협약 제정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는데, 통일국민협약이라 함은 결국 이러한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국민적 합의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관습법이죠. 평화협정과 남북기본협정은 진행될 환경이 충분히 마련된 것으로 보고요. 이제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는 통일국민협약으로 포괄적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실과 화해 운동도 들어가야 되고요. 거대한 냉전구도 해체를 우리 안에서도 소화해 내는 과정도 필수적으로 담겨야 할 것입니다.
김준형 지금 가는 길 중간에 지뢰들이 많습니다. 지뢰밭이 분명히 존재해요. 그 중에 제일 큰 지뢰는 앞서 제가 우려했던 미국 전략가들이기도 하고 중국의 의구심 등이 될 수 있겠죠. 물론 국내 정치적 문제도 있습니다. 여기서 경로의존성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경로의존성의 가장 특징은 안전성입니다. 지난 70년 가까이 지탱되어 온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모두가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해 국내정치의 격변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죠. 촛불을 통해 넘어가게 되는 그 이후에 대한 국면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행복보다는 예측이 가능한 고통을 선호합니다. 예측이 가능한 고통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분단체제가 지금까지는 분명 괴로웠지만 사실은 이 속에서 오랜 기간 살았기 때문에 흘러온 것이거든요. 그래서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우리 사회의 상수 개념처럼 자리잡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험하고 불편한 것 알지만 그 안에서도 이만큼 충분히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지금 이스라엘에서의 삶이 우리가 보기에는 참 불행하잖아요. 어디 마음 놓고 외출하는 것이 쉽지 않죠. 늘 테러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말인데요. 실제로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이 익숙해서 오히려 그렇게 불안하다고 느끼지 않거든요. 이처럼 우리도 유사한 의미의 안정성을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깨져나가는 순간에 불안해지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체제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 그 배경에 지금의 변화가 우리 삶에 손해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평화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국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마찬가지죠.
김태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국내정치적 환경에 대한 의견도 있었고요. 익숙한 고통을 참고 사는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체제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대내외적 담론 형성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주변 환경과 우리의 자세라는 측면에서 보면 되짚어 볼 것이 있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북핵 문제가 아무런 진전 없이 흘러가고 상황이 계속적으로 악화되는 동안 우리의 자세는 복지부동이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문제라 생각하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가져야 할 시기입니다. 지금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변곡점에 와있으니 이에 대한 국내외적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이익을 실현할 담론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다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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