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러, 경협 가속화 … 전방위 협력강화로? 2014년 11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러, 경협 가속화 … 전방위 협력강화로?

러시아를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스피리도노프카 거리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2015~2016년 양국 외무부 간 협력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과 푸틴의 러시아 간 관계가 경제협력을 축으로 끈끈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한 철도 현대화사업이다. 지난해 9월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의 하산을 연결하는 철로가 5년간의 개보수를 거쳐 개통했다. 올해 7월에는 이 철도를 이용해 실어온 러시아 화물을 동해로 수송하는 통로가 될 북한 나진항 3호 부두가 러시아와 합작으로 완공됐다.
주로 북·러 접경을 중심으로 철도협력 사업을 해 온 양국이 이젠 북한 내륙으로 현대화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동평양역에서는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재동역-강동역-남포역으로 이어지는 철도의 개건(개보수) 착공식이 열렸다. 남포는 서해로 빠져나가는 북한 최대 물류항구이고 평양에서 재동역과 이어지는 평덕선은 석탄 등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산업철도다. 평덕선은 평양과 인접한 북한의 중요 시멘트 산지인 황해북도 상원군과 지선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철도의 개보수는 북한 지하자원을 수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셈이다.
러시아 모스토비크 과학생산연합체는 북한 정부와 총 3,500㎞ 길이의 철도를 현대화하는 ‘포베다(승리)’라는 명칭이 붙은 프로젝트에 합의했고 250억 달러(약 26조 3,625억원)의 비용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북한은 지하자원을 러시아에 제공하고 전체 철도의 60∼70%를 현대화하는 셈이다. 도로가 부족한 북한은 화물수송의 90%를 철도가 맡고 있지만, 철로가 노후돼 열차 대부분이 시속 30㎞를 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이 사업은 단순히 러시아의 지원 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개발부는 이번 사업에 대해 “20년 만기의 이번 계약은 터널을 비롯해 교량작업과 철도역 정비도 포함된다.”며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북한은 석탄을 비롯해 비철금속 등 천연자원으로 대신하고 환산가치는 25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도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는 북한과 무역경제협력의 신모델로 러시아 기업은 북한 영토에서 인프라 구축과 여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며 “그 대가로 북한의 광물자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 北 내륙 철도현대화 지원 … 북, 250억 달러 천연자원 제공
북·러 간 협력이 강화되는 양상은 이것뿐이 아니다. 올해 장관급 이상의 대표단을 북한에 가장 많이 파견한 국가는 러시아다. 4월에는 유리 트루트녜프 부총리가, 3월과 10월에는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이 방북했다. 북한의 혈맹이라는 중국에서 올해 방북한 고위 인사는 류전민 외교부 부부장과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전부로, 장관급 인사가 한 명도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이 북·중관계 일변도의 외교노선에서 탈피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러 양국이 루블화를 통한 무역결제를 시작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양국은 지난 6월 루블화 결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고 이달 처음으로 실행했다.
최근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이 되는 인력 송출도 러시아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8월 ‘일방국가 영토 안에서 타방 국가 공민들의 임시 노동활동에 관한 협정’ 이행 문제를 논의하는 공동실무그룹 제5차 회의를 열어 의정서에 조인했다. 외교부가 작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러시아에 파견한 노동자는 2만여 명에 달하며 대부분 벌목공인 것으로 밝혔지만, 최근 극동지역 건설현장 등을 중심으로 북한 노동자의 파견이 크게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러 간 경제협력이 가속되면서 러시아의 대북지원도 활발해졌다. 러시아 정부는 이달 초 북한에 식량 5만t을 무상으로 지원했고 지난 8월에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 식량지원사업에 300만 달러(약 31억 8천만원)를 기부했다. 지난 4월 트루트녜프 부총리는 방북하면서 소방차 수십대를 지원하기도 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6월 이런 상황에 대해 “조·러는 전략적 이익을 같이하는 동반자로서 새 시대를 맞은 듯 싶다.”고 평가했다.
양국 간 활발한 경제협력은 자연스럽게 정치·군사 등 다른 분야의 협력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지난 7월 방북한 러시아 중앙군악단과 만난 자리에서 “최고사령관(김정은) 동지께서 조·러 친선관계가 더 높은 단계에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소리> 방송은 지난 6월 북·러 양국이 나진항을 드나드는 대형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해 러시아 보조함대를 항구에 주둔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양국 군사적 협력 가능성까지 밝혔다.
“러시아 보조함대의 나진항 주둔 논의” … 군사협력까지?
양국 간 이 같은 협력 움직임은 상호보완적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일회적 움직임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작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에 동참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북한이 작년 말 북·중 친선관계를 주도해온 장성택을 전격적으로 처형하고 그의 세력을 숙청한 것도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과 멀어져 궁지에 몰리자 북한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에 접근하는 데는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부 자원이 빈곤한 북한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해 외부와의 경협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지만 서방과의 경협이 꽉 막힌 상황에서 러시아가 좋은 ‘출구’가 된 셈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하는 배경에는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아시아중시’ 정책에 맞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동북아 지역에 확대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나서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 것은 러시아의 대북 접근을 가속화한 계기가 됐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도 한층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경제적인 면에서도 북한은 갈수록 러시아에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북한은 푸틴 대통령이 많은 관심이 있는 극동 지역 경제개발에 노동력 공급과 같은 방식으로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연방정부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며 이 지역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북한은 과거 러시아 극동 지역에 주로 단순 노무직을 파견했지만 최근에는 전문기술직도 보내기 시작했으며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에 남한도 끌어들여 3각 협력체제를 구축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사업에도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용훈 /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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