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12월 1일

통통 인터뷰 | “건강한 통일한반도 위해 남북 의료격차 줄이고 싶어요” 2014년 12월호

통통 인터뷰 | 최정훈 | 탈북 의료인
“건강한 통일한반도 위해 남북 의료격차 줄이고 싶어요”

ITV_201412_62 “선생님,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신경내과 중환자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왕진 채비를 했다. 30분 떨어진 거리를 걸어 당도한 곳은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환자가 있는 곳까지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 계단을 업고 갔으면 위험할텐데…’ 60대의 풍채 좋은 환자는 뇌출혈로 누워 있었다. 긴급 처치를 하고 필요한 약과 수액제를 투여했지만 그는 10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쓰러진 환자를 지나가는 차에 태워 열악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덜컹덜컹 1차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이어 가파른 계단을 서둘러 들쳐 업고 갔을테니 재출혈 가능성까지 있었다. 의사가 도착할 때까지 30분이란 시간도 소요됐다.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도로 사정이 좋고 구급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면, 현대적 병원 장비가 갖춰져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는 환자였다. 불과 십여 년 전, 청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北 질병 변질 … 증상만으로 진단 안 돼

최정훈 씨의 아버지는 신경내과 의사였다. 집으로 종종 환자가 찾아오고, 병원을 자연스레 드나드는 환경에서 자라며 의사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됐다. 고통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있던 사람들이 완쾌되고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의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었다. 그렇게 그는 청진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양방, 한방 영역구분이 없는 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임상의학, 위생학, 한의학 등을 모두 배웠다. 방법에 상관없이 사람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공과목을 배웠지만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경마과를 선택했다.

정식 의사가 되었던 것이 2000년대 초반. 오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북한주민들의 보건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취약해져 있었다. 더 이상의 무상진료는 없었다. 진료소와 병원에는 개인진료가 성행해 병원 문턱이 높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장티푸스, 파라티푸스와 같은 전염성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병이 변질마저 되고 있다. 사회의 비공식 영역이 확대되어 가며 환자들은 장마당에서 약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자가 진료로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 보균환자가 늘어갔다. 심지어 개인이 제조한 가짜 아스피린, 해열제가 시장에서 쉽게 유통됐다. “병이 변질되어 증상만으론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더욱 면밀한 검사가 필요하지만 장비마저 부족해 진단이 어려운 악순환이 이어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주민들에게 돌아갔다. CT, MRI. 이곳에선 그 흔한 장비가 북한 전역에 다섯 대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살릴 수 있었던 환자들이 무수히도 머릿속을 스쳤고 허탈함에 빠졌다.

“탈북민 의료제도 잘 되어 있지만 만족도는 낮아”

현재 남한 땅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최정훈 씨의 시선에는 북한에서 온 주민들의 어려움이 여전히 보인다. “탈북민에 대한 의료제도적 장치는 상당히 잘되어 있는 편 같아요. 하지만 그 만족도는 낮죠.” 현재 전국에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협력병원 4개가 있다. 또한 북한이탈지원재단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진료비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중증질환에 대해서도 본인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물론 무상치료를 표방하는 북한을 생각한다면 탈북민이 갖는 불만은 클지도 모르나, 그는 본인이 진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최근 북한 사회상을 반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라고 했다. 오히려 이곳에는 각종 의료장비와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만 서로에 대한 몰이해는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탈북민 2만7천여 명 시대에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진찰할 수 있는 의사가 얼마나 있을까요?” 가령 식물신경신조증이라는 질환은 심장, 간, 위를 지배하는 신경들이 불균형 상태가 되는 기능적 병이다. 이 질환은 초음파에 나타나지 않아 남한에서는 신체화장애로 분류되지만 북한에서는 엄연한 질병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남한 병원에서 적절한 처방을 받기 어렵지만 탈북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니 의사의 진료수준을 탓하게 된다. 남북 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투입되는 노력과 재정이 빛을 바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양적인 제도적 노력보다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사-환자 사이 오해, 모두 문화적 차이 때문이죠”

그는 오는 1월 의사국가시험을 앞두고 있는 예비의사이다. 물론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이제 갓 의학에 입문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인근 대학교에서 청강을 하는 것으로 남한 의료시스템에 첫 발을 내딛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면 처음부터 배우겠지만, 북한에서 10년 이상 진료하며 몸에 베인 지식과 습관들이 먼저 튀어나와 종종 난감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표현법으로 습득하자니 두 달간은 멍하고 짜증만 났다.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할 때는 억양이 장애가 됐다. 증상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그를 바라보는 환자도 알아듣기 힘들어 귀를 쫑긋 세웠던 것이다. “모두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거죠.” 남한에서는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라포(rapport)를 중요시하는데 소통을 위해 의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반대였다. 주로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환자 측이고 의사는 가만히 들으며 처방해줘야 환자도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세세한 문화적 차이가 적응하는 하루하루를 가로 막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북한에서 의료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대학교를 다시 다녀야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최정훈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면접을 보아 북한에서의 의료활동이 확인된다면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먼저 온 탈북민들이 펼친 노력들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어 가듯이 그 또한 차근차근 가능한 것들을 준비 중이다. 남북한 의사가 함께 모이는 단체에 참여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북한 출신 의사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이해하는 남한 출신 의사도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남북 의료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통일 한반도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진료하고 남한에서도 공부한 저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의술은 인술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의사라면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이다. 점차 의술이 상술로 변해가는 남북한의 현실이지만, 통일 한반도에서는 진정한 의술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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