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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그리스·터키 숙적의 무대, 키프로스 분쟁 2015년 6월호

세계분쟁 25시

그리스·터키 숙적의 무대, 키프로스 분쟁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터키 남쪽에 위치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도시국가가 번성했고 기원전 13세기에는 페니키아인의 지배를 받으며 해상무역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원후부터는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 19세기 말에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와 같은 역사는 그리스정교도인 그리스계 주민(78%)과 이슬람교 수니파인 터키계 주민(18%)을 혼재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리스와 터키는 오랜 숙적관계로 뿌리 깊은 갈등을 겪어 왔으나 19세기 전반까지 키프로스 섬 주민들에게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 키프로스 니코시아 유엔 완충지대에서 남키프로스의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오른쪽)과 북키프로스의 무스타파 아큰즈 대통령(왼쪽)이 에스펜 바트 에이데 유엔 키프로스 특사 사이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이번 회동은 아큰즈 대통령이 당선된 후 남키프로스 정상과 처음 만나는 자리로, 유엔이 중재한 통일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 키프로스 니코시아 유엔 완충지대에서 남키프로스의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오른쪽)과 북키프로스의 무스타파 아큰즈 대통령(왼쪽)이 에스펜 바트 에이데 유엔 키프로스 특사 사이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이번 회동은 아큰즈 대통령이 당선된 후 남키프로스 정상과 처음 만나는 자리로, 유엔이 중재한 통일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계 독립운동, 키프로스 갈등의 도화선

1830년 그리스가 터키로부터 독립하자 키프로스 섬의 그리스계 주민들은 그리스 본토와의 통합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이 운동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나 1878년 영국령이 된 후 다시 격화되었다. 1955년에는 급진파인 키프로스 민족해방 조직(EOKA)이 영국군과 터키계 주민에 대해 격렬한 테러 공격을 실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960년에는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였던 마카리오스 3세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키프로스 공화국으로 독립한 뒤, 유엔에 가입하며 정식으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63년 마카리오스 대통령이 터키계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헌법 개정을 시도했다. 이렇게 되자 터키계 주민들은 키프로스 공화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면서 12월 내전이 발발했다. 이 내전으로 터키계 주민 1천명과 그리스계 주민 200여 명이 사망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듬해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 양측 주민을 분리해 강제적으로 평화를 조성했다.

한편 1974년 그리스계 장교들의 쿠데타로 키프로스에서 반터키 성향이 강한 극단주의자 니코스 삼손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자 터키 정부는 터키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군대를 파견하여 키프로스 북부지역을 점령하고, 1975년 키프로스 터키 연방 수립을 선언했다. 1983년에는 터키계 주민이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엔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독립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음을 밝혔다.

남부의 키프로스 공화국과 북부의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사이에는 정전감시를 위해 유엔 키프로스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어 있다. 이 두 나라를 나누는 폭 100m의 벽이 완충지대로서 동서로 가로놓여 있으며, 수도 니코시아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북키프로스에 주둔하고 있는 터키군에 대응해 그리스군이 키프로스 공화국을 전면적으로 지원, 1996년에는 완충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져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8년에는 그리스군과 터키군이 키프로스에 전투기를 발진시켜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그리스와 터키 양국은 키프로스 사태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군의 철수와 연방 국가 수립을 주장하는 데 반해, 터키는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과 국가 연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2002년 유럽연합(EU)은 키프로스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EU 동시가입 허용을 조건으로 스위스 식의 연방제를 제안했다. 2004년 4월 그리스계의 남부와 터키계의 북부 키프로스에서 각각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결과 터키계는 2/3이상이 찬성했지만 그리스계는 2/3가 반대하면서 EU가 제안한 통합안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1997년 이미 EU 가입 대상국으로 지정되었던 남부 키프로스 공화국의 EU 가입은 2004년 5월 승인되었다.

2006년 6월 EU는 공식적으로 터키의 EU 가입문제를 논의하자 남키프로스는 터키가 사전에 남키프로스를 인정하고 터키의 공항과 항구를 남키프로스에게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는 EU가 북키프로스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남키프로스의 주장을 일축했다. 2008년 9월에는 남키프로스 크리스토피아 대통령과 북키프로스 탈라트 대통령이 통일협상을 위한 만남을 가졌으나 권력분배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양측이 연례 반복해 오던 훈련을 중단하는 등 평화조성을 위한 노력을 다졌다. 그러다가 2010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주선으로 3자 회담을 실시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분쟁해결, 그리스·터키 관계회복 선행돼야

최근 키프로스 분쟁은 키프로스의 IMF 구제금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키프로스의 금융위기는 러시아의 경제 이권과 독일의 원칙적 구제금융 지원방식의 충돌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가 키프로스 분쟁을 외부지역으로 확대·심화시킬 수도 있으며, 주변국의 개입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현재는 저강도 분쟁으로 동결된 상태로 남아있다. 키프로스 분쟁 해결에는 그리스와 터키 간의 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향후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국제적 현안은 상당히 많다. 그리스와 터키 모두 NATO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관계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EU에 가입한 그리스와 EU 가입을 강력히 희망하는 터키의 이해관계가 절충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수도 니코시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통로가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계냐 터키계냐를 따지지 않고 모두 키프로스 사람임을 인정하고 있다. 키프로스 분쟁 해결의 희망적인 모습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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