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6월 2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체력검정·신체검사? 해 본 기억이… 2015년 6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0

체력검정·신체검사? 해 본 기억이…

 

평양 연광중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철봉으로 체력단련을 하는 모습

평양 연광중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철봉으로 체력단련을 하는 모습

한국에 온 지 이젠 몇 년째 되지만 최근에야 학생 체력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언가를 들으면 반드시 내가 살던 북한과 비교하게 되는 게 이젠 습관처럼 되어 자연스레 북한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탈북한 지 불과 몇 년 안됐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면 큰일이다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잠시였다. 돌이켜보니 북한 교육현장에서 체력검사를 한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체력검사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체력장·신체검사를 북한에서는 인민체력검정이라고 한다. 인민체력검정은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당시엔 교육부문뿐 아니라 공장, 기업소를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해마다 9~10월이면 인민체력검정을 했다.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 결핵검진을 하던 기억도 난다. 결핵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터라 학교에 결핵검진 버스가 오면 학생, 교사 모두 어딘가 모르게 얼굴에 불안한 기색을 띠던 기억도 있다. 인민체력검정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주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는 이따금 하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혀 하지 않게 됐다. 인민체력검정이 진행된다는 내용의 보도가 북한 매체를 통해 들려오긴 하지만, 아마도 중앙 단위의 행사에 그치고 지방 곳곳에서까지는 실천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체력검정 학적부에 기록 안한 지 오래

체력검정 종목으로는 100m 달리기, 현수(철봉에 매달려 오르내리기를 하는 남자 종목), 평행봉(여학생들은 고저평행봉), 높이뛰기, 멀리뛰기, 수류탄 던지기 등 6가지 종목이다. 여학생들은 현수가 아니라 엎드려 팔 굽혀펴기를 시켰다. 평가는 합, 불로 나누었는데 종목별 구체적인 기준은 학년과 성별에 따라 달랐다. 구체적인 수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눈물을 질질 짜던 기억은 난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거나 진로에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명색이 판정이니 학생들 대부분이 안타까워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원래 교육부문 인민체력검정은 결과를 학적부에 기록하게 되어있다. 성적증(성적통지표)이 학기별 성적, 출석률, 품행을 기록한다면 학적부는 학년말 성적과 출석률, 품행, 담임교사의 평가, 체력검정 결과를 기록한다. 성적증은 개인 소유이고 증거서류로 인정받지 못하나, 학적부는 학교 보관용이고 학력조회 때 증빙서류로써의 역할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증빙서류임에도 교사입장에서 학적부에 체력검정 결과를 기록해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더욱이 체력검정 결과를 학적부에 기록하지 않아도 교무과에 그대로 통과되었고 어느 누구 하나 이걸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 교장, 부교장, 교무지도원도 질책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기관에서 제자들의 학력조회를 내려온 간부들조차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내가 살던 북한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더 놀라운 것은 학적부에 시력, 신장, 몸무게, 흉부둘레를 적는 항목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검사를 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력검사를 한 기억도, 몸무게를 잰 기억도 없다. 단, 키를 재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학급별로 교실에서 쟀는데 발뒤축을 살며시 올려 1cm라도 더 크게 하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때면 담임선생님이 손으로 머리를 내리누르며 우리와 함께 장난도 치셨다. 하지만 북한에는 아직 키 계측 장비가 없어 교실 벽에 줄자로 표시하여 키를 잰다. 그러다 보니 1~2cm씩 차이가 났다. 더구나 학생들의 신장이 담임들 사이에서는 경쟁거리여서 치수를 조금씩 늘려 표시하던 기억이 난다.

북에서 보통 키, 남에선 작은 키?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키가 북한 사람들보다 한 뼘이나 크다는 것이다. 나도 북한에선 작은 키가 아니었다. 보통 남자 키, 더 정확히 보기 좋은 키였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내 키가 작은 키였다. 특히 학생들을 보면 발육상태가 더 좋아 보인다. 북한군 초모생(입영대상자)들의 키를 낮게 책정한 것만 봐도 평균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보여진다. 20여 년째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인한 영양결핍과 지독한 조직적 통제가 아이들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주다 보니 키가 자랄래야 자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체력검정은 한 마디로 형식에 불과하다. 형식으로만 대충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레 없어지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문제라는 인식조차 들지 않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형식마저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교육부문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몰라도 교육이라는 국가적 흥망성쇠를 생각한다면 죄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교육은 교육교양과 성장발육에 대한 관심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자연스레 이루어져야 지덕체라는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고,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데 한 쪽이 찌그러진 절름발이식 교육으로는 우리의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주의식 대충대충이 오늘의 북한 교육현장을 만들었고, 오늘의 북한 현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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