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남북, ‘작은 통로’와 ‘오솔길’ 조화 지점 찾아야 2014년 12월호
기획 | 동북아 지정학의 부활 – 북한
남북, ‘작은 통로’와 ‘오솔길’ 조화 지점 찾아야

지난 10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2차회의. 통일준비위원회는 현재 △범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통일헌장 제정 검토 △한반도 통일시대를 견인할 신경제성장모델 제시 △생활 속 통일준비 실천과제 발굴 △‘작은 통일정책’ 대안 발굴 등을 논의 중이다.
이명박 정부 때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박근혜 정부 2년이 지나도록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7년여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됨에 따라 남북불신은 더 커지고, 남북 사이에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향상되고 있다.
북한이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대남위협을 지속함으로써 남북관계 복원의 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간신히 마련한 대화의 기회는 장관급 회담 대표의 ‘격’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하다가 판이 깨졌다. 최근에는 대북전단문제가 핵, 미사일, 남북교류협력 등 남북 현안을 압도하면서 어렵게 마련한 제2차 고위급접촉의 기회도 사라졌다. 남북관계 복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북핵문제, 기존합의 이행문제, 대북정책의 일관성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선 북핵고도화 차단, 후 폐기’로 북핵 해법 잡아야
첫째, 남북관계 복원의 최대 걸림돌인 북핵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역대 정부 모두 북핵해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이 생존전략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고 있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 등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북핵폐기 모델로 제시했던 ‘리비아 모델’과 ‘우크라이나 모델’의 유효성이 사라지고,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고수함으로써 북핵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최근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반발하면서 4차 핵실험을 공언하고 있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막는 등 북핵고도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북핵고도화 차단을 위해서는 선핵폐기론에서 ‘선 북핵고도화 차단, 후 폐기’로 북핵해법의 수순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북·미협상 또는 한·미·중협상을 통해서 ‘2·29합의’와 유사한 형태로 북핵해법의 큰 흐름을 잡고 6자회담 재개 또는 다양한 형태의 양자 및 다자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존합의를 이행해야 새로운 합의를 만들 수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강조하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 재설정의 첫 단추를 꿰지 못했다. 북한은 상대를 부정하는 남측 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고 버팀으로써 관계복원에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합의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기보다 새로운 대북구상을 연이어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서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구상을 밝혔고, 8·15 경축사에서는 환경, 민생, 문화 분야에서 ‘작은 통로’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북한은 지난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북남합의들을 전면이행하고 6·15 통일시대에 활성화되어온 각 분야별, 분과별 협력교류기구들을 되살리면 북남관계는 저절로 개선된다.”고 주장했다.
남북 간 신뢰구축의 첫 단계는 기존합의의 이행이다. 기존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새로운 합의를 만든다고 해도 이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지만 북한의 경우 3대 세습으로 정권의 연속성을 가진다. 선대 정권의 합의를 부정할 경우 현재의 김정은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대화상대를 부정하면서 대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 기존합의를 인정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관계복원의 지름길일 것이다.
독일, 작은 발걸음 모아 통일대업 이룩
셋째, 대북·통일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경험에 비춰보면 우리의 통일노력은 일관성이 없었고 전략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또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통일의 촉진요인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독일통일은 거창한 통일방안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발걸음’이 모여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동서독의 경우 수많은 간첩사건과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주민에 대한 총격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교류협력을 지속하고 통일을 달성했다. 우리의 경우 2008년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은 6년째 중단되고 있으며, 2010년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5·24조치가 취해져 남북교류협력은 4년째 거의 중단됐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에 따른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와 남북관계 차원의 제재강화로 통일을 위한 작은 통로가 거의 다 막혀버렸다. ‘통일대박론’을 실현하려면 통일준비위원회 등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투명성 있게 통일논의를 펼쳐가고,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작은 통로부터 열고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환경협력의 통로’, ‘민생의 통로’, ‘문화의 통로’를 시급히 열자고 북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측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근본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상호 적대적 군사행동 중지, 남북대결의 악순환의 고리 끊기,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이 한반도 근본문제를 제기하는 데 비해 박근혜 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 관광객 피격사건,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에 책임 있는 조치 등을 요구하면서 인도적 대북지원과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기능주의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황병서 북한 군총정치국장은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작은 통로는 민생통로인데 비해, 북한이 생각하는 오솔길은 정치·군사적으로 작은 길인 것 같다. 남측의 작은 통로론과 북측의 오솔길론이 이익의 조화점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호혜적인 접촉통로를 많이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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